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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새월 Mar 11. 2023

연기였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


1


    조금 넓은 회색 사무실에 긴 테이블이 하나 있었다. 그 테이블의 긴 세로에, 있어 보이는 건지 있어 보이려는 건지, 아무튼 장엄한 표정을 지은 몇 명의 아저씨들과 아줌마들이 앉아있었다. 그들은 태블릿 화면을 보거나, 전혀 무게감 없는 프린트 쪼가리를 보면서 테이블 앞쪽 넓은 공간의 가운데에 서있는 여성을 흘끔거렸다. 그곳은 어떤 영화의 어떤 배역을 결정짓는 어떤 오디션장이었다. 여성은 시작하겠습니다라고 뭉개지는 발음으로 말하며 손짓 발짓과 함께 연기를 시작했다.


“저는 당신을 사랑하기 위해 나 자신을 사랑했어요. 그런데…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요?”


여배우는 어눌했던 첫 발화의 떨림을 이겨내고 감정을 다리 삼아 다른 누군가에 성공적으로 도달했다. 그 누군가는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배우의 비애라고 볼 수 있다.


“제가 대체 뭘 느낀 줄 아세요? 그딴 거에 관심이나 있었나요?"


    여배우는 지금 연기가 연기를 시작한 이후로 가장 깊이 있는 순간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그러자 눈에서 눈물이 망울지기 시작했고, 께름칙한 감독과 연출진들의 표정도 뇌리에서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은 그들은 그녀의 목소리를 라디오 마냥 겸해 들으며 하품을 참기 시작했고, 빈 커피잔을 이번엔 시럽 가득 넣은 달달한 것으로 채우기를 원했다.


벌컥


    밖에 있는 사람이 발로 문을 차면서 들리는, 짜증 섞인 감정이 전염되는 것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감독과 연출진들은 동시에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떤 남성이 장구를 목에 메고, 각목을 양손에 들고는 오디션장 안으로 들어왔다. 여배우는 끊긴 흐름을 무시하고 다시 마음을 다잡으려 터질 것 같은 진짜 울음을 흥건한 눈으로 참았다.


“으아아아아아아!!!”


    남성은 있는 힘껏 괴성을 지르고는 각목으로 장구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그 소음은 장구의 잠재력을 아득히 뛰어넘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바지 뒷주머니에 걸어 놓은 스피커에서 연발하는 총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기 때문이다. 그 총소리는 한국인이 들어도 익숙한 것들이었다. 각종 영화 명장면에서 샘플링한 소리들이었기 때문이다.

    남성은 발을 구르며 굉음으로 공간과 사람들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고, 그가 목에 걸고 있는 장구는 소음의 지원병이 아니라 춤사위의 오브제였다.


“저 미친놈은 뭐야?”

“빨리 내보내!”

“누가 손 좀 써봐요!”


    당황한 감독은 어이가 없어 소리쳤고, 연출진 막내는 저 남성을 내보내는 것이 결국 자신이 해야 할 일로 떨어질 것을 확신했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 대책이 서질 않아 황급히 대화에 참여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결연한 것처럼 시간을 벌었다.


    그들에게 이 광경은 어이없는 일이지만 한 여배우에게 이 광경은 재앙에 필적했다. 그녀는 어쩌면 생애 가장 아름다울 수도 있던 순간이 기괴하고 창작적인 난동으로 난도질 당해 격한 감정이 벅차올랐다. 무엇보다 그녀가 가장 기분 나빴던 것은, 자신의 오디션을 망친 광인보다, 이 상황에서 자신에게 조금의 눈길도 주지 않는 감독과 연출진들이었다. 각목에 장구 측면이 찢어졌고, 장구는 이윽고 장구소리가 아닌 나무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여성은 참다못해 울음을 터뜨렸고, 다시 한번 테이블에 편히 앉아있는 작자들의 눈길이 한쪽으로 쏠렸다. 하지만 그녀를 향한 시선은 아주 잠깐에 불과했다.


"흐으으윽!!"


    광인은 그녀의 울음을 보자마자 큰 곡성소리와 함께 울음을 터뜨렸다. 광인은 그녀에게 눈을 맞추며 자신의 비명이 진실됨을 호소하고 싶었지만, 여배우의 양눈은 이미 눈물로 뿌옇게 도금되어 무언가를 직시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다시 테이블 위에 10개 남짓한 눈알들이 광인 쪽을 바라봤다. 광인은 화나지만 그게 화가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어린아이의 울음처럼 껑껑 대면서 오디션 장 밖으로 달려 나갔다. 사무실은 마치 그 벽면이 밝은 무지갯빛에서 칙칙한 회색으로 급변한 것 마냥 정적이 흘렀고, 여배우가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흐느끼는 소리가 마지막으로 촬영용 카메라에 담겼다.


2


“9시 뉴스 지상현입니다! 요즘 이 남성이 화제인데 여러분 혹시 알고 계시나요?”


화면 속 남성이 양손에 빨간 봉을 들고는 건물 출입구에서 춤을 추고 있다. 사람들이 그에게 욕설을 내뱉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안무를 속행했고, 주먹으로 몇 대 맞는 장면이 시작되기 직전 영상이 일시정지됐다.  


“이 건물은 박잔옥 감독 신작 영화의 오디션장인 데요, 이 남성이 부린 난동 때문에 오디션 스케줄에 큰 지장이 생겼답니다. 다음 영상은 다른 영화 오디션장에 설치된 cctv에서 어렵게 구했습니다. 보시죠!”


    화면은 복도 한편을 지나치게 정적으로 잡은 주제에 현실감을 살리기 위한 의도였다고 주장할 법한, 뻔뻔한 삼류 영화감독의 인터뷰로 설명될 것 같은 구도로 담고 있었다. 복도 벽면에 일정한 간격으로 접이식 의자에 지원자들이 앉아있었다. 그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고, 검은색 글자들을 시커멓게 태워 종이와 분리시킬 듯한 기세로 대본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앵글 끄트머리에서 한 남성이 나타나 지원자들의 의자를 힘으로 빼앗기 시작했다. 누구는 넘어지고, 누구는 영문도 모른 채 일어섰다. 남성은 양손으로 옮길 수 있는 가능한 많은 수의 의자를 우격다짐으로 끌며 복도 코너 속으로 사라졌다.


“이 남성은 이후 지원자들에게서 빼앗은 의자를 감독과 캐스팅 팀에게 집어던졌다고 합니다. 다행히 연출진들이 맞지는 않아 법적공방까지는 가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화면이 전환되며 앵커는 다른 데스크에서 모습을 보였고, 옆에는 화가 단단히 난 남성이 팔짱을 끼고 있었다.

 

“직접적인 피해자와 잠시 인터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간단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예, 저는 박진환 서른세 살, 배우입니다. 저번 주에 ‘쪼개는 남자’ 뮤지컬 오디션을 봤습니다. “

“안녕하십니까, 박진환 씨. 혹시 이 남성과 만난 적이 있나요?”


    앵커의 아이디어인지, 작가의 아이디어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앵커는 뒤에 스크린이 있으면서 굳이 B4크기의 사진을 인쇄해 광인의 행위예술 그 순간을 레이싱걸의 남은 트랙 수처럼 양손으로 들어 올렸다. 박진환은 언성을 높이며 양손을 앞으로 들이밀고는 말했다.


“물론 만났고,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아주 혼쭐을 내주게요!”

“오, 혹시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


앵커는 이미 다 아는 내용을 형식상 물어보는 것에 악화될 박진환의 분노가 귀찮았지만, 기계적인 프로 정신으로 얼굴에 철판을 깔고 미소를 지었다.


“저는 한창 오디션 중이었습니다. 수백 번도 넘게 연습했던 연기를 하면서 뭔지 모를 기쁨을 느끼면서 말이죠. 감독과 교감까지 느껴지던 찰나, 저 미친놈이 오디션장에 난입했습니다. 그리고선 제 상대역을 도맡더군요. 저는 이것도 오디션의 일부인줄 알고 연기를 속행했고, 연출진들도 막지 않았습니다. 김칫국일 수도 있지만, 제 연기가 너무 좋아서 그런 걸지도요.”


박진환은 너스레를 떨다가 감당하기 힘들었는지 다시 화를 얼굴에 퍼뜨리며 말을 이었다.


“그러던 중, 그 미친놈이 내 대사까지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제서야 진심으로 당황했습니다. 연기 실력을 보면 분명 같은 직종 종사자 같은데, 대체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이해가 가지를 않아요. 결국 그 미친놈의 1인 2역을 두고 볼 수밖에 없었고, 연기가 점점 거칠어지더니, 감독님과 연출진들에게 폭언을 내뱉었습니다. 이 미친놈은 뒤이어 온갖 난동을 부리다 퇴장당했고, 그 오디션 자체가 무효 처리되어 어제 다시 오디션을 봐야 했습니다.”

“어제 치른 오디션은 어땠나요?”


앵커는 오늘 방송 처음으로 진심 어린 흥미를 보이며 물었고, 진환은 폭발하고 말았다.


“망했어요! 망했다고요! 그 미친놈을 만난 이후로 억울해서 더 열심히 연습했는데, 도저히 그날만큼의 연기력이 나오지를 않았어요! 결국 당일 감독님께 불합격 통보를 받아야 했다고요!”


눈물이 글썽거리는 진환을 뒤로하고 앵커는 카메라를 직시하며 클로징 멘트를 읊기 시작했다.


3


    한 광인의 등장으로 연기계는 술렁였다. 여러 제작사가 그를 고소하려 했지만, 결국 어느 쪽도 그를 기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관련 법률이 미비했는지, 제작사들이 치기 어린 자존심을 부려 관심을 거둔 건지는 확실치 않지만, 중요한 사실은 그가 건재하다는 것이다!


    그는 오늘도 어김없이 한 영화 오디션 장에서 난동을 부리고 있었다. 그러나 평소와는 달랐다. 많은 이들의 사업과 꿈에 똥을 뿌리면서도 시종일관 차분한 정신을 유지했던 그가, 어떤 뉴스 특파원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는 결심한 채 특파원 쪽으로 꽹과리를 두들기며 다가갔다. 특파원은 기회다 싶어 그쪽으로 촬영 스태프와 함께 걸음을 재촉했다.


“안녕하십니까, pta 뉴스, 김현정 기자입니다. 잠시 대화 가능할까요?”


기자는 그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그의 입에 마이크를 갖다 댔다. 꽹과리와 최대한 거리를 두면서 한쪽 귀를 막고 대답을 간절히 바랐다.


“예, 가능합니다.”


    광인은 격정적으로 괴롭히던 꽹과리를 바닥에 내려놓고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냥 내려놓은 것에 불과했지만 꽹과리는 꼴에 근성이 있는지 요란한 소리와 함께 회전하다가 바닥에 불시착했다. 기자는 그 소리가 굉장히 거슬렸다. 그래도 불쾌한 표정은 내비치지 않았지만 반색을 숨기는 데에는 실패했다. 그녀는 촬영 스태프에게 눈웃음을 지으며 신호를 보냈다.


“수차례 영화 및 연극 오디션 현장에서 난동을 부리고 계신데, 혹시 어떤 이유로 그러시는 건지 알 수 있을까요?”


광인은 대답하지 않고 기자를 응시했다.

 

“선생님의 신상이 공개됐는데, 5년 이상 배우 지망생이었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광인은 또 대답하지 않았다. 시선을 조금 내려 기자가 들고 있는 칠흑색 마이크를 노려봤다. 반사적으로 오른손도 조금 내려가 꽹과리와 가까워졌고, 꽹과리가 이에 응답하듯 현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신경질적인 이명을 내는 것 같았다.  


"그래서 혹자는 선생님의 거듭된 오디션 불합격이 최근 소란들의 동기라고 추측합니다. 이에 대해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십니까?"


    기자는 오늘 중 가장 큰 용기를 내어 질문했고, 되려 카메라맨이 겁을 먹고 양손에 힘을 줬다. 광인은 이번에도 시선을 내리깔고 꽹과리와 조금 더 가까워졌다. 기자는 슬슬 불안감을 느끼며 광인의 오른손과 교감하는 꽹과리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광인은 이해할 수 없어 무섭지만, 그 꽹과리가 원재료의 다른 용도를 받아들여도 그녀에겐 결국 호재였다. 어떤 제목이 됐든, 헤드라인에 실릴 것이니 말이다.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광인은 꽹과리와의 로맨스를 거두고 갑자기 일어서서 어떠한 감정도 담지 않은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며 말했다. 기자는 어떤 말인지 묻고 싶어 참기 힘들었지만, 거듭 거절된 질문들 때문에 저널리즘의 미덕을 상기하며 기다렸다.


“저는 내일 있을 봉신호 감독의 신작 영화 오디션에 정식으로 지원했습니다.”


광인은 기자의 놀란 표정을 거들떠도 보지 않으며 씨익 웃었다.


“자유연기는 저의 특기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광인은 할 말을 마친 뒤 빠르게 앵글 밖으로 빠져나갔다. 스태프는 당황하고 다시 광인을 카메라에 잡았지만, 어느새 꽹과리와 그걸 학대하는 나무 채가 광인의 양손으로 복귀했다. 광인은 기자를 기다리지 않고 꽹과리를 치며 인파를 헤쳐 나갔다.


4


    광인의 소식은 급속도로 퍼졌고, 봉신호 감독과 연출진들은 비상회의를 열었다. 김현정 기자는 두둑한 상여금을 챙길 수 있었다. 당연히 다수가 그 광인이 오디션장에 못 들어오게 해야 한다고 했지만, 봉감독의 직감은 달랐다. 봉감독은 이보다 더 좋은 마케팅이 없다고 생각했고, 어차피 자유연기인 만큼 합격 여부도 순전히 자신들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봉감독은 이 대어를 완벽히 조절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봉감독은 이에 쐐기를 박고자 했다. 그 광인, 이 지원에게 전화를 걸어 오디션 상황을 뉴스 특보로 생중계하고 싶다고 부탁했고, 이 지원은 승낙했다. 봉감독은 이 횡재에 야무진 기획까지 생각했다.  지원이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는 모르지만, 뭐가 됐든 신랄한 비판을 할 생각이다. 영화도 홍보하고, 자신의 이미지도 고취하려는 부푼 꿈을 꾸게 된 것이다.


붕감독의 꿈이 현실이 될지는 아직 모르지만, 봉감독이 꿈꾸던 시간은 금세 찾아왔다.


“안녕하십니까, 참가번호 25번, 이지원입니다.”


    이 지원이 멀쩡한 말들을 내뱉으며 봉감독과 연출진들을 상대로 뒷짐을 지었다. 봉감독은 부푼 기대와 설렘을 느꼈다. 봉감독은 그를 만나기 전에 치른 스물네 명의 연기를 상기하며 복습된 지루함에 짜증이 났다. 무명 지원자들의 더 이름 없는 연기력은 평소에도 봉감독에게 고된 볼거리였지만, 그날은 특히 그에게 더 괴로운 시간이었다. 봉감독은 비련한 스물네 명의 연기는 보지 않고, 그들에게 평가하는 자신의 모습을 검토했다. 그것도 결국 연기임이 분명하니 봉감독은 근무 태만과 별로 관련이 없을지도 모른다. 봉감독은 드디어 목도한 25번을 바라보며 씰룩씰룩 올라가는 입꼬리를 억제하고 근엄한 스탠스를 취했다.


“네, 이지원 씨. 어떤 주제이든 상관없습니다. 자유연기를 보여주세요. 당신의 연기력 만을 평가하겠습니다.”


어떤 뉴스의 어떤 앵커는 다른 공간에서 이 상황을 생중계하고 있었다.

 

    지원은 지고 있던 뒷짐을 풀고는 양손을 엉덩이 측면에 붙였다. 봉감독과 다른 스태프들은 긴장했다. 그리고 그들의 오랜 미덕인 상상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촬영 감독은 지원의 자세를 보고 노래를 부르는 것은 아닐까 예상했다. 촬영 감독은 이를 구체화하여 625 전쟁 발발 직전, 북한 군인의 투박한 군가 소리를 떠올렸다. 캐스팅 디렉터는 지원의 표정을 보고 아크로바틱한 자세를 취하며 시작할 것이라 확신했다. 그가 어떤 무술을 차용한 몸짓을 할지, 아니면 아예 짐승 같은 사족보행으로 자신들의 시선을 내리꽂게 할지, 즐거운 추측에 빠졌다. 캐스팅 디렉터는 스턴트 배우를 몇 명 더 섭외해야 하는 건 아닐까 하고 괜시리 휴대폰 전화번호 목록을 확인하고 싶은 충동에 빠졌다. 마지막으로 봉감독은 지원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파악하며 영감에 휩싸였다. 꽤 잘생겼지만 고생을 많이 한 것 같은 얼굴과 큰 키에 어울리지 않는 좁은 어깨를 보며, 봉감독은 한국에 당연히 존재하고 있지만 지금 자신의 손으로 이룩해 낸 착각을 느끼며 독창적인 캐릭터를 떠올렸다. 그 캐릭터의 서사와 성격, 말투와 감정선에 따른 표정변화까지 구멍 난 치즈에 올리브를 넣는 것처럼 봉감독의 스케치북은 차곡차곡 지저분해졌다. 봉감독은 갓 태어난 친자와 지원의 연기가 부합하면 진심으로 지원을 캐스팅할 생각마저 하고 있었다.


모두가 행복한 미소로 긴장감을 꾸기고 있을 때, 그들의 표정을 하나하나 직시하던 지원이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모두 연기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지원은 이 말만 남긴 채 뒤 돌아 오디션장을 나갔다. 지원은 비웃는 표정을 짓고 싶었고, 그렇게 했지만, 자신의 눈을 거울로 보면 슬퍼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 오묘한 표정은 누구의 눈동자도, 뉴스채널의 카메라도 담지 못했고, 봉감독은 지원이 오기 전 자유연기를 했던 다른 참가자들의 얼굴을 떠올리려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전혀 떠올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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