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면서 자산가가 된 분은 제보 바랍니다
유난히 난폭했던 여름이었다. 여름에 태어난 나는 모든 생명력이 절정으로 차오르는 이 계절을 좋아했다. 하지만 올해를 기점으로 이 계절을 좋아한다는 말을 섣불리 할 수 없을 것만 같다. 여름방학으로 돌밥(돌아서면 밥 하기) 시스템이 한창 가동 중이던 어느 날이었다. 거실 에어컨 바람이 도달하지 못하는 주방에서 땀을 훔치며 음식을 하다가 문득 집안을 둘러봤다.
첫째가 읽다만 두껍거나 얇은 책들, 둘째가 놀다가 그대로 둔 크고 작은 장난감들로 집안이 어지러웠다. 그중 가장 어수선한 곳은 내 구역인 식탁 위였다. 노트북과 블루투스 키보드, 여러 권의 노트와 프린트물, 읽고 있던 책과 다 읽었지만 다시 한번 읽을 책들로 식탁 위가 접시 하나 놓을 자리가 없이 빽빽했다. 이것은 내 책상이 없기 때문에 벌어진 장면이다.
문득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일렁이며 야무진 결심 하나가 올라왔다. 부를 이루자. 내 작업실 하나 둘 만큼, 이모님을 고용해 주방에서 해방될 만큼, 그 정도의 부를 이루어보자. 쉽사리 결심이라는 걸 하지 않는 대신, 한 번 결심하면 참으로 성실하고 꾸준하게 실천하는 나는 그날로 경제공부를 시작했다.
사실 돈공부는 예전에 시작한 적이 있는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나가는 게 당최 머릿속에 남는 게 없었다. 세상에 이렇게 지루한 분야가 있다니. 나는 이쪽 사람이 아닌가 보다고 중얼거리며 씁쓸한 마음으로 몇 번이고 책을 펼쳤다 덮고는 했다. 그리고 정신없이 애들을 키우다 어느 날 갑자기 병이 왔고, 수술과 치료를 반복하느라 3년의 세월이 또 바람같이 흘러갔다. 그렇게 나는 자산증식, 재테크와는 거리가 한참 먼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거의 10년 만에 들여다본 재테크의 세상은 깜짝 놀랄 만큼 재밌었다. 모든 내용이 머릿속에 쏙쏙 들어왔고, 어려운 경제 용어가 잔뜩 들어간 콘텐츠도 벽이 느껴지지 않았다.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 난 ‘돈 불리기’의 정보를 빨아들였다. 2022년 12월, 내 인생에 글쓰기의 문이 열렸듯, 2024년 8월에 갑자기 경제공부의 문이 열렸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이 세상에 바쁘지 않은 사람 없겠지만, 나름 분주한 삶을 꾸리고 있었다. 자고 먹고, 애들 케어하고 남는 시간에 내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운동, 등산 그리고 글공부를 위한 글쓰기와 책 읽기, 필사, 성경공부 등등. 루틴으로 이미 꽉 짜인 하루에 경제공부를 억지로 끼워 넣었다. 학기 중이었으면 이렇게 빡빡하지는 않았을 텐데 방학인 게 문제였다. 아이들과 부대끼고, 이 놈의 돌밥(플러스 간식)을 하느라 차분히 앉아서 무언가를 하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아이들의 공부 스케줄도 점검할 때가 왔다는 엄마로서의 본능적 깨달음에 교육과 관련된 영상 보기와 책 읽기도 수년만에 다시 시작한 참이었다.
그 와중에 브런치 글은 정기적으로 발행해야 하고, 이웃작가님들의 글도 읽어야 하고, 8월 말이 마감인 공모전 글도 써야 했다.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힌 채 밥도 서서 먹으며 모든 계획을 소화해 내려고 했다. 월급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가 투두 리스트를 체크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눈 뜨는 순간부터 눈 감는 순간까지 1분 1초를 허투루 보내지 않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이렇게 얼마간 지내다가 깨달은 것은, 글쓰기와 자산증식은 병행하기 매우 어려운 상극의 분야라는 것이다.
마치 남극의 펭귄과 아프리카의 악어처럼 완전히 다른 에너지의 세상이었다. 왜 글 쓰는 사람 중에 부를 이룬 사람이 없는지 알 것 같았다. J. K 롤링처럼 전 세계를 뒤흔들었던 '해리포터'를 카페 테이블 위에서 써내는 일은 로또 맞을 확률보다 더 적은 확률의 이야기이고, 대부분의 작가들은 글쓰기만으로 자산가가 되기는 매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것은 점점 짙어지는 출판계의 불황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두 세계는 각각 너무나 강한 몰입이 필요해서 하나의 뇌로 양립을 유지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다. (물론 아주 운이 좋아서 둘 중에 하나 잭팟이 터지거나, 아니면 두 분야를 고만고만하게, 설렁설렁 운영해 나갈 수도 있겠지만)
돈에 대해 몰입하다가 갑자기 글 쓰는 감수성으로 뇌의 회로를 변경시켜 글에 몰입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10년 동안 출판계에 있었지만 대작가가 소설을 쓰면서 재테크도 잘한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자산가가 부를 이룬 과정이나 인생철학을 써서 책을 낼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아예 다른 종류의 이야기이다. 내가 말하는 어려움은 글쓰기와 부, 두 분야를 동시에 비등한 에너지와 몰입을 가지고 병행하는 것을 말한다.
한 북토크에서 임경선 작가는 소설을 쓸 때는 주식을 들여다보지 않는다고 했다. 그말이 십분 이해 되는게 미국 연방의 금리조절에 대한 기사를 정독한 후에 워드창을 띄우고 쓰던 공모전 작품의 단어를 고를 때는 내가 지금 뭐 하는 건가 멍해지곤 했다.
마침, 올 하반기는 여러 면에서 큰 기회일 수 있는 시기라(고 여러 전문가들이 말해서), 경제공부를 뒤로 미룰 수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하루하루의 시간이 금쪽같이 귀하게 느껴졌다. 차라리 글쓰기를 뒤로 미루는 게 현명한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쯤 띠링 핸드폰 알람이 울렸다.
브런치 응원금이 들어왔다고 찍힌 금액 6,110원. 누군가 네가 지금 이럴 때냐며 머리를 쥐어박은 것 같아 머리를 긁적였다. 정말이지 내가 지금 이럴 때가 아닌데, 조금 있으면 쉰인데, 지금은 건강하지만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내가 없더라도 아이들이 잘 지내려면 돈이 큰 힘이 될 텐데, 아빠가 버틸 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큰 효도 한번 못했는데... 내가 지금 식탁에 앉아서 키보드나 두드릴 때인가! 요즘 말로 '현타'가 왔다.
온몸에 힘이 빠지는 것 같아 소파에 길게 누웠다. 이렇게 누워 있는 것도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뮤뮤가 여러 명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라디오에서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주디 갈랜드의 'somewhere over the rainbow'였다.
Somewhere over the rainbow blue birds fly,
무지개 너머 어딘가에 파랑새들이 날고 있어요.
And the dream that you dare to Oh!
그렇게 꿈꾸던 멋진 곳이죠
Why, oh why can´t I?
왜 나는 날지 못할까요?
멜로디는 달콤한데 눈물이 흘러내렸다. 왜 나는 날지 못할까요. 왜 이렇게 늦게 꿈을 꾸기 시작했을까요. 왜 이렇게 늦기 시작했을까요. 그날은 올 수 있을까요.
문득 '나는 나의 스무 살을 존중한다'를 쓴 이하영 작가의 말이 생각났다. 이하영 작가는 미래를 '예측'하는 게 아니고 '상상'을 하며 오늘을 즐겁게 보낸다고 했다. 즉 내가 원하는 미래는 어차피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에 나는 그저 오늘을 충실하게 그리고 이루어질 미래를 상상하며 즐겁게 보내는 것이다. 지금을 즐기지 못하고, 오직 '열심히'만 있을 때 그것은 집착이 되고 그 집착이 오히려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분노를 만든다고 했다.
오늘을 잘 보낼 때만이 그 미래에 다가갈 힘을 만들어질 수 있다. 조급함은 미래를 끌어당길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잘못하면 넘어지게 만드는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나름의 속도로 걸어오던 나였지만 8월의 뜨거운 열기가 옮아왔는지 갑자기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리기 시작했다. 빨리 글쓰기 분야에서 성과를 이루고, 빨리 부를 이루고 싶고, 빨리 아이들의 일상을 궤도에 올리고 싶었다. 너무 늦게 시작했다는 조급함이 나를 더욱 채찍질했다.
문득,
어서 끝나기를 바라고 있는 이 여름처럼 지금 현재를 빨리 가야 할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나를 발견했다. 언제 올지 모르는 미래를 바라보느라 오늘 하루의 감동과 감사를 잊어버린 것이다.
노트북을 닫았다. 그리고 운동화를 신고 오랜만에 집 밖을 나서보았다. 화마가 휩쓸고 간 후의 정적처럼 한바탕의 폭염이 휩쓸고 간 공원에는 고요와 평안이 가라앉아 있었다. 사방에서 가을의 기운이 다가왔다. 조금 걷다가 달리기를 시작했다. 바로 속도를 높이지는 않는다. 처음부터 빨리 달리기 시작하면 금방 멈추게 되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나에 맞는 속도로, 되도록이면 오래오래 달려보겠다고 결심해 본다.
커버 사진출처 _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