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은 항상 거머리처럼 나를 쫓아다녔다. 명상으로, 여행으로, 약으로 그것을 떨쳐버리려 제법 노력하였으나 그것은 나에게 숙명처럼 주어진 존재인 척 나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이제는 그것을 떨어내는 것에 집착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냥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체념이라는 표현이 더 알맞을까. 불안이 언제나 나에게 악영향만을 주는 것은 아니다. 머릿속에 형체도 모를 불안의 더미들이 유영하는 것을 글로써 배설할 수 있게끔 해주었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은 잠시나마 그것으로부터 도피하여, 불안의 존재를 망각하게 해주었다. 혹시 나를 불안하게 하는 것이 현상적인 요인들이 아닐까 하여, 홀로 살 수 있는 집도 마련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을 만들어 주기도 하였다. 아는 이처럼 가난으로 허덕일까 두려워, 무지성하게 소비하는 습관을 멀리하게 했고 돈을 버는 일이면 닥치는 대로 일 하는 제법 진저리 나는 시기를 버티게하는 힘도 가져다 주었다. 불안의 힘은 이토록 막강했다. 내가 기대하는 방식은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나를 성장하게 해주었다. 지금의 나는 어느정도 그 불안 요소들로 하여금 조금 멀어지긴 하였다 자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안의 마음을 떨쳐버릴 수 없는 이유는 아직도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상상해본다. 미처 정의하지 못했던 내 안의 불안 요소들을 낱낱이 파헤쳐 그것들을 모두 제거해버릴 정도로 충족한 현실을 마주했을 때 나는 진정으로 안온할까. 나는 왜인지 그 때의 나도 불안에 허덕일 것 같다는 결론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다. 그 때의 나도 지금과 같이 형체없는 불안의 것을 스스로 만들어내어 북치고 장구치고 온갖 지랄을 다 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왜일까. 너무 오랫동안 이 것에 함몰된 채 살아왔기 때문일까. 아니면, 긴 시간 동안 이렇게 살아온 내가 스스로 삶에 대해 가스라이팅이라도 했던 것일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은 어떻게 해서든 불안으로 가득할 이 시간들을 어떤 행색으로라도 떼워내는 것이다. 나는 예감한다. 그것에 도달하지 못했으므로. 한 번 그곳에 가보고 싶다는 욕망을 품는다. 모든 것들을 배제하고 난 다음의 나의 마음은 과연 무사할지. 아니면 그대로일지. 내 예감이 착오이길 바라며 오늘도 휘청이듯 겨우 한 걸음을 내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