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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새월 Mar 18. 2023

나간 지 하루는 지나야 가출이다

세 번째 이야기


1


    자정을 막 넘긴 시간대, 번화가와 연립주택들이 즐비한 외진 골목 그 사이. 정확히는 아직 외진 골목길을 한 학생이 터벅터벅  걷고 있었다. 가로등은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이미 지쳐 보였고, 그 빛은 틀림없이 밝았다. 슬슬 염색을 준비하는 나무들은 언제나 쉬지 않고 일하지만 쌩쌩해 보였고, 열심히 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모두가 봐도 게으른 것처럼 보였다. 

    익숙한 풍경들이 익숙해지기도 전에 관심을 거둔 그 학생은 시원한 환절기 바람을 맞으며 무작정 걸었다. 그가 고등학교를 들어가지 않았든,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것처럼 생각하든, 누가 봐도 고등학생이라는 인상을 지을 수 없었다. 또래 대부분이 그 시야를 관성적으로 싫어하지만, 잃기 직전의 아름다움에 대한 부러움을 아름다운 당사자들은 알지 못한다. 이 남학생도 자신의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있지는 않지만, 남학생은 애초에 자신의 아름다움에 관심이 없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아스팔트 위를 밟으며 나는 소리를 경외감 없이 반복해 들을 뿐이었다. 


    남학생은 어느 공원에 도착해 걸음을 멈췄다. 그네는 그네답게 낡아 사슬이 변색됐고, 미끄럼틀은 무슨 영문인지 윤이 나도록 깨끗했으며, 시소는 뻔뻔하게 수평을 이루고 있었다. 유년기 시절을 기억하지 못해야 흐뭇한 웃음을 지을 수 있는 놀이기구들 옆에, 두세 개의 마주 보는 벤치에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원래 그 공간은 고요함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이 고요함을 기대하고 오는 곳이었지만, 도란도란한 말소리가 곧 들릴 게 뻔한 소리들이 무리 지어 있었다. 

    중국집 쇠가방 문을 여는 소리, 그릇을 벤치에 놓았다 자리를 옮기는 소리, 일회용 젓가락을 개봉하는 종이 찢는 소리, 듣고 싶어서 듣지는 않지만 짜장면 비닐을 벗길 때 나는 뭉툭한 소리. 남학생과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남자와 여자 둘이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배달용 오토바이의 달달 거리는 엔진소리가 유난히 거슬렸고, 그거 좀 어떻게 해보라는 한 여자의 닦달에 남자는 키를 빼고 오토바이를 아예 눕혀버렸다. 오토바이는 원치 않게 주저앉은 말처럼 기형적인 모양새였지만, 이빨을 부딪히거나 발굽으로 바닥을 긁어 서슬 퍼런 소리를 낼 수는 없었다. 


    남학생은 상황을 보고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자리를 뜨려 했다. 눈길을 줬기 때문에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짜장면 무리 중 목소리가 가장 큰 여자가 남학생이 눈길을 돌려 자신들을 보고, 다시 시선을 거두는 것까지 봐 버렸다. 


“야!!!”


    여자는 큰 목소리로 남학생을 부르며 여기로 오라는 손짓을 했다. 불량한 무리들의 일시적인 시비였다면 남학생은 조금도 놀라지 않고 무시했을 테지만, 남학생은 여자에게서 그런 삐딱함을 조금도 느끼지 못했다. 남학생은 그게 놀라웠고, 그걸 느낀 자신의 상황도 놀라웠다. 


2


남학생은 짜장면 무리에게 짜장면 한 그릇을 받았다. 


“너도 먹어, 어차피 먹어야 돼” 


목소리가 큰 여자는 일회용 나무젓가락을 건네주며 식사를 권했다.

남학생은 대충 얼버무리고 자리를 뜨려 했지만 시선은 짜장면 그릇에, 정확히는 그 그릇을 자신에게 건네는 여자의 엄지 손가락에 가 있었다.  

      

“저, 밥 먹었는데요…”

“구라 치지 말고 그냥 먹어.”


    하지만 남학생의 입은 정적이지만 정돈되지 않은 남학생의 정서를 무시하고 말을 뱉었고, 목소리가 큰 여자는 식사를 강권했다. 그녀는 자신이 알아챈 게 흔들리는 남학생의 머릿속인지, 식사를 안 했다는 남학생의 거짓말인지까지는 알지 못했고, 아무렴 상관도 없었다. 


“괜찮아요, 그거 공짜예요.”


목소리가 큰 여자 옆에 정갈하게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대꾸했다. 


“누가 보면 니가 가져온 줄 알겠다.”


거무죽죽한 바람막이를 입은 남자가 뻔뻔한 어투로 말했다. 


“누가 보면 돈 받으려고 하는 줄 알겠네.”


    교복을 입은 여학생은 바람막이를 입은 남자보다는 덜 뻔뻔하지만 그래도 뻔뻔한 어투로 말했다. 그들의 눈빛 교환을 보다가 갑자기 피곤해지기 시작한 남학생은 별 반항 없이 나무젓가락을 둘로 쪼개 짜장면을 비비기 시작했다.


“우리 다 오늘 가출했고, 길 가다 처음 만났어. 너도 가출한 거 맞지?”


    목소리가 큰 여자는 자신의 판단이 기정사실이기를 바라듯이 남학생에게 질문했다. 다시 보니 그들은 모두 남학생과 비슷한 또래였고, 이를 판단할 수 있는 지표는 여학생이 입고 있는 교복도, 목소리가 큰 여학생의 친화력도, 배달용 바람막이를 입은 지 얼마 안 된 남학생의 어색함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봐야죠.”


남학생은 자세히 설명할 힘이 없어 자세히 설명하기 싫다고 생각하기로 했고, 실제로 그랬다. 


“그럼 가출한 거 맞네.”


바람막이를 입은 학생은 자신의 통찰력을 과시하는 것처럼 말한 뒤 한 번 손뼉을 맞댔다. 교복을 입은 여학생은 그 소리에 놀라 집고 있던 단무지를 떨어뜨렸고, 그 ‘짝’ 소리가 유난스럽다고 생각했다.  


“그쪽은 몇 살이에요? 저희는 다 18살이에요.”

“됐어, 대충 비슷비슷할 텐데 그냥 말 놔.”


목소리가 큰 여학생은 교복 입은 여학생의 질문이 어이없다고 생각했다. 교복을 입은 여학생은 목소리가 큰 여학생의 말이 납득이 갔지만 그래도 기성적인 거부감이 들기 시작했다. 


“너는 왜 가출한 거야?”


갑작스럽고 직설적인 질문에 남학생은 말문이 막혔지만, 목소리가 큰 여학생은 남학생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말을 이었다. 


“나는 엄마랑 싸우다 나왔고, 얘는 모의고사 때문에 나왔고, 쟤는 월급을 못 받아서 빡쳐서 도둑질까지 했어.”


목소리가 큰 여학생은 자기 옆에 둘의 소개까지 자기가 해버렸고, 짐짓 뿌듯해했다.


“그게 뭐야, 설명을 제대로 해야지.”

“월급 못 받은 게 내 잘못이냐?”


    교복을 입은 여학생은 억울하다는 듯이 반발했고, 바람막이를 입은 남학생은 찜찜하지만 그래도 할 말은 있다고 따지기 시작했다. 한 곳으로 모인 셋의 시선이 관성 때문에 중간에 있는 탕수육 쪽으로 내려가기 시작했고, 그래도 셋은 입을 쉬지 않았다.


“나는 그냥 나왔어.” 


남학생은 지금 말하는 것이 가장 신상에 좋을 것이라고 본능적으로 파악했다. 면발을 뒤적거리며 시선은 놀이터 벤치 위의 지붕에 놓고 답지 않게 학생들의 눈치를 봤다.


“뭐야 그게… 재미없게.”


    목소리가 큰 여학생은 약간 서운한 것처럼 확실히 들리는 한숨을 쉬고 탕수육을 먹었다. 나머지 둘도 괜히 탕수육을 입에 넣고 이빨로 젓가락의 질감을 체감했다. 남학생은 자리를 뜨고 싶은 욕구가 샘솟았지만 이 적막은 적임자에 의해 편린도 없이 부서졌다.


“야! 너도 같이 와서 먹어!”


    목소리가 큰 여학생은 그새 또 공원을 지나치는 또래를 발견해서 식사를 권했다. 츄리닝을 입은 남자는 깜짝 놀랐지만 첫 번째 참여자와는 달리 주린 배를 속이지 않았다. 츄리닝을 입은 남자는 처치 곤란한 짬뽕 한 그릇을 받았고, 몇 번의 대화 끝에 그도 가출한 학생임을 알 수 있었다. 셋의 관심이 잠시 그쪽으로 쏠린 덕분에 남학생은 첫 입을 뜰 수 있었다. 남학생의 예상과는 달리 짜장면은 그리 불지 않았다. 



    짜장면 몇 그릇과 짬뽕 몇 그릇, 탕수육 한 접시와 받는 사람은 다르지만 서비스 잡채밥까지, 학생들은 그 나이대에 걸맞은 속도로 접시들을 비웠다. 주린 배를 개의치 않아 하던 남학생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릇과 젓가락이 부딪혀 나는 미세한 달그락 소리도 이내 잦아들었다. 적어도 치우는 것에는 능숙한 바람막이를 입은 남학생의 도움으로 그릇들은 신속히 철가방 안쪽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친 학생들은 누구 할 것 없이 식곤증으로 어지러웠지만, 학생들이 바깥에서 여유 부리는 밤은 학생이기 때문에 특별했다. 학생들은 츄리닝 입은 남학생이 가져온 초콜릿 바를 먹으며 입가심을 했다.


“이건 어디서 난 거야?”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천성적인 따뜻함으로 일용할 간식거리의 출처를 물었다. 


“이거 오늘 회사에서 받은 거야.”


츄리닝을 입은 남학생은 초콜릿 바의 달달함을 애써 저평가하며 더 바삭바삭하게 먹기 위해 턱을 잘근 씹었다. 


“뭐야? 가출이 아니라 야근이었어?”


바람막이를 입은 남학생은 괜한 배신감으로 초콜릿 바 포장을 뜯다가 손가락을 멈추고 떨구고 있던 시선을 들어 올리며 물어봤다. 


“그게… 내가 프로게이머 준비하고 있는데, 거기 소속사에서 연습생들 주는 거 받아온 거야.”


츄리닝을 입은 남학생은 되려 표정이 나른해져서는 쓴웃음 짓고 초콜릿 바 포장지를 꾸겨 쓰레기통 구석에 던졌다. 


“그러면 너 선수야?”

“은퇴하면 방송하고 잘 먹고 잘 살겠네.”


교복을 입은 여학생과 바람막이를 입은 남학생은 관심을 가지며 자기 모습 중 일부를 투영 혹은 표출하면서 츄리닝을 입은 남학생의 반응을 살폈다. 츄리닝을 입은 남학생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혼나듯이 질문받았다.


“너 가출한 거는 맞잖아, 왜 나왔는데??”


목소리가 큰 여학생은 무언가 호소하듯이 이번에도 기정사실이 되었으면 하고 대답을 재촉했다.

 

“근데, 내가 선수할 정도의 실력은 안 돼서, 오늘 에이전시한테 한 소리 들었어. 힘들 것 같다고. 나도 별말 안 하고 그만둔다고 했어.”


츄리닝 입은 남학생은 힘들지 않았지만 학생들은 그가 힘들어하는 것처럼 보였다. 혹은 그 반대 거나. 교복을 입은 여학생은 위로하고 싶었고, 바람막이를 입은 남학생은 안심했으며, 남학생은 그저 듣고만 있었다. 


“그래서 왜 가출했냐니까?”


목소리가 큰 여학생만이 츄리닝을 입은 남학생을 위해 아무 감정도 준비하지 않고 내면의 이야기를 재촉했다.


“내가 공부를 잘 못하고, 그래서 안 하는데, 계속 그러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잖아? 내가 게임은 잘하니까 부모님한테 욕먹어 가면서 진지하게 프로 준비했는데 잘 안 됐어.”

“그래서?”


목소리가 큰 여학생은 자기도 상대를 재촉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하는 말들이었지만,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너무 그러지 마, 기분 안 좋을 거 아니야.”

“그래도 질질 짜지는 마. 분위기 안 좋아져도 다른 데 갈 곳도 없으니까.”


교복을 입은 여학생은 바람막이를 입은 남학생의 발언에 타박의 방향성을 시선과 함께 그쪽으로 돌렸고, 바람막이를 입은 남학생은 어깨를 으쓱하며 천장을 보는 척 오늘 오후를 돌이켜봤다. 


“아니, 기분 안 나빠. 그게 문제인 거야.”


츄리닝을 입은 남학생은 목소리가 큰 여학생의 눈치를 보며 말을 이었다. 


“내가 축 쳐져서 우울한 티를 안 내면 엄마, 아빠가 내가 놀고 싶어서 나댄 줄 알 거 아니야. 며칠은 나갔다 들어와 줘야 신상에 좋지.”


목소리가 큰 여학생은 만족스러운 대답에 눈웃음 지었다. 바람막이를 입은 남학생은 사뭇 침울해져 표정이 어두워졌고, 교복을 입은 여학생은 동질감을 느끼며 말했다. 


“나랑 반대네! 아니 결국 비슷한 건가.”

“너는 왜 가출했는데?”


츄리닝을 입은 남학생은 간절하지만 경계하며 교복을 입은 여학생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나도 부모님들이 나 눈치 보라고 가출한 거야.”

“모의고사 점수 때문에?”


바람막이를 입은 남학생은 이번엔 악의나 자기혐오 없이 물어봤고, 교복을 입은 여학생은 이를 알아챘다는 듯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모의고사는 잘 봤어, 평소처럼.”

“그럼 뭐가 문제였는데?”


목소리가 큰 여학생도 안에 있는 독기를 죽이고 교복을 입은 여학생의 이야기에 관심을 표했다. 남학생도 아까부터 귀담아듣고 있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군말 없이 공부했고, 다행히 잘했는데, 그냥 좀 답답하더라.”

“뭐가 답답했는데?”

“그런 거 없어, 그냥 답답했어. 부모님들이 공부를 강요한 것도 아니고…"


목소리가 큰 여학생은 빨리 진실을 알려 달라는 듯이 교복 입은 여학생을 지긋이 바라봤다. 


“내일 퇴근하실 때쯤 들어가서 잘 본 모의고사 성적표 보여줄 거야. 그러면 엄청 놀라시겠지? 근데 그거면 됐어.”

“완전 반대 맞네.”


    츄리닝을 입은 남학생은 다른 말이 안 떠올라 강하게 반응했고, 바람막이를 입은 남학생은 완전 반대보다는 정확히 반대라고 생각했다. 교복을 입은 여학생은 헛기침을 하며 후련함과 생경함을 느꼈다. 남학생도 무언가를 느꼈다. 목소리가 큰 여학생은 갑자기 우울해져 앉는 자세를 격동적으로 바꿨다. 


4


바람막이를 입은 남학생은 입이 근질근질했지만 자기가 먼저 화두를 꺼낼 수는 없었다. 


“월급 못 받은 거는 노동청에 신고해 봐. 덕분에 잘 먹긴 했지만.”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물꼬를 틀어줬다. 바람막이를 입은 남학생은 고등학생답게 신나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하면, 월급은 어제치까지 다 받았어. 내가 염병이란 염병은 다 떨어서.”


학생들은 이제 여기서 물어보지 않았다. 


“근데 나는 너무 좆같았거든? 어떻게든 엿을 먹여야겠다고 생각했어. 오늘 우리가 먹은 것들이 대충 4만 원 어치인데, 내가 4시간 일하면 받는 돈이랑 비슷해. 나는 어제 딱 4시간만 일하고 배달 갔다 온답시고 오토바이 채로 쌔벼온 거야.”

“독한 새끼네…”

“내가 아까 말한 거랑 뭐가 다른데?”


츄리닝을 입은 남학생은 저런 대범함에 감탄하는 자신이 의외라고 생각했고. 목소리가 큰 여학생은 어이없지만 기분은 좋은지 손가락질을 했다. 


“우리랑 같이 안 먹었으면 어쩌려고 그랬어?”


교복을 입은 여학생은 살짝 겁먹은 듯이 나지막이 물어봤다.


“몰라. 버리든 모르는 사람한테 나눠주든 했겠지.”

“경찰서 가는 거 아니야?”

“몰라, 나도.”


    그 꽃이 아름답든 억세든, 이야기 꽃을 피우던 중 대로와 골목 사이를 연결하는 길목 쪽에서 사이렌 소리가 아련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점점 커지기 시작했고, 소리의 출처를 확인할 필요도 없었지만 경찰차가 시야에 잡히기 시작했다. 경찰차는 공원 모서리 근처에서 멈췄고, 경찰 아저씨들이 소리를 지르며 학생들 쪽으로 뛰어오기 시작했다. 목소리가 큰 여학생이 가장 먼저 벌떡 일어났다. 바람막이를 입은 남학생은 뒤늦게 소름이 돋았고, 벌떡 일어나 경찰 아저씨들이 오는 쪽과 반대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교복을 입은 여학생과 츄리닝을 입은 여학생은 어안이 벙벙해 가만히 앉아 있었고, 남학생은 느리지만 일어나서 목소리가 큰 여학생의 표정을 살폈다. 


    남학생은 바람막이를 입은 남학생이 뛴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남학생은 혼자인 채로 밤을 지새우려 했지만 갑작스러운 다른 학생들과의 만남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른들과 남은 밤을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나머지 둘도 일단 따라갔다.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목소리가 큰 여학생을 붙잡고 같이 가려 했지만 표정을 보고 바로 뒤돌아 뛰었다. 목소리가 큰 여학생은 차분히 경찰 아저씨들을 맞이했고, 수갑이 채워지기 직전까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몸부림을 쳤다. 뛰어간 세 학생들은 주고받기 보단 치고받는 그들의 대화 소리를 어렴풋이 들으며, 목소리가 큰 여학생이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5   


세 학생은 골목 벽에 기대고 앉아 헐떡이는 바람막이를 입은 남학생 옆까지 와서 숨을 골랐다. 자초지종을 들은 바람막이를 입은 남학생은 다시 한번 심호흡을 하고 입을 열었다.


“난 다시 그쪽으로 가야겠어.”


놀란 세 학생은 바람막이를 입은 남학생을 바라봤다. 학생들은 이번에도 여기서 물어보지 않았다.


“사실 난 알바비를 못 받은 적이 없어. 하고 싶은 거도 없고 공부도 못해서 일단 돈이나 벌어보자고 시작한 건데, 오늘 배달을 나왔다가 어디로 배달을 가야 할지 까먹은 거야.”


세 학생은 이번에도 여기서 물어보지 않았다. 


“근데 그게 너무 쪽팔린 거야. 식당에 전화해서 물어보기도 싫었어. 그렇게 지금까지 밖에 있었던 거야.”


바람막이를 입은 남학생은 젊은 나이를 논하는 어른들의 얼굴을 흉측하게 생각하기로 마음먹고 말했다.


“니네는 나보다 낫잖아. 그냥 빨리 집에 들어가.”


바람막이를 입은 남학생은 다른 세 학생의 얼굴을 보기가 무서웠지만 큰 소리 내며 여섯 눈동자를 바라봤다.큰 용기를 얻고 다시 그 공원으로 뛰어갔다. 도망칠 때보다 더 빨리 뛰고 싶었지만 체력 때문에 그건 무리였다. 


6


    교복을 입은 여학생과 츄리닝을 입은 남학생, 그리고 남학생은 골목길을 걷고 있었다. 가로등은 곧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고, 듬성듬성 서있는 나무는 여전히 늠름했다. 하늘색이 표시가 날 정도로 바뀐 즈음, 슬슬 거리에 다른 행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너는 말하고 싶지 않아?”


츄리닝을 입은 남학생은 남학생에게 물었다. 남학생은 많이 고민해 본 주제에 대해 별 고민 없이 덤덤히 말했다. 


“응, 할 이야기가 없어.”


츄리닝을 입은 남학생은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나는 여기서 꺾으면 돼, 너네는?”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오래 입은 교복 마이 때문에 불편했는지 기지개를 켜면서 물어봤다.


“나는 반대쪽으로 꺾으면 돼, 너도 집으로 돌아가는 거지?”


츄리닝을 입은 남학생은 되려 너무 편한 복장이라 빨리 침대에 눕고 싶었다. 


“나는 직진이야.”


남학생은 묵묵히 대답했다.


“여기서 헤어지자, 만나서 반가웠어!”


    셋은 갈라져 걷기 시작했다. 교복을 입은 여학생은 부모님들의 놀라거나 화난 표정에 놀라지 않기 위해 양 볼을 만져보기 시작했다. 츄리닝을 입은 남학생은 이제부턴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는 거짓말을 언제까지 거짓말로 삼을지 진지하게 숙고하기 시작했다. 남학생은 이제야 예상 가능한 졸음이 덮쳐왔다.


    남학생은 골목길을 지나 대로에서 횡단보도 두 개를 건너고, 다시 골목길을 지나 집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갔지만 남학생을 반겨주는, 출근이나 아침 식사 준비로 번잡한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남학생은 혼자 살고 있다. 혼자 사는 남학생은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고, 눕자마자 잠에 들었다. 가로등은 꺼졌고, 언제나 일하던 햇살은 드디어 사람들 눈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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