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근무하는 교사들은 학급을 경영하고, 수업을 하는 것과 별개로 크든 작든 학교 업무를 맡는다. 그리고 업무의 성격에 따라 다양한 일을 해낸다. 대회를 나갈 때도 있고 교육을 하는 것처럼 직접 학생들과 관련된 일도 있고 회계처리나 강사관리와 같이 행정적인 업무를 봐야할 때도 있다. 올해 내가 맡은 일은 전자보다 후자에 가깝다. 4명의 예술강사를 선발하여 6개 학년에 고루 배치, 총 12개의 수업을 계획하고 연간 일정 및 시간표를 계획해야 한다. 더불어 매달 말 강사비도 지출해야 한다. 문제는 내가 결코 학교업무에 능한 편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거의 모른다. 핑계를 대자면 업무 지원팀이 있는 학교에 근무해서 때문에 몇년간 담임업무만 해 온 까닭이라고 그럴듯 하게 말하지만 실상은 학교업무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내 능력과 상관없이 올해 업무를 맡게 되며 요즘 계속 바빴다. 주말에도 학교에 갔고, 다른 사람보다 1시간 일찍 출근해서 1시간 늦게 퇴근하는 날이 반복되었다. 마침내 굵직한 업무들을 거의 마감하고, 예산 변경문제만 남았다. 올해 지출해야 할 강사비가 늘어난 탓에 기존에 부여받은 예산 중 일부의 사용처를 변경하겠다는 안건을 운영위원회에 올려야만 했다. 이와 관련해 행정실에 문의하러 간 나에게 행정실장님은 통합이니, 권장이니 알아들을 수 없는 못할 말을 하다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를 던졌다.
"선생님, 재원 확보는 된 거지요?"
"재원이요?"
충동적으로 '저희 반에는 재원이란 친구가 없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고 대신 어설프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 대강 돈은 있냐는 뜻으로 물어본 거겠지 짐작하면서.
교실로 돌아가는 길, 실장님이 말한 내용 중 절반도 못 알아들은 나 자신에게 현타가 왔다. 회계 뿐만이 아니었다. 문서 작성도 익숙치 않아 기껏 상신한 문서를 몇 번이고 회수하여 재작성한 탓에 교감선생님도 아침에 슬쩍 언질을 준 바가 있었다. 김여정 선생님은 문서 여러 번 고치나봐, 하시며. 저경력의 신규교사였다면 문제될 일이 아니었다. 아직 모르는 게 맞으니까. 하지만 나는 경력 15년의 교사였다. 이 경력에 일을 못한다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진작에 학교 일에 관심 좀 가질걸. 교사는 잘 가르치기만 한다는 생각으로 학교 업무를 소홀히 여겼던 걸 후회하다 나의 또다른 경력이 떠올랐다.
이 세상에 태어난 것도 경력으로 친다면, 어느새 인생 경력 40년차에 육박하였다. 하지만 내 삶은 그 경력에 비해서 어떤가. 화려한 커리어는 아니더라도 나는 이 경력에 어울리는 능력치를 갖고 있는건지 궁금해졌다. 단순히 집이나 차, 월급명세서처럼 눈에 보이는 걸 능력이라 규정짓는 게 아니다.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그리고 한 인생의 주체로서 얼마나 바르게 살아왔는지에 관한 것이다. 어쩌면 나는 학교일과 마찬가지로 나 자신에게는 꾸준히 집중한 반면, 내 주위를 살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가끔 남편과 언쟁을 벌일때면 "너는 너 밖에 모른다"했던 남편의 말이 퍼득 생각났다.
한 때 눈 떠서 눈 감을 때까지 공부만 했던 학창시절에는 내 성적이 내가 가진 능력의 모든 것이라 여겼다. 그리고 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로 이제껏 살아왔다. 정확히 이십년이 지나고 나서야 내 것만 아니라 내 주위도 살피고 둘러볼 때 내 능력이 성장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지금까지 해왔듯 나, 나의 감정, 나의 일만 살피는 대신 앞으로 주위를 살피고 돌아보는 사람이 되기를, 그리하여 경력에 어울리는 능력을 갖게 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