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사!
8월은 인기가 없는 달이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달'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8월은 10위를 차지했다고 하니 분명한 하위권이다(12위는 구정이 있는 2월이 차지).
그도 그럴 것이 8월은 너무나도 지치는 달이다. 해마다 길어지는 장마를 거쳐(올해는 한 달에 가까웠다), 작렬하는 태양을 피해 숨어 다니는 것도(가수 비도 아닌데) 8월쯤 되면 물리기 마련이다. 청량한 공기와 시원한 바람의 계절인 가을이 하루라도 빨리 오기를 바라게 된다. 누군가는 8월을 11월만큼이나 지겨운 달이라고 했다.
이렇게 모두들 어서 가버렸으면 하는 8월에 나는 태어났다. 어떤 유명 인플루언서는 매년 생일마다 호텔 같은 호화로운 장소를 빌린다. 바비인형이 입을 것 같은 파티 드레스를 입고, 친구들을 초대해 극한의 화려한 생일을 보내곤 하는데 나는 그녀의 생일 피드를 들여다볼 때마다 놀라곤 한다.
나는 내가 주인공이 되는 자리에 알레르기 반응이 있어서 친구들과 생일파티를 하는 일은 없다. 많은 이들이 나를 쳐다보는 순간은 단 몇 분이라도 너무 송구스럽다. 사람은 비슷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세세하게 들어가면 이렇게나 다를 수 있다. 나에게 떠들썩한 생일잔치는 돌잔치로 충분하다.
카카오톡의 생일 알람기능은 당연히 꺼놓는다. 생일이 다가올 때면 꺼짐 상태가 잘 유지되고 있는지 점검하는 게 내 생일이 도래하기 전 챙기는 일이다.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 나 하나쯤의 생일 정보는 지인들이 모르고 지나치게 하는 것도 내 식의 배려로 생각해 주면 좋을 듯하다. 어서 지나갔으면 하는 모두의 8월처럼, 이달에 생일인 사람에게조차 이런 홀대접을 받으니 어쩌면 8월이 섭섭하다고 울상을 지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생일 챙김을 받는 게 겸연쩍어 그렇지 8월 자체는 매력 있는 달이라고 생각한다. 완연한 여름 사이로 가을의 기운이 순간적으로 스칠 때가 있다. 새벽의 서늘한 공기, 잦아드는 매미의 울음소리, 녹색이 힘을 잃는 숲을 보며 가을의 옅은 기척을 느낀다. 이렇게 두 계절이 혼재하는 것만으로 8월은 매력적이다.
주도면밀하게 생일을 감추어도 몇몇 오래된 친구들은 잊지 않고 축하인사를 건네온다. 그중에 한 명은 벌써 알고 지낸 지 15년이 된, 지금은 해외에 있는 나의 구남친 노모씨이다. 기념일이라는 것에 피곤을 느끼는 나와는 달리 그는 모든 기념일을 챙기는 스타일. 내 생일은 월말인데 8월이 되자마자 생일 축하한다며 메시지를 보내왔다.
아.. 이를 어쩌지. 고민해서 준비한 것 같은데… 선글라스를 이미 사고 말았다.
그렇지 않아도 갖고 있던 선글라스들이 죄다 얼굴에 안 맞고, 디자인도 구닥다리가 되어서 새 선글라스가 필요하던 참이었다. 여기 남양주 특히 내가 사는 산밑은 그야말로 햇빛이 내리꽂는 화살 같다. 햇살에 꽂혀 죽지 않으려면 암막양산과 선글라스를 한 몸처럼 구비하고 다녀야 하기에 여름이 시작되지마자 마련했다(물건 사는 거에 빠른 편).
새로 들인 선글라스가 가격 대비, 기대 이상으로 가볍고 얼굴에도 잘 맞아서 더 이상의 선글라스는 있어도 쓰지 않을 것 같다. 구남친이자 현남편인 노 씨에게 솔직히 고백하니 이내 서운한 기색이다. 슬며시 반품을 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메세지에 있는대로 “선글라스를 선물하기로 했으니까“, 나는 줄테니 너는 받아라이다. 다음날 영상통화를 하는데 남편 눈이 부어있었다. 왜 그렇냐고 물었더니 내가 선물을 안 반겨 밤새 우느라 그렇다고 한다. 술자리 때문이라는 걸 알기에 가볍게 무응답으로 대응했다.
생일이 나와서 말인데, 기억에 유독 남는 생일이 있다. 2021년 8월 암 진단을 받고 치료를 위해 친정으로 돌아온 날, 그날이 딱 나의 생일이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병든 몸으로 돌아왔다는 회환에 젖어 베갯잇을 눈물로 적시며 잠들었다.
두 번 째는 그다음 해 생일이다. 뜻밖의 암전이 판정으로 3기에서 4기가 되았다. 끝인 줄 알았는데 또다시 시작이라니, 통곡하면서 요양원에서 홀로 보냈다.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던, 삼박자가 모두 맞아떨어진 날이었다. 그날밤 두려움 끝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울면서 밤새 기도했으니 그야말로 잊지 못할 생일밤이다.
그다음 해에 드디어 치료가 끝나서 가족과 함께 생일을 지낼 수 있었다. 남편은 수고 많았다는 편지와 함께 용돈을 모아 마련한 명품백을 생일선물로 안겨 주었다. 아마 그 가방은 할머니가 되어서도 들고 다니게 될 것 같다. 몇 해만에 아이들과 함께 보낸 생일날은 참으로 행복했다(가방 몫도 인정).
이렇게 본인의 생일 챙김을 꺼리는 나이지만 한 번은 떠들썩하게 보내고 싶은 날이 있다. 5년 완치판정을 받게 되는 2026년 8월의 생일이다. 그날이 무사히 도래한다면 처음으로 생일상을 차려서 엄마아빠, 그리고 식구들을 불러서 제대로 대접하고 싶다. 미래의 일인데도 이 생각을 하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이 척박한 생일 기억 속에 보석처럼 아름다운 생일날이 있다. 고3 때 이수연이라는 친구가 마련해 준 생일상이다. 수연이와 나는 1학년 때 학급번호가 나란히 25, 26번이라 옆자리 짝으로 지낸 사이였다. 그래봤자 한 달이었다. 2학년으로 올라가서는 문과 이과로 나뉘어 얼굴 볼 일이 더욱 없었고 등굣길에 우연히 만나면 안부를 묻는 정도의 사이였다.
그런데도 우리는 희한할 정도로 서로를 좋아했다. 우연히라도 만나면 진심으로 반갑고 서로 응원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있었다. 시간을 많이 함께 한 것도 아닌데 그런 마음이 계속 유지된다는 게 스스로도 신기했다. 어쩌면 단짝이 아니어서 그런 마음이 계속 갈 수 있었을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수연이가 노트를 좀 빌려달라며 조회 전에 음악실에서 만나자고 했다. 전교 1등 하는 아이가 왜 내 노트가 필요할까 의문스러운 마음으로 음악실에 들어갔는데 수연이는 보이지 않았다. 아직 오지 않았나 싶어 의자에 앉는 순간, 커튼 뒤에서 수연이가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며 나오는 게 아닌가. 그녀의 손에는 초코파이로 만든 3단 케이크가 들려있었다. 내 나이 수대로 꽂힌 초 열아홉 개, 일렁이는 촛불 뒤로 열아홉의 수연이가 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내 생일을 어떻게 알았을까. 놀라움과 고마움으로 마음이 벅찼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흩날리는 커튼 사이로 초코파이 케이크를 들고 나오던 수연이의 모습을 아직도 생생히 떠올릴 수 있다. 그 순간을 생각할 때면 하나도 외롭지 않다. 나의 평범하고 지루했던 여고 시절에 몇 안 되는 반짝이던 장면.
생일상에 대한 총량이라는 것이 있다면 난 열아홉 때 받은 초코파이 케이크와 작년에 가족들과 보낸 생일로 이미 충분히 채워진 것 같다.
어느덧 입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