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학교는 설렘과 동시에 힘들다. 새로운 선생님, 새로운 친구들, 새로운 교실.. 아이들도, 교사들도 서로 바뀐 환경에 적응하느라 한동안 애를 먹는다. 그 중 말할 것도 없이 적응하는데 제일 힘들어 하는 학년은 이제 막 유치원에서 초등학교로 소속기관이 바뀐 1학년이다. 40분동안 책상에 앉아 있어야 하는 그 자체로 힘든데 친구도 새로 사귀어야 하고, 방과 후 스케쥴에 적응도 해야 하니 3월 한 달은 교사도, 학생도 거의 전쟁이다.
올해 1학년 담임을 맡은 나와 우리 반도 마찬가지였다. 3월 막바지에 다다른 이제서야 조금씩 학급운영의 틀이 잡혀가는데, 여전히 학교 생활이 익숙치 않은 아이들이 몇몇 남아 있다. 그 중 제일 대표적인 아이는 가은이다.
가은이는 올해 일곱살이다. 빠른 월생도 아닌데, 8살인 친오빠와 함께 나란히 입학하였다. 유치원에 있어야 할 아이가 1학년 교실에서 수업을 받게 된 것이다. 당연히 다른 아이들보다 눈에 띄게 학교 생활을 힘들어한다. 일단 수시로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다니며 딴 짓을 하고 집중하지 못했다. 학습 또한 거의 따라오지 못하며 더불어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수시로 갈등상황이 생겼다. 이 모든 상황을 보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대체 왜 일찍 입학을 시켰는지 의문이었다. 그리하여 지난 학부모 상담에서 왜 입학을 일찍 시켰는지 물어보는 나에게 가은이의 아버지는 펄쩍 뛰었다.
"선생님, 그런 질문을 들으니까 제가 기분이 너무 나쁘네요. 다 사정이 있습니다. 사정!"
아내가 베트남인이라 아이들을 돌보기 힘들다, 아이들은 학교가면 다 적응하는 거 아니냐며 화를 내는 학부모를 향해 나 또한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꾹 참고 그런 뜻이 아니라 달래야만 했었다. 여전히 기분 나쁜 티를 팍팍내는 학부모와 겨우 상담을 마무리 짓고 나니 몸도, 마음도 진이 빠졌다.
그런데 오늘 4교시 쉬는 시간이었다. 여자 아이 하나가 호들갑을 떨며 나를 불렀다.
"선생님, 선생님! 화장실에 가보세요!"
"왜?"
"가은이가 옷에 오줌쌌어요!"
"뭐?"
언젠가 한 번쯤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지만, 왜 하필 가은이일까 생각하며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 아버지와 또 연락 할 생각을 하니 머리가 아득해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이부터 확인해야 했다. 화장실 입구에서 아이 이름을 부르니 문 하나가 스르르 열리며 그 안에 서 있는 가은이가 보였다.
"가은아, 혹시 바지에 오줌 쌌어?"
아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된거야?"
"아까 화장실 가고 싶다고 했는데 선생님이 가지 말라고 해서 참다가.."
하루에도 서 너번, 수업시간에 화장실 가는가은이에게 처음으로 참으라고 한 오늘, 바로 옷에 실수를 한 것이다. 까마득하게 밀려오는 미안함과 당황스러움으로 뒤범벅된 마음을 감추고 짐짓 아무렇지 않은 투로 물어보았다.
"앞으론 어떻게 할거야?"
"..쉬는 시간에 화장실 갈 거에요."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아이의 구슬같이 까만 눈동자를 보고 있자니 측은하고 미안했다. 아직 학교에 올 나이가 아니기도 했고, 그러기에 나의 관심과 배려가 더욱 필요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생각에 미안하기도 했다.
어찌되었든 아이의 아버지에게 연락을 해야만 했다. 긴장하는 마음으로 전화를 해서 상황을 설명하였다. 다행히 20분내로 옷을 갖고 오겠다는 답변 뒤로 시끄러운 공사장 소음이 함께 들렸다. 아이의 뒷처리를 마저 한 후 혹여 친구들이 젖은 옷을 놀릴까 싶어 도서관에 아이를 잠시 맡기고 뒤돌아서는데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계단을 올라오는 이가 있었다. 공사현장에서 막 달려나왔을 법한 옷차림에 한 손엔 가방을 들고 있었다.
"혹시 가은이 아버님이신가요?"
고개를 주억거리며 가방을 내미는 가은이 아버지의 투박한 손을 보자 나도 모르게 죄송하다는 말이 툭 튀어나왔다.
"아버님, 일하시는데 오시게 해서 죄송해요."
예상치 못했던 답이 찰나에 돌아왔다.
"어휴, 아닙니다,아니에요. 혹시 모르니 앞으론 여벌 옷 챙겨서 보낼게요."
뒤돌아서 후다닥 계단을 내려가는 남자의 등 뒤로 삶의 고단함과 함께 자식을 걱정하고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묻어났다. 그 아버지의 마음이 담긴 보송보송한 옷으로 새로 갈아입은 아이는 기분이 좋아져서 다시 교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아무일 없었던 듯 5교시 수업까지 마쳤다. 일과가 끝난 후, 인사까지 끝낸 아이들이 모두 떠나 교실에 홀로 남은 나에게 가은이가 다시 찾아왔다.
"선생님, 근데 돌봄교실 어디에요?"
지난주에도, 지지난주에도, 또 그 전주에도 매일 데려다 주었던 돌봄교실을 또 물어보는 아이. 한숨대신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선생님이 데려다 줄게. 가자."
(학생 이름은 학생 보호차 가명을 사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