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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새월 Jan 06. 2024

남의 뷰파인더(1)

네 번째 이야기



    따뜻한 햇볕에 반항하는 차가운 바닷바람이 흔들릴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어루만져 주는 날이었다. 제주도 아래쪽에 위치한 송악산 둘레길은 한산했다. 성수기도 공휴일도 아닌 주중의 송악산은 사람보다 풀과 바위, 나무와 나무의 후신인 울타리가 더 많았다. 오늘 같은 날에야 송악산은 사람에 눌려왔던 자기 피부를 시원하게 뽐낼 수 있었다. 바닷바람은 이를 위로하듯 갈대 무리를 쓰다듬었고, 몇 안 되는 관광객 입장에서는 바람이 자신을 비웃는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소수의 관광객들이 자연 속에서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사람을 기억하며 치유했지만, 한 청년은 바닷바람이 권하는 악수를 매몰차게 뿌리치고 우두커니 서있었다. 청년의 정돈되지 않은 검은 머리칼만 바다 내음 담긴 바람의 손을 잡아줬다. 청년은 문인이었다. 

    정확히는 문예창작과 학생이고, 며칠이 지나면 문인이 아니게 될 수도 있었다. 그 중요한 기점에 차분한 자기 투영을 해야 하는 청년은 자기가 애써 찾은 자연경관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기 자신을 바라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자기 자신 뿐이지, 사람이 있고 없고, 콘크리트가 지배하고 아니고는 정서의 문제에 불과했다. 그는 확실히 부족함을 느꼈고, 이를 높이라고 이해했다. 그래서 하늘과 더 가깝고, 결국은 바다와 맞닿은 절벽 쪽으로 올라갔다. 


    절벽 쪽으로 올라가 보니, 바다가 하늘을 등에 업고, 울타리가 바다를 등에 업고 있었다. 직선 몇 개로 설명되는 그 광경은 그가 인지한 부족함을 해소해 주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한결 가벼운 고요를 선사했다. 줄 지은 울타리를 따라 왼쪽으로 시선을 옮기니 웬 여성이 카메라를 한쪽 눈에 밀착하고 있었다. 

    그녀는 작은 넝마로 눈을 가릴지, 하관을 가릴지 고민하는, 핼러윈 코스튬을 처음 시도해 보는 들뜬 유치원생처럼 위치를 바꾸며 카메라를 얼굴에 붙였다 떼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그녀의 카메라 렌즈를 통해 별자리를 잇는 것처럼 꺾였다. 갈매기 한 마리가 절벽 쪽으로 천천히 날아오고 있었다. 그녀는 울타리에 한쪽 발을 올리거나, 카메라를 울타리 기둥에 올려 아예 앵글을 낮추는 등 여러 시도를 했다. 그녀는 갈매기가 자기가 있는 절벽 쪽에 앉아줄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그녀는 갈매기가 이 절벽을 지나 다른 쪽으로 날아갈 것이고, 그 모습을 최대한 가깝게 찍고 싶었다. 


    그녀는 사슴을 사냥하는 유럽 사냥 동호회의 회원처럼 렌즈로 갈매기를 겨냥하다, 사진작가 특유의 조급함을 느꼈다. 그녀는 이윽고 울타리를 넘어가 절벽 끝 쪽으로 다가갔다. 청년도 작가 특유의 무례함을 빚어 울타리 쪽으로 다가갔다. 갈매기도 점점 그들 쪽으로 다가갔다. 세 생명이 지금 막 불꽃을 튀길 것 같았고, 또 다른 여러 생명인 낮은 들과 생명과 다를 바 없는 송악산 일부가 얼굴을 들이밀며 관심을 표했다. 

    그녀는 갈매기의 부리가 자기 카메라의 렌즈를 뚫고, 자기 오른쪽 눈을 꿰뚫어도 아무런 미련이 없는 것처럼 몸을 기울였다. 이를 갈매기가 헤아렸어도 둘이 부딪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영특한 갈매기는 그 렌즈가 쇠냄새나는 총구가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느꼈지만, 갈매기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자기가 타고 있는 바닷바람뿐이었다. 갈매기는 지휘자의 사인에 반응하는 콘서트마스터처럼 수평적인 충성심을 느끼며 그녀의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녀는 이 코너링을 카메라에 담고자 몸을 틀었다. 청년은 울타리를 넘어서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의 무례함의 렌즈로 파악해 봤을 때, 그녀가 확립한 울타리 바깥쪽으로 자신이 침범해서는 안 됐다. 그가 뿌듯한 아쉬움으로 자제력에 집중하고 있을 때, 그녀는 드디어 셔터를 눌렀고, 발을 헛디뎠다. 그는 떨어지는 그녀의 몸을 보자마자 울타리를 뛰어넘었다. 알량한 이타심이 아니라, 작가 특유의 몰입력 덕분이었다. 그가 절벽 쪽으로 다가갔을 때쯤, 그녀는 이미 몸을 뒤집었다. 그녀의 손에는 자기 자신과 비슷하게 중대한 것이 들려 있었기 때문이다. 


"야! 받아!"


    그녀는 원래 풀 쪽으로 던지려 했던 카메라를 무리해서 그에게 던졌다. 그러다 절벽 바위에 머리를 부딪혔다. 그는 엉겁결에 카메라를 받은 뒤 절벽 아래를 바라봤다. 떨어지는 그녀를 보지는 못했고, 퐁당 소리 없이 갈라지는 바다에서 일렁이는 아슴푸레한 거품만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자기 손아귀에 안긴 남의 카메라를 바라봤다. 카메라에 생긴 생활 기스나 그녀가 붙인 스티커에 관심이 생길 무렵, 바람소리가 그의 뺨 한 편을 때리며 비상전화를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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