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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리샘 Apr 25. 2024

숨 뽀뜨는 나를 위해

'뽀뜨다' 라는 제주 사투리가 있다. '약간 부족하다'의 어감을 지니고 있는 이 표현은 굳이 따지자면 표준어 '빠듯하다'와 비슷하다. 하지만 '빠듯하다' 라는 말로는 완전히 대체할 수 없는 '뽀뜨다'만의 관용적 표현이 있다. 바로 '숨이 뽀뜨다'이다. 깊은 물 속으로 잠수했다가 도저히 숨을 참지 못하고 나올 때, 그 때가 바로 '숨이 뽀뜨는' 순간이다.  수심 깊은 곳에서 체내 산소가 부족할 때 느끼는 그 아찔함. 요즘의 나는 물질하는 해녀도 아니건만,  하루에도 몇 번씩 그  '숨 뽀뜨는' 순간을 느끼곤 한다. 

 이제 막 2학년이 된 첫째와 6살 쌍둥이를 둔 엄마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책을 많이 읽어주고, 영양가 있는 식사를 제공해야 한다. 올해 첫 1학년 담임을 맡은 교사로서 해야할 일도 명확하다. 학년 교육과정 및 교과서 연구가 필수다. 거기다 한 가정의 주부로서, 깨끗하고 정돈된 환경을 제공하는 것 또한 나의 일이다. 이렇게 내가 해야 할 일들이 척척 쌓여가는 와중에 나는 감히 한 가지 바람을 갖기 시작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싶어, 라고. 

 

 그 바람은 점점 구체화 되었다. 분명히 시작은 단순히 '좋아하는 책을 읽고 가끔 기록을 남기자.'였다. 그런데 내가 만난 나의 선생님과 좋은 벗들, 그들과 나눈 대화들이 그 단순한 바람을 바꾸었다. 마침내 나는 쓰고 싶은 분야에 대한 도서들을 적어도 30권은 읽어보고, 이번 여름방학엔 한 가지 주제로 깊이 파고드는 글을 써서 가을이 되면 투고를 하고 싶다는 꿈으로 바뀌었다. 

 문제는 세상 사람들 모두 입모아 말하는 핑계를 나 또한 자꾸 말하게 되는 데 있었다.-'도저히 시간이 없어.' 

아이들 다 키우고 독립시키고 나면 시간이 남아돌텐데 그 때의 시간 좀 미리 땡겨쓰면 안될까 하는 상상도 해보며 나의 '시간없음'을 한탄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하고 싶은 일은 있어. 하지만 시간이 없어. 그런데 남들처럼 시간없다고 핑계대는 내가 싫어. 근데 해야 할 일은 또 많아. 이 루프처럼 이어진 생각들을 반복해서 매일 하다보니 점점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고 마침내 해야할 일과 부담에 억눌려 숨이 뽀뜨게 된 것이다. 

그런데 어제 아침, 출근하며 듣는 오디오북에서 나온 한 구절이 내 귀에 꽂혔다. 자신에 대한 기준을 낮추라고. 책을 읽을때면 첫장부터 마지막페이지까지 한 글자도 남김 없이 읽은 후, 전체 내용을 완벽히 요약해야 마음이 놓이고, 글을 쓸 때면 두 세시간 공들여 써야 만족하는 나에게 누군가 던져준 충고였다. 하루에 두 세장 밖에 읽지 못하더라도, 대강 써서 부족한 점이 많은 글일지라도 괜찮아. 일단 그렇게 조금씩 나아가면 되는거야. 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일어나 쓴다. 평소보다 길이도 짧고 아무렇게나 써 내려간 글이지만 일단 쓴다. 그리고 이 글을 다 쓰고나면 읽다만 책 한권을 집어들어 읽을 것이다. 운이 좋으면 한 두 페이지 읽고 출근할 수도 있겠다. 어찌되었든 한탄대신 한다. 그럼 어제보다 1cm라도 내 꿈에 가까워지겠지. 괜히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좋은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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