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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뮤 Sep 04. 2024

큰 행복을 잡기 위한 마음가짐

수년만에 감기에 걸렸다. 이 더위에 감기라니. 아무래도 지난여름이 너무 고되어서 몸이 축났던 것일까. 아니면  자기 전 루틴으로 반복한 샤워 후 에어컨 쐬기 때문이었을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여하튼 나는 감기 걸린 스스로에게 조금 실망하였다. 나에게는 작은 부심이 있었으니 바로 몇 년 동안 감기 한번 안 걸린 체력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 가족 중에서 내가 제일 튼튼하다니까.” 동생들이 번갈아 가며 몸살로 고생하자 자랑스럽게 말한 게 불과 보름 전이다. 사람이 진짜 조심해야 할 게  건강 과신인데 암이라는 중병에 걸려놓고는 감기 안 걸린다고 자랑스러워했으니, 소가 웃을 일이다.


처음 시작은 일주일쯤 전 운동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뭔가 기분이 계속 가라앉았고, 몸도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목이 따끔따끔하다 싶더니 이내 기침이 나오고 미열, 두통이 시작되었다. 그때만 해도 방학 후유증이라고, 감기는 아니라고 믿었다. 다음날, 가래, 콧물, 근육통이 시작되고서야 감기임을 받아들이고 병원에 가서 약을 받아왔다. 요즘 코로다가 재유행이라는데 다행히 그건 아니었다. 혹독하게 아픈 건 아니었는데, 괜찮다 싶어서 좀 움직이고 나면 다음날 쫙 가라앉는 날을 반복하고 있다.


기운이 없어서 마냥 몇 시간이고 누워 있다 보니 브런치도 잘 들여다보지 못했다. 솔직히 이번 주는 좀 쉬어가고 싶었다. 어쩔까 망설이는 사이 발행일 전날이 되었고, 이웃작가님들이 발행일을 지켜 새 글을 낸 것을 보면서 무거운 몸을 일으켜 의자 위에 앉았다. 진부한 얘기지만 이렇게 건강에 발목이 잡힐 때에서야 아프지 않은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된다.


초췌한 얼굴로 요즘의 작은 즐거움들을 상기해 본다.


- 동생과 광화문에 다녀왔다. 광화문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 광화문에서 한 달 살기는 수년 째 내 위시 리스트 상위권 안에 있는 항목이다. 오랜만에 간 광화문은 여전히 좋았다. 난 왜 이렇게 광화문이 좋을까. 혹시 전생에 공주였을까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도 있는데 그건 아닌 거 같다. 막상 경복궁에 가면 별 감흥이 없다. 종로 광화문 일대 장돌뱅이였을지도.


- 서울에 간 김에 떨어진 약을 타기 위해 늘 가던 병원을 찾았다. 여기 의사 선생님은 초등학교 내 은사님과 닮았다. 의사 선생님과 안부를 주고받고 선생님 옛날이야기도 잠깐 듣고 그랬는데 짧은 시간이었지만 뭔지 모르게 참 좋았다. 나보고 재미있게 살다가 또 만나자고 하셨다.


-  한 월간지에 투고했는데 10월호에 싣겠다고 편집부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글이 인정받은 거 같아 행복했고 짧게 주고받은 메일이었지만 편집 차장이라는 분의 느낌이 좋았다. 만나서 차 한잔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몇 문장만으로도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 장마와 폭염으로 한동안 걷기 운동을 하지 못했는데 드디어 걸을만한 계절이 되었다. 장면이 휙휙 바뀌면서 앞으로 성큼성큼 나아갈 때, 그래 이 맛이었지, 정말 행복하다 중얼거렸다. 동네를 쏘다니다가 못 보던 작은 숲길도 발견했다.


- 마사지 건을 선물 받았다. 하나 있었으면 했는데 굳이 살 건 아니다며 말았던 거라 더욱 반가운 선물이었다. 겨드랑이, 서혜부 림프절을 마사지해 주면 여러 가지로 좋다고 한다. 뜻밤의 쓰임은 발마사지였다. 마사지 건으로 발바닥을 두드려 준 날 오랜만에 숙면하였다.


화분갈이를 해 준 식물들이 더욱 초록초록하게 잘 자라는 것, 라디오에서 좋아하는 노래가 나왔던 것 등 결국 행복이라고 느끼는 순간은 아주 작은 것들로부터 기인한다. 순수 100프로의 행복은 이렇게 연약하고 초라할 정도로 작아야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높고 거대한 것은 그것을 얻는 순간, 도달한 순간,  그 즉시 걱정과 또 다른 욕망이 동시에 올라오기 때문이다. 무너지고 넘어지지 않기 위해 행복에 집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번 감기가 오기 전 나는 나름의 목표를 가지고 달리느라 작은 행복 찾기에 소홀했는데 아주 빠른 속도로 불만과 불평이 내 마음에 스며든 것을 느끼고 놀란 적이 있다. 지루하게 꾸역꾸역 이어지는 일상 속에 작은 행복을 잘 찾는 사람이, 큰 행복도 잘 누릴 수 있을 것이다. 평소에 돈관리를 해본 사람이 큰돈이 생겨도 현명하게 배분할 수 있는 것처럼, 언젠가는 도래할 큰 행복을 잘 맞이하기 위해 매일매일을 연습하는 기분으로 지내보는 것도 나름 재미있다. 아마 내일의 나는 기침이 줄어서 행복할 것이다. 머리가 덜 아파 산책을 좀 더 즐길 수 있어 행복할 것이다. 무사한 그날그날을 거듭하고 반복하는 것은 그 자체가 축복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위를 보느라 잊고 있던 것을 감기가 알려주고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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