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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씨 Feb 21. 2023

요와 이불

엽서 같은 기억

(참 편한) 아가 시절엔 언제 어디서나 자면 잤다. 좀 더 큰 다음엔 펴진 잠자리에서 푹 자고 일어났다. 씩씩한 어린이가 된 후에는 슬슬 자기 이불과 요를 갰다. 딱 이 정도만 하면 적당하고 좋았겠지만 두 사람 분의 요와 이불을 치우는 언니의 엄한 눈총을 받을 정도로 크고 말았다. 결국 팔 힘이 없어 힘들다고 낑낑거리고 징징대면서도 요와 이불을 옷장에 치우게 되었다. 그게 언제 적 얘긴지, 한국을 떠나고 침대를 사용한 후로는 먼 옛날 얘기가 되었다. 

가끔 서울에 들어가 지낼 때도 (한국 느낌이 나서 그런가?) 침대보다 요가 좋긴 한데, 요즘 요는 가볍고 별로 두툼하지도 않아 요보단 담요 같고 낯설다. 감기 걸렸을 때는 덮으면 움직이기 살짝 버거울 정도로 묵직한 솜이불 생각이 날 때도 있다. 덮고 낮잠 한 번 푹 자면 어떤 감기든 싹 다 나았는데.   

두꺼운 하얀 천을 액자 삼은 겉면 중앙엔 화려하게 자수를 놓은 부드러운 천이 박혀있던 솜이불. 그리고 역시 구김 하나 없이 빳빳한 하얀 천을 입고 있던 솜요. 해가 바뀌면 할머니는 굵직한 이불 땀을 하나하나 재봉 가위로 끊어 묵은 천을 벗겨내셨다. 그리고 풀을 먹여 각이 지고 서늘한 깨끗한 천을 손가락만큼 긴 대바늘로 다시 이부자리에 입히셨다. 사람도 많은 우리 집에서 어쩜 저걸 정기적으로 하셨을까.


할머니가 시골로 가신 후 이부자리는 지퍼가 달린 겉옷을 입기 시작했다. 파스텔톤 줄무늬 옷을 입은 요와 이불은 눕고 덮는 느낌이 달랐다. 솜이불도 바꿔 없었다. 어릴 적부터 쓰던 베갯잇은 그대로 남아있어 다행이었다.  




서울  한복판 아파트 단지, 1층 우리 집과 지하실 사이 손바닥만 한 땅에서 호박과 까마중을 기르시고, 명절 때면 불린 콩을 갈아 빈대떡을 부치시며 만두를 빚으셨던 할머니. 우리는 말린 고추를 늘어놓고 씨를 빼고 꼭지를 뗐다. 이렇게 손질한 후 방앗간에 간 고추는 고춧가루가 되어 돌아왔고, 한아름이 덜 되는 작은 항아리에는 손수 빚은 고추장과 된장이 담겨있었다. 돌아보면 짧은 어린 시절 몇 년 동안 할머니에게 뜨개질과 바느질을 배웠고, 쓸고 닦는 청소법도 배웠다. 기억하는 삶의 첫 5-6년 동안 할머니는 내게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다. 


할머니 방 창문으로 드리워지던 황금빛 햇살의 빛줄기. 햇빛 아래 춤추던 공기 중 먼지. 그리운 할머니 방. 방 한편에 있는 뚜껑 달린 라탄 수납장의 대를 괜히 뜯던 것. 옷장 문에 새겨진 학과 소나무, 울렁불렁한 산과 다리. 할머니 반짇고리. 큼직한 천 자르는 가위. 단추가 빼곡하던 하얀색 콜드크림 통. 나직한 할머니 목소리. 주무시기 전 스탠드를 켜고 엎드려 책을 읽으시던 모습. 


올해로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도 10년이 지났다.

정신없이 들어가 장례를 치러 그런지 관에 담기신 마지막 모습을 보았다는 것과 식 내내 꺼억꺼억 울었던 것만 기억이 난다.  




암벽에 깊게 새긴 글씨처럼 뚜렷하고 선명한 기억만 품고 살았던 거 같은데 어느새 나뭇가지로 모래에 그은 선처럼 흐릿한 자욱만 남았다. 돌아보니 다 풍화되고 없다. 뚜렷하고 생생하던 풍경이 이젠 화면 속 글씨에 불과한 것처럼. 구멍 가득한 스위스 치즈가 된 기분이다. 주름으로 알차던 뇌가 어느 순간 구멍 슝슝 뚫린 젤리로 변해버렸나? 정말로 중요하고 소중한 건 끝까지 기억하고 싶은데. 사라졌다 느끼지만 실은 머릿속 깊은 구석 어드메 서랍장에 차곡히 접혀있는 거라면 좋겠다. 제발.


과거는 늘 그립고, 후회스럽고, 아쉽고, 사무쳤는데.

요즘은 아직 기억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디냐 싶다. 기억하고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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