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간 통 글을 쓰지 못했다. 아니, 글을 쓰지 못한 게 아니라 삶의 의욕을 잃었다는게 맞겠다. 목까지 차오른 스트레스 탓이었다. 원인은 명확했다. 이번 주가 학부모 상담주간이었다. 작년에 휴직하는 동안 말랑말랑해진 마음이 상담주간을 지나는 동안 예상치 못한 공격을 받아 상처가 났다.
교사로서의 능력, 교육적 의도 대신 본인의 자녀가 만족하는가 혹은 내가 자신의 기분을 잘 맞추어 주는가를 기준으로 나를 평가하는 사람들은 소수임에도 불과할 지라도 나를 곤혹스럽게 하다못해 괴롭게 하였다. 겨우 상담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요구받은 수많은 사항들과 이해가 되지 않는 말들이 끊임없이 반복되며 머리가 지끈거렸다. 가끔은 내가 들은 말과 그들의 표현에 대해 적나라하게 글로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부조리함과 억지를 낱낱이 고하고 싶었다. 하지만 누군가를 향한 날카로운 칼이 들어있는 글을 쓰는 건 싫었다. 차라리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정말 아무것도 안 했다. 대신 영혼없이 집과 학교를 오갔다.
어느새 내 마음엔 불평과 불만, 부정적인 것들로 가득 찼다. 툭 하면 터지던 웃음도 잘 나오지 않았다. 처음엔 나를 불편하게 한 사람들이 미웠는데 그 다음엔 출근하는게 힘들었고, 나중엔 그냥 다 싫었다. 그 중에서도 이 것밖에 못하는 '내'가 제일 싫었다. 학부모에게든 학생에게든 어떤 요구를 받던간에 척척 해내고, 힘든 일이 있어도 씩씩하게 견뎌내면 좋겠는데 그러지 못하고 비실대는 꼴이 우스웠다. 그동안 매일 가던 운동, 꾸준히 하던 독서같이 나를 가꾸던 걸 멈추고 내 자신을 내팽개쳤다.
그 와중에 웹툰작가 기안84가 나온 프로그램을 보게 된 건 우연이었다. 채널 돌리는 와중에 스치듯 잠깐 본 얘기가 귀에 맴돌았다.
"줄타기를 하다 떨어지면 떨어진대로 살아가면 된다."
나는 아닌데. 나는 한 번 떨어지자 자진해서 계속 추락 중인데.
그제서야 그동안 내가 스스로에 대해 과대평가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향한 부정적인 평가에는 그게 아니라는 걸 입증하기 위해, 과한 기대에는 완벽하게 그 기대를 충족시켜야 겠다는 마음으로 아둥바둥 거리며 필요없는 스트레스를 받아왔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군요. 제가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혹은 "그런 걸 원하시는 군요. 하지만 제 능력 밖입니다." 라고 말할 수 있었다면. 아니, 속으로라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교사로서 잘 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나를 자꾸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게 하였다.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좋은 교사가 되고 싶어.' 라는 마음은 틀린 게 아니다. 하지만 욕심을 부리다간 아슬아슬한 줄타기에서 금방 떨어질 것이다. 그러니 '즐겁게 할 수 있는 만큼'이라는 전제조건을 달아야 한다. 마음을 비우고 좋은 교사이전에 나 자신에게 좋은 사람이 되길 바라며 줄 위에 올라선다. 신나게 줄 위에서 놀 수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