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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우 Oct 15. 2023

재수생

사색, 한 가지 색

 작품을 이해받지 못하는 걸까, 아니면 난해한 방식으로 해결했기에 인정받지 못하는걸까. 나름 노력했기에 결실을 얻어내고 자그마한 성공을 이뤄보고 싶었다. 하지만 약 2달간의 여정은 아직도 종착지를 찾아내지 못하고 이제는 스스로 원하던 방향을 조금 선회하며 오히려 고통스러운 창작이 시작된다. 즐겁기 위해서 시작했던 노력이 이제는 가면을 벗어내고서 점점 옥죄여와서 너무 고통스럽게 만드려고 한다. 얼른 승낙을 받아내고 원하는 작품 세계를 펼쳐내고 싶다.


 글을 적을 때에는 최대한 일기로써 가치를 보존한 채로, 주관을 나타내지 않으며 객관을 흉내내려고 열심히 노력한다. 이유는 그렇게 편협한 시선을 무의식 속에 품다보면 너무 매몰된 사실만 이야기하게 되면서 결국에는 작품으로써 가치를 잃어버릴 지 몰라서 그렇게 시도하고 있다. 발전은 문제 제기가 반드시 필연적이며, 그렇지 못한다면 도태된다는 가치 판단을 중시해서 그렇다. 결국 쉽게 말하고, 어설프게 세워진 기준에 판단하여서 감각적으로 설명하자면 단 두 눈으로 글을 포장하고 표현하기에는 작품이 멋이 없다.

 그렇지만 그들이 원하는 건 아마 이러한 기준은 어울리지 않나 싶다. 아니면 절대적인 양이 부족한 걸까, 양은 판단을 하는 데에 절대적인 기준으로 자리잡을 수 없지만 계산적으로 효율적이게 판단하기 위해선 아주 좋은 척도가 되어서 나타날 것이다. 그래서 이제 자신의 남아나지 않은 이야기를 쥐어짜내는 느낌이 강해진다. 물론 깊은 바다에서 헤엄지는 철학이라면 하루 종일이라도 문제 없겠다. 그렇다고 그렇지 않다면 아무 시도도 해보지 않다가는 결국 절대 심연으로 다가가볼 수 없다. 그저 어항 속에 갇혀서 세상의 전부라 믿고 암울한 행복을 영원토록 잠식시킨다. 그러면 '나'는 어찌해야할까?


 사실 이번 작품이 나에게 좋은 결실을 맺게 만드는 아름다운 수단이 될 것이라 믿으며 스스로 가지고 있는 한계를 짜내며 조금 불만족스러운 철학을 세상에 보여주려고 한다. 물론 모든 작품은 불완전하지만 불만족스러운 건 다르다. 결국 스스로 거울을 멀리하게 만들고, 그동안 가지고 싶었고, 앞으로도 평생 함께 하고 싶은 장난감을 장난감 상자 안에 썩혀두어 나중에는 먼지가 가득 끼고 곰팡이가 끼게 만들 안타까운 상황이 된다. 더 이상 후회하고 싶지 않다. 부정은 사람을 암흑으로 가득 끼게 만든다 하지만 아닐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이제 지겹고 질린다. 싫증이 가득해지며 짜증으로 잠자리를 뒤척인다. 작품을 만드는 손바닥을 증오하며 열 가지 손가락은 분노하여 자판을 두들긴다. 스스로 불지폈던 모닥불은 이제 의지와 별개로 주위에서 얻어 올 만한 장작이 부족해서 이만 불이 꺼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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