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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S Jan 23. 2024

EP 01. 시작

서울을 동경한 시골 쥐가 두 달동안 살아가는 이야기

# 2023. 12. 21.  


 꿈에만 그리던 종강이 찾아왔다. 21일 마지막 오전 시험을 끝으로 모든 시험이 끝난 후엔 기숙사로 향해야만 했다. 시험을 준비하면서 장장 일 주일을 제대로 누워서 자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건 사람이 할 짓이 못 되었다. 24시간 중 거진 21시간 정도를 의자 위에 앉아 있으니 발이 퉁퉁 붓고, 기어이 마지막 시험 날에는 이러다가 숨질 수도 있겠구나 하는 것을 진심으로 느꼈다. (농담이 아니다. 왜 몇몇 사람들이 과로사하는지 그 메커니즘을 미약하게나마 체험한 순간이었다.)


왼쪽은 수요일(시험 셋째 날)의 도서관 내 책상 모습. 오른쪽으로 보이는 세 캔의 에너지 드링크와 커피, 어질러진 쓰레기가 눈에 들어온다.


 기숙사에서 세 시간 정도를 자고, 미적분 클레임*을 다녀왔다. 클레임은 안 하면 손해이기 때문에, 내 답안지를 두번 다시 보고 싶지 않았지만 꾹 참고 수리과학관으로 향했다. 사실 클레임 시간은 별 소용이 없었다. 답안지에 뭘 제대로 적은 게 있어야 클레임을 하지. 클레임을 다녀온 것의 의의는 다녀오지 않았을 때의 찝찝함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생각보다 내 시험지를 덤덤하게 잘 보고 온 것 같다. 시험 점수가 너무 역해서 던져버리면 어쩌나 생각했는데.)


* 클레임 : 시험을 보고 난 후 채점된 결과를 확인하고 조교에게 이의 제기를 하는 시간.



 클레임이 끝나고 저녁으로 치킨을 한 마리 시켜 먹었다. 메뉴 고민을 많이 했는데 결론은 역시 치느님이었다. 그러나 치느님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맛있게 먹다가 왠지 모르게 물려서 세 조각 정도를 남겼다. '후라이드 참 잘하는 집' 이라는 상호를 단 치킨집이었는데, 음... 잘하는 집인지 모르겠다. 사실 다른 것 보다도, 도서관에서 스물 네 시간 박혀 있는 생활을 하다 드디어 제대로 밥을 먹고, 마음 편히 유튜브를 보니 이제야 사람 사는 것 같았다. 뭐, 치킨 맛이 중요한가... 이젠 마음이 편한데 뭐.


순살 후라이드를 시켰는데, 처음 열어보니 비주얼이 순살이 아닌 것 같아서 좀 놀랐다.


 사실 이대로 침대에서 더 뒹굴면 좋겠지만, 그럴 수가 없다. 내일이 바로 서울에 올라가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당장 내일 아침 차로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지금 미리 챙겨놓지 않으면 내일 챙길 시간이 전혀 없다. 미리 사다놓은 박스 세 장과 엄마가 옷 보내줄 때 받았던 우체국 박스 하나, 장롱속에 잠자고 있던 캐리어를 꺼내 짐 싸기에 돌입했다. 총 세 분류로 짐을 나누어야 했는데, 하나는 서울로, 하나는 본가로, 하나는 RC* 1층에 있는 창고로 각각 보낼 것들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분류가 쉽지 않았다. 물건 하나를 놓고도 '아... 이 옷은 본가에 보내면 또 찾으러 가기 어려운데 RC 창고로 보내자니 옷 상할 것 같은데...' 하며 대체 행선지를 어디로 정해야 할지 고민하기를 수십 번, 장장 대여섯시간에 걸친 짐싸기는 새벽 네 시가 되어서야 끝낼 수 있었다. 사실 이 시간동안 오롯이 짐만 싼 건 아니고, 여러 딴짓들이 중간중간에 있었다. 가령 시험이 끝나고 씻지도 않고 그대로 잔 덕에 짐 싸기 전 먼저 씻어야 했다던가, 옷을 챙기려고 보니 빨래가 하나도 안 되어있어 두 시간에 걸쳐 빨래를 또 했어야 했다던가...


 그렇게 종강의 기쁨을 누린 하루가 지났다.


대충 정리 중일 때 찍어봤다. 서울에서 글을 쓰고 있는 지금에 보니  싸는건 정말 어려운데, 짐 푸는건 정말 쉽더라.

* RC : Residential College의 약자. 1학년생들이 의무적으로 거주해야 하는 기숙사 21동을 의미한다.



# 2023. 12. 22.


 아침이 되어 눈을 떴다. 다들 한 번쯤은 느껴본 적 있을 것이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왠지 모를 그 개운함. 그리고 밖에가 이상하리만치 밝다는 것...


'오전 10시 26분'


 늦었다. 완벽하게 늦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전날 분명 8시 반부터 9시까지 알람을 무려 일곱 개나 맞춰놨거늘. 드라마틱하게도 알람들은 모두 깔끔하게 꺼져 있었다. 무의식 중의 내가 알람을 듣고는 꺼버린 것이다. 일단 당장 예매해놓은 10시 41분 출발 KTX는 탈 수가 없으니 다른 편을 예매해야 한다. 코레일톡 앱을 들어갔다. 여기서 2차 패닉이 온다.


'매진, 매진, 매진, 매진...'


포항에서 서울 가는 KTX는 눈 깜짝할 새에 표가 다 나가고 없다. 몇 주 전에 예매해도 이미 자리가 들어차 있는데, 당일 예매라? 어림도 없다.


 탈 기차가 없다. 다 매진이랜다. 나 이제 어떡하지? 못 가나? 정말 당황했다. 당장 서울에서 기차 시간에 맞추어 다양한 일정들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모두 틀어지게 생겼다. 정말 손꼽아 기다리던 일도 있어서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KTX 뿐만 아니라 고속버스, 시외버스까지 모두 찾아봤다. 그러나 버스는 생각보다 너무 오래 걸렸다. 절망하고 있던 찰나, 포항에서 서울 가는 차를 다시금 검색해보니 '입석 + 좌석' 아이콘이 하나 생긴 것을 보았다! 12시 37분 차였다. 당연히 이거라도 타야 한다는 생각에 얼른 예매를 눌러 간신히 표를 구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무슨 행운이었을까, 표를 예매하고 약간 미련이 남았는지 다시금 서울 가는 표를 검색했는데, 엥? 이번에는 좌석이 있다? 코레일톡에는 좌석이 하나라도 남으면 버튼에 금액이 표시되는데, 놀랍게도 내가 방금 예매했던 차에서 좌석 취소표가 나온 것이다. 당연히 뒤도 돌아볼 것 없지. 계속 앉아서 갈 수 있다는데. 그런데 놀라움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취소표가 나온 좌석을 보니 창가 좌석에다가, 심지어 창문까지 완벽하게 보이는 그런 자리였던 것이다. (몇몇 자리는 창문 틀쪽에 위치해서 창밖에 잘 보이지 않기도 한다.) 내가 KTX를 예매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두 가지 사항을 모두 만족한 취소표가 나오다니. 예매를 하면서도 어안이 벙벙했다. 하늘이 날 살리려고 그러나? 좀 딱하긴 했을거다. 기말고사 때 그렇게 고생을 하고 짐도 늦게까지 쌌으니, 좀 더 자고 적당한 표 구해서 서울을 가라는... 신의 계시가 아니었을까.


순식간에 입석 + 좌석에서 창가 좌석으로 신분이 상승했다. 이 좌석 표를 예매하고 나서 다시 새로고침을 해봤는데, 아니나 다를까 다시 모든 차가 매진이다.


'오전 11시 55분'


 어제 덜 쌌던 짐들, 이를테면 이불이나 베게같이 마지막까지 필요한 물건들을 박스와 캐리어에 담고 어찌저찌 짐 싸기를 마무리 지었다. 생각보다 꽤 시간이 지나있었다. 씻고, 물건 챙기고, 포장하는 데에 시간이 걸렸거니와, 택배 박스에 송장을 어떻게 붙여야 하는지, 여러 겹으로 되어있는 이 송장들은 다 떼어내야 하는지 등을 몰라 주변에 수소문하기를 십 수 분. 급하게 짐을 내려놓고 이제 퇴사 점검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그새 날아온 우리 층의 단체 톡방에는 RA* 선배께서 '이제 저 말고 모 RA님께 퇴사 점검 받으세요' 하는 카톡이 와 있었다. 모 RA님에게 카톡을 보냈다. 퇴사 점검 좀 해주세요. 읽지를 않으신다. 옆방에 있던 친구도 밑에 부모님이 기다리시는데 퇴사 점검 톡을 안 보신다고 난리였다. 급한 마음에 이 분의 전화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어봤다. 받지를 않으신다. 열이 뻗쳐 9층 단체 톡방에 '모 RA님 카톡 좀 읽어달라. 퇴사해야 하는데 연락을 안 받으시냐' 하고 울분이 담긴 카톡을 보냈다. 그랬더니 방금 모 RA님께 퇴사 점검 받으라던 원래 RA님께 답장이 왔다. '그 분 주무시는 것 같다. ○○○호에 가서 깨워주라.' 바로 달려가서 선배님을 부르짖으니 그제서야 피곤에 절은 얼굴로 나오셨고, 퇴사 점검을 순식간에 받고 짐을 챙겨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RA : Residential Advisor의 약자. RC 각 층에 배정되어 사생들의 생활에 도움(?)을 준다.


우여곡절 끝에 RC에서 나올 수 있었다. 택시도 다행히 빨리 잡혀 이제 한시름 놓나 싶었다.


'오후 12시 29분'


 택시에 오른 나는 깊은 숨을 한 번 들이마셨다가 내쉬어 RC에서 뛰어다니며 차오른 숨을 가다듬었다. 정말 오랜만에 포항에서 먼 곳으로 이동하는 터라 무척 설레었다. 특히나 기차역이나 터미널로 향하는 택시에 올라탔을 때의 편안함과 기분 좋은 느낌은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다. 이제 급할 것도 없어 한껏 들뜬 마음으로 택시에서 내려 여유롭게 사진을 찍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던 찰나. '나 손이 왜 이렇게 가볍지?'


 에라이. 급할 게 없으면 급할 걸 만드는 이 놈의 머리. 택시에 캐리어를 두고 왔다. 트렁크에 캐리어만 따로 넣어서 까먹은 모양이다. 카카오택시로 부른 택시라 이용내역을 뒤져 기사님의 전화번호를 황급히 찾았다. 다행히도 바로 받으시며 하는 말씀이, 안그래도 캐리어를 안 들고 가길래 포항역 한 바퀴 돌고 있다 하셨다.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며 얼른 택시 승차장으로 뛰어가서 캐리어를 겨우 건져올 수 있었다. 이제 시간은 12시 33분. 열차 출발까지는 4분이 남았다. 뛰어...!


 예정에 있지도 않았던 뜀박질을 사서 하다니, 헛웃음이 안 날래야 안 날수가 없었다. 차를 놓치지 않으려 1호차가 내 좌석임에도 불구하고 가까운 8호차에 얼른 올라탔다. 그런데 뜀빡질 한 번으로 끝날 줄 알았던 고난이 또 찾아왔다. 열차 끝에서 끝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캐리어와 이불 가방을 들고 백팩을 맨 채로 통로를 통과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앉아있는 사람들과 부딪히고, 이불 가방은 내 다리에 부딪히고, 캐리어는 맘대로 안 움직이고, 백팩은 무겁고. 예매 한번 성공했다고 일이 순탄하게 풀릴 것이라는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갔다. 신의 계시는 무슨...


왼쪽은 캐리어 두고 내렸단 사실을 알아차리기 전 여유롭게 찍은 사진. 오른쪽은 캐리어 찾고 플랫폼으로 뛰어갈 때 찍은 사진. 사진 찍을 시간은 있었는가 보다.


 겨우겨우 1호차 뒷편 짐 보관함에 캐리어와 이불 가방을 넣어놓고 내 자리에 앉았다. 벌써 진이 다 빠졌다. 그러나 그 난리에도 불구하고 기차에서 바라보는 창 밖 풍경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잠깐 앉아 숨을 고르고, 점심도 먹지 않고 여기까지 온 터라 자판기로 향했다. 간단한 과자 종류와 음료를 팔고 있었는데, 군것질이 내키지는 않아 포카리 한 병만 뽑아 마셨다. 자리에 앉아 연말에 내려갈 기차표를 둘러보기도 하고, 연세대 학사팀에 이것저것 문의도 하고, 잠깐 졸기도 하니 어느덧 동대구, 김천구미, 대전, 오송을 거쳐 서울역에 열차가 닿는다.


항상 그랬다. 광명역을 지나 경부선 광역전철과 섞여 기차가 달리고 있노라면 서울에 다 왔다는 느낌이 물씬 들어 가슴이 뛴다.


'오후 3시 18분'


 혹한으로 열차가 서행했던 탓에 십여 분 늦게 서울역에 도착했다. 내가 앉은 자리가 1호차여서 앞쪽 출입문이 없던 터라 뒤쪽으로 사람들이 몰렸다. 그 틈에 휩쓸려 내리고 나니 발걸음은 꽤 가벼웠다. 손을 주머니에 찔러넣고 뒤쪽 에스컬레이터로 향했다.


 잠깐, 주머니에 뭘 넣어?


 그렇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것이다. 기차에 캐리어랑 이불 가방을 또 내버려두고 왔다. 다행히도 주머니에 손 넣는 습관 덕에 금방 알아차려 아직 차고지로 출발하지 않은 기차에 다시 올라탔다. 또 좌석 사이를 헤치고 짐 찾기를 반복하니 헛웃음이 절로 새어나왔다. 정신이 없긴 많이 없구나.


 KTX를 다시 예매해서 한 가지 이득을 본 것은, 룸메 형이 차로 서울역까지 데리러 오실 수 있었다는 것이다. 원래 기차로 갔으면 오후 1시 쯤이어서 데리러 오기 어려웠는데, 오후 3시 쯤이라 와줄 수 있다고 하셨다. 안그래도 요 손에 거슬리는 두 녀석 때문에 지하철을 탔으면 무슨 불상사가 났을 지 모르는데, 한 번에 편하게 갈 수 있어 여간 좋은게 아니었다. (에이, 설마 지하철 타서 또 짐을 놓고 내렸겠냐마는...)


 

내가 살 빌라와 정리가 끝난 방안의 모습. 사실 아직 기숙사에서 부친 짐이 오지 않아 나중에 더 정리해야 한다.


 '오후 4시 23분'


 서울특별시 은평구 ○○동 ○○번지. 나에게 두 달동안 주어진 새 주소다. 울산을 벗어나 대학교를 갈 때만 해도 경상북도라는 새 주소가 꽤 신기하게 느껴졌는데, 이번에는 서울이라는 이름이 앞에 붙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사실 실감은 잘 가지 않았다. 내가 서울을 살게 되었다니... 수도권 인구가 2000만이고 서울 인구만도 900만이 넘어가니 서울에 산다는 것은 어찌 보면 특별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서울은 늘상 내가 동경하는 장소였고, 나는 이제 내가 동경해왔던 것들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설레지 않는가.


 짐을 풀어보니 짐을 쌀 때와는 다르게 일이 금방 끝났다. 기숙사에서 부친 택배가 아직 오지 않았기도 하고, 내가 짐을 쌀 때 너무 공들여서 싼 탓에 짐 푸는게 훨씬 쉽다고 느꼈을 것이다. 이제 여기가 내가 살아갈 곳이라니 - 기분이 묘하다.


 이제 뒷 일정으로 동서울 터미널에서 올라오는 형과 만나야 해서, 할 것도 없는 참에 터미널로 마중을 나갔다. 형과 신촌을 돌아다니고, 이것저것 맛있는 것도 먹으며 서울에서의 첫날 밤을 마무리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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