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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뮤 May 02. 2024

단골이 되는 기쁨

그 매력 아실런가요

우리 동네 ㅊ정육점은 언제나 손님들로 북적인다. 나는 이곳의 영업비결을 첫 방문부터 알아차렸다. 고기도 좋거니와 가게를 운영하는 젊은 사장 두 명이 밝고 싹싹해서이다. 그들은 고기를 고르는 손님을 방치하지 않는다. 옆으로 바짝 다가서서는 애인 마냥 자상하게 고기를 같이 보아준다.


여러 손님을 응대하고 고기를 준비하는 바쁜 와중에서도 가게 문턱을 오가는 손님을 놓치지 않는다. 어서 오세요! 조심히 가세요! 씩씩함과 흥겨움이 가게 안에 가득하다.


얼마 전 내가 받은 친절은 이렇다. 오랜만에 불고기를 해볼 참으로 ㅊ정육점에 갔다. 고기를 주문하고 손질되기를 기다리는 나에게 한 청년이 점심식사를 하셨냐고 묻는다.

"벌써요? 이제 11시인데."

가게의 벽시계를 보며 내가 의아한 듯 말하자 청년은 고개를 끄덕인다.

"11시면 점심 먹을 시간 아닌가요? 우리는 김밥 먹으러 가려고요."

그러면서 건물 뒤쪽에 있는 모 김밥집이 꽤 괜찮다고 일러준다. 이 동네로 이사 온 지 두 달 밖에 안 된지라 이런 정보는 요즘 말로 꿀이다. 얼른 머릿속에 이름과 위치를 입력했다.


"묵은지 김밥이 제일 맛있으니 꼭 드셔보세요."

귀담아듣는 나에게 그가 꿀 한 스푼을 더 얹어준다. 나는 묵은지를 좋아하지 않아서 묵은지찜은 아예 먹지를 않는다. 그런데 묵은지가 조금만 들어간 음식의 식감은 꽤 좋아하니 내가 생각해도 희한한 취향이다. 특히 묵은지가 얹힌 초밥이 별미라고 말했더니 자기도 그렇다며 주제가 회로 넘어갔다. 회는 나의 최애 음식이라 다시 얘기가 길어진다. 마침 손님도 없다.


잠시 대화가 끊기던 찰나 청년은 갑자기 가게 안에 걸려있는 발골 전 돼지를 가리킨다.

"이거 하나 하실래요? 500만 원 밖에 안 해요."

총각의 농에 나는 그거밖에 안 하냐며 웃었다. 돼지 한 마리에 500만 원이구나. 두 마리가 걸려있으니 천만 원. 생각보다 높은 가격에 새삼 고기를 훑어보려니 총각이 고기의 가슴께를 가리킨다.


”이 부분이 안창살이고 별미인데 정말 조금만 나와요. 고기 들어오는 날, 아시는 분만 사가죠."  

그러면서 다른 부위도 여기저기 이름을 알려준다. 아는 부위도 있지만 잘 모르던 부위도 있었다. 실제 고기를 앞에 두고 전문가에게 설명을 듣자니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 이 정도면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하나를 공짜로 얻은 셈이다.






단골가게를 만드는 걸 좋아한다. 동네는 물론이고 직장인 시절, 회사 근처에도 단골가게를 여러 군데 만들곤 했다. 단골식당, 단골카페, 단골미용실, 단골빵집, 단골옷가게 등등. 괜찮은 곳을 찾아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단골이 된 것이지만 나중에는 ‘단골이 되는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짧은 시간임에도 때로는 하루에서 가장 반짝이는 순간이 될 때가 있어서이다.


단순히 물건이 좋다고 단골가게로 정하지는 않는다. 물건도 좋아야 하지만 주인장이 인간적으로 호감이 가야 꾸준히 찾게 된다. 사장님들과의 관계에서 제일 좋은 건 약속을 잡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영업시간 안에서는 순전히 내가 원할 때 자유롭게 쳐들어갈 수 있다. 그들은 언제나 나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리고 나는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




사장님과 사장님을 둘러싼 이야기를 듣는 게 좋다. 지인과의 대화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신기하게도 내 주변 즉 가족, 친인척, 친구들 중 장사를 하는 이가 없다. 딱 한 명 있는데 캐나다에 이민 가신 작은 고모가 횟집을 운영하신다. 이 나이 되도록 아직 한 번도 가 보지를 못했다. 나에게 캐나다는 너무 먼 나라이다. 나머지 지인들 대부분은 큰 조직의 일부로 월급쟁이로 살아간다.


그래서 장사의 세계는 나에게 생경한 분야이다. 사장님이랑 조금 놀다 보면  내가 몰랐던 문 하나가 끼이익 소리를 내며 열리는 듯하다. 무언가 하나를 알게 되면 내가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


생각해 보면 가게에서의 짧은 시간이 전부인 만큼 추억거리가 많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새 지역으로 가면 단골가게 사장님들 생각이 나서 마음이 먹먹해지고는 한다. 이곳으로 와서도 생소한 가게에 들어갈 때 먼저 동네의 사장님들이 어김없이 떠오르고는 했다. 약국의 새댁, 세탁소 총각, 편의점 아저씨, 과일가게 할머니... 그저 안부를 묻고 심각하지 않은 질문을 하고 답을 하고. 그때 그들이 짓던 웃는 얼굴이 생생하다. 마치 새 연인에게서 자꾸 옛 애인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이제 여기 온 지도 두 달이 넘어가니 슬슬 움직여볼까 싶다. 이름하여, 단골가게 만들기 프로젝트. 첫 번째 단골가게로는 ㅊ정육점이 좋을 것 같다. 고기도 좋고 사장님들의 에너지도 좋은데 무려 그 유명한 MZ세대가 아닌가. 두 번째는 어디로 할까. 길 건너 빵집의 쫄깃한 깜빠뉴의 비결이 궁금하던 중인데 다음 방문 때 사장님께 말을 걸어봐야겠다.


내 삶에서는 결코 몰랐을, 그들로부터 나올 이야기들을 기대해 본다.



*사진출처 _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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