간호-사(看護師)「명사」 의사의 진료를 돕고 환자를 돌보는 사람. 법으로 그 자격을 정하고 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나를 위한 사람들
3박 4일의 입원기간 동안 잠깐이라도 나를 돌본 병원 사람들은 무려 서른 명이 넘는다.
수술 설명회의 간호사 1명, 영양사 1명, 의사 1명. 협진실의 간호사 1명, 의사 1명. 입원 병동의 원무과상담직원 1명, 입원실 담당 간호사 약 4명, 유방외과 의사 3명, 성형외과 의사 1명, 검사실/수술실 이송을 도와주신 이송직원 2명, 초음파실 간호사 2명, 영상의학과 의사 1명, 방사선사 2명, 수술대기실을 지키던 의료진 약 5명, 수술실 안의 의료진 약 5명, 미화원 1명, 조리사 1명…
직접 대면한 사람들만 이 정도였으니 보이지 않는 곳에 있던 이들, 미처 카운트하지 못한 교대 인력까지 포함하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내가 뭐라고 이 많은 사람들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가. 황송하기도, 미안하기도, 감동적이기도 하다. 물론 이 분들이 나'만을' 위해 일 하는 것은 아니다. 보통 사람들이 부러워할 정도의 적잖은 보수를 받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여러 날 병원을 다녀본 결과, 이곳에서 일한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고통과 희망, 절망과 기적 사이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는 중증 환자들이 가득한 이곳, 사명감 없이는 한순간도 버틸 수 없을지도 모른다.
병원 인력 3명 중 1명 이상은 간호사
병원 안의 수많은 의료진 중에서도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직군은 간호사다. 삼성서울병원의 총 임직원 7천여 명 중 3.1천 명이, 서울대병원의 총 임직원 9천여 명 중 3.1천 명이 간호사라고 한다. 각각 전체 인력의 44%, 30% 수준이다.(2022년 기준, 각 병원 홈페이지)
의료법(제2조제2항제5호)에 따르면 간호사의 업무 범위는 크게 ‘환자에 대한 관찰, 자료수집, 간호판단 및 요양을 위한 간호’ 및 ‘의사의 지도 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로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 환자 입장에서 간호사에게 기대하는 역할은 더 광범위하다. 때로는 일방적이고, 무례하기도 하다.
병원 진상들 @ 간호사 bizza가 그리는 병원툰 중
#중년의 환자. 치료 경과가 궁금하다며 예약 없이 난입(?)해 의사를 만나야 한다고 떼를 쓰는 이 분께, 데스크에 있던 간호사는 평정심을 잃지 않고 설명한다. "환자분은 OO일에 중간 검사를 하시고 그 결과가 나오면 ㅁㅁ일날 진료를 보는 것으로 예약이 되어 있으시다. 지금은 시간 상 진료가 어려우시며, 만약 의사를 본다고 하더라도 검사결과가 없으니 말씀드릴 내용도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환자는 꼼짝도 안 하고 했던 말만 반복한다. 급기야는”내가 곧 죽을 거여서 의사가 나 보기가 미안해 괜히 피하는 거 아닌가, 당장 의사 앞에 나를 대령하라”더니, “내가 죽어도 곱게 죽을 줄 알아, 나는 그냥은 못 죽어. 여기서 뛰어내릴 거야!!” 라며 막무가내로 소리를 지른다.
#화가 난 보호자. 창백한 얼굴의 환자를 옆에 두고, 보호자가 울화통을 터뜨렸다. 진료실과 검사실 사이에 정보 전달이 잘 되지 않았는지, 진료실이 있는 A층과, 검사실이 있는 B층을 서너 번씩 오가게 된 것이다. 누가 봐도 병원 측의 과실이 있는 상황. 겪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병원은 필연적으로 환자를 정신없게 만드는 곳이다. 병원 내에서 이동할 일은 생각보다 많으며, 생각보다 쉽지 않다. 채혈실과 검사실, 진료실과 대기실, 탈의실과 화장실, 약국과 원무과를 수십 번도 더 오간다. 컴플레인 장면을 목격하던 모두가 그 보호자와 환자의 마음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지만, 간호사가 할 수 있는 건 죄송하다는 말 뿐이다. “죄송한 마음을 담아서 다음에 오시면 초음파 검사는 써비스 해드릴게요!”라고 말할 수 있는 노릇도 아니지 않나.
#항암실 풍경. 주사제를 준비하고, 혈압을 재고, 주사 바늘을 꽂고, 약물이 투입되는 속도를 확인/조절하고, 중간중간 별 일은 없나 확인하고, 예기치 않은 부작용이 발생하면 응급처치를 하고, 의사를 호출한다. 하루에도 수백 명의 환자들이 방문하는 항암실 근무 간호사들이 그만큼 반복하는 일이다. “안 아프게 놓아주세요, 그전 선생님은 하나도 안 아프게 놓아주셨었는데…”, “왜 제 순서는 안 오나요, 확인해 주세요”, “저 쪽 침대 환자가 너무 시끄러운데 어떻게 해주실 수 없나요” 등과 같이 귀여운(?) 소원 수리 또한 하루에도 여러 번 겪는 일상이다.
부작용이 두려운 나머지 투약을 거부하는 환자, 의사에 빙의해 투약 오더를 내리는 환자, 투약이 끝날 때까지 본인만 봐달라며 놔주질 않는 환자, 무엇이 그렇게 맘에 들지 않는지 올 때마다 욕설을 퍼붓는 환자도 적지 않다. 소위 ‘진상’ 또는 ‘갑질’ 환자들이다.
(이상 내가 병원에서 실제로 목격해 약간의 각색을 거친 에피소드들이다.)
이 모든 상황을 최전선에서 맞이하는 사람들은 간호사들이다. 진료실에서 못다 한 질문은 간호사에게, 불만도 간호사에게, 부탁도 간호사에게, 확인도 간호사에게, 하소연도 간호사에게 한다. 간호사는 전문직과 서비스직 그 중간 어디쯤에 묘하게 포지셔닝되어있는 것 같다.
*감정노동(emotional labor) : 타인에게 보이는 표정이나 몸짓을 나타내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관리하는 것 (Hochschild, 1983)
간호사는 전문적이고 능숙한 실무 수행과 동시에 환자 응대 시 친절함에 대한 요구도가 높은 직무군이다. 그런데 간호사에게 감정노동은 환자를 위한 돌봄이라는 이유로 당연시 여겨지며,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낮다. (임상 간호사의 감정노동과 직무 스트레스, 2018, 주경희)
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 열에 아홉은 환자와 보호자로 인해 감정노동에 시달리지만 ‘참기’를 반복하면서 근무해오고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감정노동을 겪는 순간 간호사들은 분노, 불쾌감, 자존감 저하, 직업에 대한 회의 등의 심경을 느꼈고, 이로 인해 간호 업무에도 매우 많은 영향을 미친다.(감정노동에 관한 연구, 염영희, 2016)
김현아 작가는 "생명을 다루는 직업은 ‘자부심’과 ‘사명감’을 가져야 하지만 병원은 ‘감정노동자’인 간호사를 보호해 주지 않고 때로 환자와 보호자는 간호사가 병원을 떠나게 하는 ‘갑질 고객’이 되기도 한다"라고 말한다. 그는 환자 보호자들에게 폭행을 당한 동료가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는 걸 지켜봐야 했다. 그리고 자괴감에 스스로 병원을 떠나고 만다.
환우 카페 등에서 활동하다 보면 같은 환자가 봐도 조금 억지인 상황을 두고, '간호사가 너무 사무적이고, 친절하지 않다'며 불만을 가지는 환자들을 간혹 볼 수 있다. 환자에게 헌신하겠다며 '나이팅게일 선서’까지 한 사람들이 어떻게 환자인 본인에게 그럴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알까, 알고 보면 나이팅게일은 ‘백의의 천사’가 아니라 ‘전사’에 더 가까운 모습이었음을.
나이팅게일은 단순히 밤낮없이 환자들을 돌보는 친절한 간병인으로만 간호사의 역할을 한정시키지 않았다. 그는 병원 위생의 선구자였으며, 과학적 근거 제시를 통해 병원 시스템을 개혁한 통계학자였고, 200여 편이 넘는 저술로 전문직으로서의 간호사를 양성하는데 힘쓴 현대 간호의 창시자였다. 이로 인해 의료 환경과 환자들의 상태가 대폭 개선됐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부디 간호가 필요한 사람들 때문에 간호를 그만두는 모순된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식당에 ‘손님이 왕’이라는 문구가 걸려있다고 하더라도 폭군처럼 행동하면 안 되듯이, 환자를 위해 헌신한다고 간호사를 헌신짝 취급하면 아니 되지 않겠는가. (물론 대다수의 환자들은 간호사를 포함한 의료진과 병원근무자들을 항상 존중하고 존경하며 감사해마지 않는다고 덧붙여본다.) 환자 본인에 대한 맹목적인 친절을 바라기보다는 의료계의 해묵은 이슈들(이를테면 간호법 제정 등), 의료진 근무 환경의 개선, 환자들의 알 권리와 편의를 찾는데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이면 어떨까. 언젠가는, 언제라도 환자가 될 수 있는 내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미래의 나를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