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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찬제티 Mar 18. 2024

난독증과 학습장애는 비슷한 걸까?

#난독 그리고, 의사소통 학습장애


난독증(難讀症, dyslexia)이란 지능은 정상이지만 문자를 읽는 데 어려움이 있는 증세로서, 학습장애의 일종이다.      

⓵ 가령 ‘스파게티’를 ‘파스케티’로, ‘헬리콥터’를 ‘헤콜립터’로, ‘혓바닥’을 ‘허파득’이라고 읽는 경우다.  

⓶ 이런 사람들 대부분은 단어를 기억해 내는데 어려움을 겪거나 문장을 읽어도 뜻을 잘 인지하지 못한다. (즉, 읽기 학습장애다)

⓷시각과 청각 모두 정상인데 글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장애라서 더욱 안타깝다.      

    

2년 전 나를 찾아온 나연이 어머니도 난독 증상과 비슷한 증상을 가진 딸 때문에 상담을 다녀가셨다. 

나연이는 초등학교 4학년이다.

학령기 때부터 학습장애는 물론, 또래와 잘 어울리지 못해 초등학교 1학년인 나연이를 국공립 초등학교가 아닌 대안학교를 보내고 있다고 했다. 때문에 또래보다 한 살이 많다는 사실도 털어놓으셨다. 




기초상담을 통해 이야기를 들어보니, 나연이의 어머니와 나연이가 난독증과 관련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런 경우, 먼저 전문가의 상담이 필요할 수 있다. 난독증을 겪고 있는 아이들에게 적합한 교육법을 찾는 것은 당연하고 중요하다. 나연이의 어머니가 이미 대안학교를 선택했지만,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 어떤 교육방법이 적합한지 추가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안내했다.   



        

며칠 뒤 정말 뽀얀 피부의 마치 겨울왕국에 나오는 엘사의 눈처럼 맑고 사랑스러운 눈을 가진 나연이와 처음 만났다. 초등학교 4학년인 나연이는 위로 언니와 아래 남동생이 있는 삼 남매 중 둘째였다.      

나연 어머니는 앞서 나와의 상담에서 나연이의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어떻게 하면 이 아이가 글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을까? 오로지 글만 읽을 수 있다면 너무 다행이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나연이가 읽고 싶은 책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이야기하셨었다.      




학교 공부가 뒤처지더라도 제대로 글을 읽을 수 있어야 순차적으로 학습에 대한 부분을 채울 수 있다는 걸 이미 잘 알고 계셨다. 사실 장애를 가지고 있거나 또래 아이보다 느린 학습자 부모의 경우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어렵고 힘든 부분이라는 걸 여러 사례를 겪으면서 알게 되었다. 학습 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동은 실패를 예민하게 받아들일 만한 지능적 능력이 없기 때문에, 지능이 낮은 아이들보다 심리적으로 상처를 받는다. 때문에 갈수록 자존감이 낮아지고 대인관계에서도 위축되는 것을 여러 사례를, 학원을 운영하면서 많이 봐왔다.              



 

나연이의 현재 읽기 능력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4학년인 나연이가 읽을 수 있는 생활동화를 읽혀보았다. 동화책을 읽어 본 결과 글을 읽는다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든 상태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발음뿐만 아니라 읽지 못하는 낱말과 어색한 표현들이 매우 많았다. 난독증 상의 한 부분처럼 레미제라블을 레미라제블로, 있습니다를 잇습니다로 읽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내용이해는 기대하기조차 힘든 상황이었다.    



 

그다음으로 초등 저학년이 읽는 이솝우화와 탈무드 동화를 읽혀보았다. 이 책들 역시 읽혀보니 아주 쉬운 낱말을 제외하고 자주 사용하지 않는 표현들은 나연이에게 매우 낯설고 당황하여 더 이상 책을 읽는 것이 무리겠구나라는 판단이 들었다.     


 



6세에서 7세가 읽을 수 있는 그림동화는 글이 매우 적고 유치원 아이들도 자유롭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 나연이에게 적정한 눈높이의 맞는 책이라는 사실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나마 쉽게 접근하여 자신감을 가지고 읽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첫 대면수업에서는 나연이의 읽기 능력에 대한 과정을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이 시간을 통해 나연이는 책을 읽는 것만이 어려운 과제가 아니라 의사소통에도 부족한 부분들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매일 보는 가족이나 친지가 아니면 낯을 많이 가리며 소통방식에도 어려움이 많았다. 한 예로 자신이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할 때면 얼굴 전체를 일그러뜨리고 입으로는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를 중얼거리고 있고, 몸을 움츠려 머리 전체를 감싸는 것이다. 스스로 자신이 느끼는 감정 또한 여러 번 질문을 통해 확실한 상태를 알 수 있었고 확인할 수 있었다.               




나연이에게 필요한 책 읽기 수업은 단계적인 학습과 나연이 개인 맞춤 책 읽기 프로젝트가 누구보다 절실히 필요했다. 효과적인 학습과 효율을 위해 학생 개개인의 성향과 학습의 진도가 필요했다. 나연이의 이해도가 또래 아이들과 다르기 때문에 나 연이나 연이만을 위한 커리큘럼도 필요했다.      




나연이는 주 5회 수업으로 매일 1시간씩 요일별 수업을 다르게 설정했다. 난독증 상의 특성상 집중시간도 길지 않았기에 책 읽기는 매일, 책을 읽은 후 내용요약은 주 3회 수업하기로 했다. 이틀은 또래집단과 관계형성 이해에 할애했다. 책 읽기는 생활 동화를 중심으로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소리 내어 읽기를 통해 1차적인 음절단위의 발음교정과 내용파악 후 요약정리를 통해 학습적인 부분까지 이끌기 위함이었다. 생활동화는 여러 사례를 공유하고 간접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는 학습 이외의 행동발달과 사고에 대한 부분을 채워주기 위함이었다. 물론 가정 내에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라면 나연이의 경우는 반복적으로 학습이라는 주제로 다룸으로써 상황에 대한 대처능력을 키워주기 위해 반드시 해야만 했다.      



다음으로 책을 읽은 후 정확한 주제를 파악하기 위해 조각조각인 퍼즐을 맞추는 마인드맵 형식의 생각나무 만들기를 진행했다. 책을 읽으면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단어나 느낌을 핵심어 중심으로 적게 하여 하나의 문장으로 완성시키는 학습을 진행했다.      




처음학습을 시작한 후부터 이후 몇 차시 동안에는 시도조차 하지 못했고 책을 읽으면서 핵심단어조차 찾아내지 못해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모두 알고 있지만 실제 학습에는 적용하지 못하는 꾸준함이 관건이었다. 쉽게 무기력을 느끼고 관심이 없는 분야에 관심과 흥미를 끌게 하기 위해 미리 책 내용을 숙지한 후 옛이야기처럼 역할극을 해가면 이해를 도왔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꾸준하게 생활동화, 한글 학습에 도움을 주는 이야기, 인물, 사회, 경제, 관계형성과 관련한 책까지 다양한 책 읽기의 폭을 넓혀 나갔다.         

       

나연이는 중학생이 되면서 그동안 꾸준하게 책 읽기로 단련된 인지능력이 향상되기 시작했다. 문학작품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면서 현대문학, 세계문학, 고전소설까지 시간차를 두고 나연이의 성실함을 바탕으로 읽혀나갔다.     



중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로 기억한다. 기 드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을 읽고 나서 한동안 한숨을 쉬고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어떤 부분에서 답답한 느낌을 느꼈냐고 물으니 제법 자기 생각을 논술다운 어조로 풀어냈다.  어떻게 한 인간의 삶이 이토록 처절할 수 있냐고 했다. 주인공인 잔느가 부유하게 태어나고 자라왔던 것처럼 자기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여 좀 더 지혜롭게 살 수 없었는지 답답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나연이에게 기립박수를 쳐주며 너무 대단하고 너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어엿한 중학생이 되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6년 동안 주말을 제외하고 매일 만나서 책 읽기와 내용요약을 꾸준하게 했다. 초등학교 때에는 또래 집단에 적응할 수 있는 관계형성에 대한 학습으로 역할놀이, 상황 대처활동을 주 2회 실시했다.     


나연이의 학습지도를 하는 동안 나연어머니와 2주 단위 정기상담과 가정 내 피드백을 주고받았다. 학원에서는 나연이와 꾸준한 주 5일 학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책 읽기 수업은 3분 단위로 소리 내어 책을 읽으며 몇 글자를 읽는지 수업시간 동안 정기적으로 기록하며 학습을 이어 나갔다. 지금도 나의 핸드폰에는 나연이의 학습 때 사용했던 소리 내어 책 읽기를 하며 녹음 한 녹음파일이 있다. 나연이가 최선을 다하여 책을 읽으며 녹음을 하고, 학습의 극대화를 이루기 위한 흔적들이 남아있다. 내용요약을 위해 끊어 읽기를 하며 생각나무를 만들고 핵심어를 기록하여 하나의 완성된 문장을 만들기 위한 문장제 연습을 했던 연습장은 얼마 전 이사를 하면서 보니 책장 한편에 꽂혀있었다. 



     

난독증을 가진 아이들도 6개월이나 1년 만에 발전을 이루면 얼마나 좋을까! 이해력과 문해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한 생명이 태어나는 것처럼 인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난독증을 앓았던 초등학교 4학년의 나연이가 어느새 고2가 되어 대입 준비를 1년 앞두고 있다. 대입 준비를 하며 앞으로 더 많은 도전과 어려움이 있겠지만, 나연이가 차근차근 쌓아온 노력과 열정이 큰 힘이 될 것이다. 6년간 나연이의 길잡이가 된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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