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회 작가의 <아무튼, 여름>을 읽던 중 한 단락이 돋보기를 댄 듯 눈에 확 들어왔다.
그때, 가게 앞으로 한 남자가 지나갔다. (중략) 짧은 머리에 키가 큰 동양인이었다. 예로부터 잘 생긴 사람을 발견하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0.3초면 충분하다. 그 찰나의 시간 동안 그의 몸 전체에서 마구 발산되는 눈부심을 포착할 수 있었지만...
그렇구나. 이게 예로부터 내려오는 진리였구나. 잘 생긴 사람을 발견하는데 0.3초면 충분하다는 것 말이다. 나에게만 있는 감추고 싶은 능력인 줄 알았는데 만고의 진리라니, 작가님과 하이파이브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얼마 전에 외출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참으로 잘생긴 청년을 발견했다. 버스 안으로 사람들이 우르르 타는데 그 많은 사람들 속에 빛나는 무언가가 포착됐다. 0.3초 만에!
이제 갓 스물이 되었을 것 같은 앳된 청년이었는데 정우성과 차은우를 합쳐 놓은 듯한 비주얼이 아닌가. 나도 모르게 크게 동공이 확장된 눈으로 청년을 정면으로 쳐다보고 말았다. 입까지 벌렸는지도 모르겠다. 청년은 그런 시선이 익숙한 듯 자연스럽게 나의 시선을 외면하고 빈자리에 재빠르게 착석.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얼른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지만 자꾸 돌아가는 눈동자를 제 자리에 잡아두느라 애를 먹었다.
그렇다. 예로부터 잘 생긴 사람을 발견하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아무리 수많은 사람들 속에 묻혀 있어도 튀어 오르는 스프링처럼 그들의 존재는 단시간에 드러난다. 생각하면 신기한 일이다. 사람 이목구비의 크고 작음, 위아래 위치가 아무리 차이가 난들 고작 몇 미리 차이로 왔다 갔다 하는 것인데 어쩌면 그 결과는 천지차이로 다를 수가 있을까. 그리고 나는 어쩌면 그 특별함을 번번이 놓치지도 않고 늘 포착한다는 말인가. 엄마는 그런 나를 보고 말씀하셨다.
"너는 사람 인물만 봐서 큰 일이야."
그때마다 기가 막혔다. 아니, 티브이 나오는 연예인들의 이목구비를 낱낱이 품평하는 사람이 누구인데! 나는 절대로 사람 이목구비의 옳고 그름, 아니 잘나고 못남을 엄마처럼 함부로 평하지 않는다. 그저 탁월함을 발견하고 지켜볼 뿐이다.
그 발견이 남들보다 조금 더 신속할 뿐. 예전부터 친구들과 어딘가를 가면, 구석 어딘가에서 머리를 푹 숙이고 있는 배우들을 내가 제일 먼저 발견하고는 했다.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로 얼굴의 반을 가려도 나는 대번에 그들을 알아보았다. 그들의 남다름을 포착하는데 예민하기 때문이다. 미(美)와 멋에 예민하다고나 할까.
내가 봤던 배우들 중 가장 인상에 남는 얼굴은 배우 김태희 씨이다. 정말이지 선녀가 강림한 줄 알았다. 예쁘다는 말로는 부족한 어떤 투명하디 투명한 아름다움. 이를테면, 태초에 맑음, 풀잎 끝 새벽이슬, 윤슬조차 없는 호수, 누구도 도달하지 못한 설원, 이런 순결한 아름다움이 온몸에 깃든 존재. 한참을 홀린 듯 우두망찰 서서 그녀를 바라보았고 며칠 동안 그녀의 웃는 얼굴이 눈에 어른거렸다. 나중에 가수 비가 그녀와 결혼한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 어떻게 그녀의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강한 기운을 이겨내고 만남을 이어갔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김신회 작가의 문장처럼 '마구 발산되는 눈부심'을 그저 아이의 마음으로 신기하게 바라본다. 엄마의 말처럼 인물만 본다는 말을 듣기에는 억울한 게, 나는 얼굴이 예쁘고 잘 생긴 사람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고유한 그만의 얼굴과 몸에 깃든 어떤 '아름다운 분위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태도와 눈빛, 목소리와 말투, 손짓과 걸음걸이 등등 그 모든 것이 어우러진 탁월한 그 무엇, 그것이 평범의 선을 넘었을 때 나는 그 매력을 포착하고 어떻게 다른지 설명하고 싶으며 그것이 왜 아름다운지 탐구하고 싶다.
그 대상이 어떤 미를 품고 있음을 알아차렸을 때는 미처 발견되지 못한, 즉 다른 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한 생소하고 낯선 기질까지 포착하고 섬세하게 그려내고 싶다. 혹여나 그 대상이 자신의 매력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을 때는 부러 남다른 단어를 골라 공들여 알려주고 싶은 책임감과 의무감까지 솟구치니...
아, 나는 미학을 전공했어야 하는가!
이때, 베프의 일갈이 매섭게 뒤통수를 후려친다.
됐고! 너는 그냥 얼빠야.
한 식당에서 베프 Y와 밥을 먹던 중이었다. 마침 티브이에서 방송인 김제동 씨가 여자들에게 인기가 없어 놀림을 당하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의 아침 라디오 방송을 일 년 넘게 꾸준히 들어오면서, 그가 티브이에 나오는 이미지와는 달리 차분하고 정중하며 친절하고 정이 깊다는 것을 알고 있던 터라 그가 오직 외모로만 구제불능 노총각으로 취급당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김제동, 남자로서 괜찮지 않아? 왜 사람들이 저런 대우를 하지."
내 말에 Y는 짜증이 난다는 듯 숟가락을 탁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야, 네가 그동안 사귄 남자들 외모를 생각해 봐. 내가 장담하건대 너 김제동 한 트럭으로 가져다줘도 절대 연애 안 할걸?" (김제동 씨 죄송합니다. 저는 펜입니다)
"...."
예상치 못한 그녀의 신경질에 그때는 아무 말도 못 했지만 지금에라도 항변하고 싶다.
Y야 장담은 내가 하는데, 내가 그들의 얼굴에 반해서 만난 게 아니라 그들이 나만의 고유한 멋과 미를 알아보았기 때문에 만남이 이루어진 것임을 알아주렴. 그들의 외모가 출중했던 것은 그저 우연의 일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