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다는 것은 1/4
2024/11/28
제가 붓으로 그림을 그리게 되기 전에는 항상 머릿속에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멋진 장면을 보면 머릿속에서 제 나름대로 그림으로 표현해 보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평생 그림은 머릿속에서 그리는 것으로 알았지 붓과 물감으로 그린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코로나 나기 두 해 전에 막 결혼해서 뉴욕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한 딸네 집을 방문했습니다. 사진에서 영화에서 수없이 보았던 거리 풍경을 실제로 보니 그리고 싶은 장면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런데 머릿속에 그리고 그냥 지워져 버리는 것이 너무 아쉬웠습니다. 귀국해서 사진으로 마음으로 담아 온 뉴욕의 풍경을 붓으로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제가 붓으로 그림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이제 5 년 여의 시간이 지나고 작품 수가 500점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냥 흘려보내기가 아쉬워서 시작했는데 다 보려면 며칠이 걸릴지도 모를 그림을 그렸네요. 지치거나 지겨워지기는커녕 더 즐겁고 의욕이 넘치는 일이 되었습니다.
그림을 그리려면 장면 속에 있는 모든 사람과 사물 하나하나를 관심 있게 바라보고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무리 한구석에 자리 잡은 사물이라 하더라도 나름대로 존재의 이유가 있고 사연이 있기 때문에 그 이유와 사연이 그림에 표현되어야만 그림이 완성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물 하나하나를 이해하려는 눈으로 바라보면 사물도 마음을 열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합니다. 왜 자신이 거기 그렇게 있는지. 재미있고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자기 이야기를 그림으로 전달해 달라고 저를 재촉합니다. 자다가도 일어나서 그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이해하려는 눈으로 바라보면 세상은 이야기의 보물창고입니다. 그림 그리는 사람은 이야기의 전달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귀 기울여 들을 수 있도록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만물은 독립적이지만 동시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림으로 전달하는 사물들의 이야기는 열 개의 시리즈에 놓여 있습니다. 모든 그림이 독립적이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저의 그림 시리즈는 끝나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모든 사물들이 마음을 열고 저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한 저는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습니다. 할 수밖에 없지만 자다가도 일어나 하고 싶은 그림 그리기입니다.
오늘 소개하는 책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전기입니다.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세상을 들먹일 수 있는 화기이기에 고매한 예술가의 일생을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돈과 명예를 좇아 여러 군주를 전전하는 게으른 천재 예술가의 일생이 그려집니다. 저런 예술가는 되어서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그의 작품 전체를 볼 수 있습니다. 21세기를 사는 제가 르네상스 작품에 높은 가치를 두지는 않았습니다만 작가의 모든 작품을 깊이 있는 해설과 함께 보니 감동이 느껴집니다. 역시 예술도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