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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시도 수상쩍은 옆동 남자에 대해

by 뮤뮤

우리 아파트에 꽤나 인상이 사나운 남자가 산다. 바로 옆 동인 101동에 사는 남자, 양옆으로 쫙 찢어진 눈매는 매서웠고, 살점이 없는 볼에 낮은 코, 툭 튀어나온 입은 하이에나를 닮은 듯 음흉해 보였다. 그를 처음 봤을 때 어디선가 많이 본 거 같은 인상에 한참을 생각하다가 중요지명피의자 공개수배전단을 확인해 보았다. 거기서 본 것만 같았고 그 정도로 101동은 살벌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인상만 사나운 게 아니었다. 행동거지도 의심쩍은 데가 많았다. 항상 얼굴이나 몸 어딘가에 상처가 나 있었다. 눈에 멍이 들어있거나, 입이 찢어져 피가 맺혀 있기도 했다. 대체 무슨 일을 하고 다니길래 저렇게 상처가 떠날 날이 없을까, 나는 그와 마주칠 때마다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한 번은 아파트 정문 입구에 그가 어떤 남자와 같이 서있는 걸 보았다. 101동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있었는데 누구와 싸운 건지, 넘어진 건지 얼굴 한쪽이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고,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옆에 서있던 남자는 통화 중이었는데, 그 옆을 지나가면서 잠시 통화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형이 많이 다쳤네. 얼굴 반이 나갔다니까.”

그를 형이라고 부르는 걸 보면 동생인가 싶었다. 그는 형과는 달리 평범하고 둥글둥글한 인상이었다. 형제가 참 안 닮았구나 싶으면서 나는 그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당신의 형, 이렇게 수시로 다쳐 있다고.




101동 남자는 딱히 하는 일이 없어 보였다.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먹이를 찾아다니는 하이에나처럼 동네 여기저기를 어슬렁거리는 모습이 목격되고는 했다. 회사에 다니지 않고 프리랜서로 일을 할지도 모르지만 그를 보면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한다는 게 상상이 되지 않았다. 멍한 표정으로 쭈그리고 앉아 길담배를 피우거나 아무 데나 기대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대낮부터 술을 마시는 건 상관할 바가 아니지만 길담배는 나의 짜증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주변에 사람이 있건 말건, 심지어 아이가 있어도 전혀 상관하지 않고 피워댔다. 옷차림도 이상했다. 메리야스 바람에 파자마인지 외출복인지 모를 야릇한 바지를 여름 내내 입고 다녔고, 가끔씩 외출이라도 하는 건지 메리야스 위에 뭔가를 덧입을 때도 있었는데 그건 망사로 된 조끼였다. 망사조끼를 입은 날, 그는 유난히도 진흙이 범벅이 된 등산화를 신고 아파트 입구를 지나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외출 후 집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였다. 앞에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남자가 서있었는데, 보자마자 101동 남자임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메리야스에 망사조끼를 입고 검은색 큰 배낭을 메고 있었다. 어디를 다녀온 건지 신발이 또 온통 진흙 투성이었다. 나는 싸늘한 시선으로 그의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저 가방 안에 대체 뭐가 들어 있을까. 불심검문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는 핸드폰에 정신이 팔려 있었는데 그 뒤에 서있는 덕에 보이는 화면은, 고스톱 게임이었다. 메리야스 바람으로 길담배를 피우며 동네를 떠도는 그와 고스톱이 어울린다 싶었다.


내릴 역이 가까이 와서 나는 출입구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문이 닫힌다는 안내방송이 나오는데 저 멀리서 할머니 한분이 뛰어 오고 있었다. 할머니가 뛰어오는 속도와 문이 닫힐 시간을 어림짐작해 보았다.

‘타기에 너무 늦은 거 같은데...'

역시 할머니가 문 앞에 도착했을 때 문은 닫히기 시작했다. 그러나 할머니는 포기하지 않았다. 닫히는 문사이로 무리하게 몸을 밀어 넣은 것이다.


“엇!"

지하철 안으로 몸을 던지다시피 뛰어들어온 할머니가 중심을 잃더니 앞으로 고꾸라졌다. 동시에 출입문이 닫혀버렸고, 할머니 발목이 그만 문에 끼고 말았다. 지하철 안에 있던 사람들이 동시에 놀라서 할머니를 쳐다보았다.


문이 다시 열릴 줄 알았는데 문이 열리지도 않고, 지하철도 움직이지 않았다. 어떤 안내 방송도 없었다. 뭔가가 망가진 것일까. 예전에 만원 지하철에서 가방이 문에 낀 적이 있는데 문이 다시 열리지 않아 그대로 다음 역까지 간 적이 있다. 그때 생각이 나면서 어쩌면 지하철이 이대로 출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할머니는 발을 분명 다치게 될 것이다. 짧은 시간에 여러 생각이 오갔다. 일단 기관실에 연락을 해야 할 거 같아 열차칸 넘버를 찾고 있는데 누군가 문에 달라붙는 게 보였다. 101동 하이에나였다.


그는 문손잡이를 양손으로 잡고 힘을 주었다. "끄아앗" 그의 양팔 전완근에 힘이 들어가는 게 보였다. 사람힘만으로 문이 열리까 싶은 순간,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문사이가 어느 정도 벌어지자 할머니는 드디어 발을 뺄 수 있었다.

“휴, 아이고 고마워요.”

할머니는 그에게 감사를 표했지만 놀라신 듯 금방 일어서지는 못하셨다. 101동은 쓰러진 할머니를 부축해 노약좌석에 앉혀 드렸다. 열린 문은 다시 닫히더니 잠시 멈췄던 것에 대한 별다른 안내방송 없이 이내 출발했고 몇 분 간의 소란은 없었던 일처럼 열차 안은 곧 잠잠해졌다.


여전히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이웃집 여자인 나였다. 남자가 할머니에게 괜찮냐고 묻는 듯했고, 할머니는 고개를 힘없이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다음 정거장, 할머니는 우리 동네 분인지 내리려고 일어나셨고 101동은 할머니를 부축해 주었다.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나는 먼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왔다.


화장실에 들렀다가 역사를 빠져나가려고 보니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저녁에 많은 비가 예상된다는 예보가 있던 터였다. 우산을 쓰려는 순간 101동 남자가 한 구석에 서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 멍하니 내리는 비를 보고 있는 걸 보니 우산이 없는 모양이었다. 나는 가방 안에 3단 우산이 있는 줄 모르고 그날 우산을 또 챙겨 간 거라 여분의 우산이 있었다. 잠시 망설이다가 그에게 다가갔다.

“우산 없으시면 제 거 쓰실래요?”

그가 놀란 듯 날 향해 돌아보았다.

"DS 아파트 사시죠? 저 102동에 살거든요. 우산은 안 돌려주셔도 돼요. "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내가 건네는 우산을 받아 들었다. 가볍게 목례를 하더니, 우산을 피고 장대비 속으로 걸어 나갔다. 같은 방향 이기게 나도 그의 뒤를 따라 길을 걸었다. 허우적허우적 빗 속을 걷는 그의 뒷모습이 어딘가 쓸쓸해 보였다.


나는 그의 뒤에서 조그마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그간 오해해서 죄송했습니다. “

지명수배 전단을 확인할 것까지는 없었는데. 하이에나라고 한 것도 참 실례였다. 나의 작은 사과는 빗 속에 금방 묻혔다.

”그런데 왜 그렇게 다치시는 거예요? “

남자는 굽은 등으로 묵묵히 앞만 보고 걸었다.

그 뒤를, 의심 많은 여자는 여전히 수많은 질문을 던지며 따랐다. 모든 질문이 빗소리와 사라지는데도.




-사진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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