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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뮤 Jul 24. 2024

남편 회사에서 보내온 복날 선물

수확의 계절


남편 회사에서 복날 선물을 보내왔다. 올해는 갈비탕과 육개장 간편식을 한아름 보내줬다. 남편 회사는 매해 결혼기념일, 명절 그리고 복날에 맞춰 택배 선물을 보내온다. 그리고 매번 응원 또는 축하 같은 메시지가 담긴 엽서 한 통이 동봉되어 있다.


“푹푹 찌는 복더위가 우리를 힘들게 하지만 여름 햇볕은 벼의 알곡을 실하게 하고 키도 훌쩍 자라게 해 가을에 큰 수확을 안겨줍니다. 농가의 드넓은 황금들녁을 상상하면서 기분 좋게 무더위를 날려 보내면 좋겠습니다.“


그렇네. 지금도 논밭에서는 벼의 알곡이 실하게 익어가고 있겠구나.


무더위와 습함의 콜라보가 한 달째 이어지는 나날이다. 선선한 가을날이 진짜 올까 아직 실감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느날 문득 바람이 산뜻해졌다 싶으면 곧 하늘이 높아지는 날이 분명 올 것이다. 덕분에 아름다울 가을날을 상상해 본다.


감사합니다. 저도 파이팅입니다.

엽서를 냉장고에 붙여둔다. 대량으로 인쇄되는 모두 같은 내용이지만, 그 문구를 쓰는 직원은 오랜 시간 앉아서  공을 들였을 것이다..


 회사에서 이렇게 보내는 단체 선물은 감사히 받기만 하면 되지만 보답하고 싶은 선물도 있다. 이를테면, 아래와 같은 선물.


남편의 회사 동료가 텃밭에서 수확한 농산물 한 박스를 직접 가지고 오셨다. 나도 두어 번 본 적이 있는 그는 우리 동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취미로 작은 농사를 짓고 있다. 참외, 수박, 가지, 옥수수, 토마토… 농약 없이 키운 그야말로 건강 먹거리이다. 양이 많아서 근처에 사는 동생네 나눴는데도 냉장고 야채칸을 가득 채운다. 몇 년 전에 준 감자는 아기 주먹만 했는데, 이번에는 꽤 실하니 그사이 농사력이상승하셨나 보다.


지난주에는 뒷집에 사는 큰애 친구 예은이가 커다란 쇼핑백을 들고 왔다. “우리 아빠가 만들었어요.” 수줍은 미소로 내미는 쇼핑백 안에는 감각적이고 귀여운 디자인의 달력과 벽시계, 액자 등이 있다. 디자이너이신지 아니면 사장님이신지는 모르겠는데 찬찬히 들여다보니 내가 예전에 사본 적이 있는 펜시용품 회사 제품이었다. 수많은 제품 중 내가 고른 회사 제품을 만드는 분과 이웃이 된 게 신기했다. 아마 예은이가 우리 집에서 늦게까지 놀고 간 날, 저녁을 먹여서 보낸 적이 있는데 이에 대한 답례인 듯했다.



여수에 사시는 시어머니는 내가 좋아하는 죽순을 삶아서 보내오셨다. 손이 크신 어머니는 택배를 보낼 때마다 다진 마늘이며 장아찌, 말린 생선 등으로 커다란 아이스박스를 꽉꽉 채워 보내시는데 올해 역시 죽순 나물과 함께 낙지, 문어, 장어, 새우 등 각종 해산물들로 가득 찬 종합선물세트를 받았다.



행복으로 가는 열쇠는 이 오고 가는 택배 상자 안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값비싼 것도 아닌데 삶과 마음을 윤택하게 한다.


그러나,

이런 선물을 받을 때마다 감사하면서도 난감한 것이 나는 딱히 보답할 재주가 없다는 것이다. 농산물을 수확할 텃밭도 없고, 손재주가 좋아 무언가를 만들어 보낼 수도 없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게 돈으로 사는 거라고, 내가 감사의 마음을 표할 길은 무언가를 사보내는 거밖에 할 줄을 모르니, 나이 먹을수록 이 재능 없음이 부끄럽고 아쉽다.


일전에는 브런치의 글벗 ‘흔적’님과 ‘이다’님이 구독자 500명 달성을 축하한다며 카드를 써서 사진을 찍어 보내주셨다. 세상에나 이뻐라. 시간과 정성을 들여 한 자 한 자 쓰셨을 생각을 하니, 황송하고도 감사했다.

 

없는 재능을 만들어서라도 고마운 사람들에게 이런 정성이 담긴 선물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오가는 선물이란 그런 거였다. 이것을 하느라 얼마나 수고를 들였을까 생각하는 동안 그 사람을 떠올리고, 고마워하고 그러다가 나도 뭔가 해주고 싶은 생각이 들고, 그렇게 물건은 가만히 있는데 그 에너지는 계속 파장을 일으킨다.



뭐가 좋을까. 수제쿠키, 수제비누, 도자기, 그림 등등이 떠오른다. 나의 취미생활을 위해서라기보다 순전히 정성 들어간 선물을 위한 기술연마에 의미가 있다. 예전부터 생각은 있었으나 먹고살기 바빠 쉽사리 시작하지 못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한가할 날이 과연 올까 의문이다.


남은 하반기 동안 뭐 하나라도 시작해볼까 한다. 오가는 시간, 배우는 시간 등을 생각하면 신중해야 한다. 이렇게 무언가를 연마해서, 좋아하거나 감사하는 마음이 드는 사람에게 살며시 내미는 거다.


등 뒤에 숨겼던 꽃을 수줍게 내미는 소년처럼.


예상치 못한 꽃을 받은 소녀가 놀라움과 밝은 미소로 꽉 차는 얼굴을 보게 되는 날이 오기를 소망하며,

수박을 자르고, 생선을 굽고, 액자를 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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