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증거나 추가진술서 내는 방법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경찰서에 피해자 조사를 받으러 다녀온 후, 긴 기다림의 시간을 지나면서 '새로 생각나는 것'들이 있습니다. 아무리 진술을 또박또박 빠짐없이 잘하려고 마음먹고 간 피해자 조사라 하더라도 아쉬운 부분이 있기 마련이죠.
그리고 사건이 진행되면서 새로운 증거들이 발견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사건 초기에는 나타나지 않았던 목격자라거나, 블랙박스 영상에 담긴 사건 현장 녹화본 같은 것들 말이죠.
피해자 진술을 한 이후에 추가로 증거를 내고 싶거나, 추가로 진술을 하고 싶어질 때, 피해자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
1. 추가로 증거 내기
추가로 증거를 내는 일은 물론 가능합니다. 수사기관에서도 기본적으로 환영할만한 일이죠. 형사사건이라는 것이 원래는 증거수집의 책임이 수사기관에 있는 일이기는 하지만(좀 어려운 말로, 피고인이 유죄라는 것에 대한 입증책임은 검사에게 있다고 합니다), 수사기관도 워낙 바쁘고 사건이 많기 때문에 사건 관계자를 통해 증거를 수집해서 사건처리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해자의 유죄에 도움이 되는 증거라면 망설일 필요 없이 내는 것이 맞겠죠.
그런데 조금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증거를 무조건 많이 낸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거든요. 내가 생각할 때는 가해자에게 불리한 것이라고 생각해서 낸 증거가 사실은 피해자에게 더 불리한 증거로 해석되는 경우도 있어요.
그래서 수사기관에 증거를 내기 전에 물어보고 내면 좋아요. 누구에게 물어보냐고요? 제일 좋은 것은 피해자의 변호사입니다. 지난 글에서 설명드린 것과 같이 우리나라는 (1)성폭력 (2)아동학대 (3)장애인학대 (4)인신매매 범죄에 대해서 피해자 국선변호사를 선정해주고 있어요. 그래서 여기에 해당되는 피해자는 새로운 증거를 국선변호사를 통해 수사기관에 내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변호사가 없는 경우는 어떻게 하냐고요? 내가 당한 범죄를 도와주는 기관이나 단체 등의 직원이나 상담사에게 물어보신 후 제출하시는 것을 한번 고려해보세요. 비슷한 사건을 많이 지원하신 분들이라 이 증거를 내는 것이 유리한지 불리한지 알려줄 수 있거든요.
2. 추가로 진술서 내기
피해자 조사를 하고 오면 통상적으로 그 이후 피의자 조사를 합니다. 피해자가 진술한 피해 내용을 바탕으로 정말 이런 짓을 한 것이 맞는지 피의자를 불러 물어보는 거죠. 그러다보면 가해자가 지금 자기 범죄에 대해 뭐라고 변명을 하는지 들려오기도 합니다. 수사기관에서 다시 피해자에게 연락을 해 와서 '가해자는 이렇다고 하던데 정말 맞나요?' 하는 경우도 간혹 있고, 서로 아는 사이의 범죄라면 돌아돌아 피해자 귀에 가해자의 변명이 들어오기도 하죠. 그러면 피해자 입장에서는 그 변명을 제대로 반박해주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그럴 때 적어 내는 것을 '진술서'라고 합니다. 피해자가 하고 싶은 말을 종이에 적어서 내는 것이죠. 손글씨로 써도 되고 컴퓨터로 친 글을 인쇄해서 내도 됩니다.
종이로 적는 것이 너무 귀찮으니 그냥 수사기관에 전화해서 말로 하면 안되냐고요? 물론 그것도 방법이긴 합니다만, 진술서와는 법적 효력이 차이납니다. 수사기관에 말로 하는 것은 수사관이 나중에 '수사보고'라는 간단한 종이에 적을 뿐이에요. 수사보고서는 증거로서의 효력은 없고 그냥 사건을 파악하는 참고자료 정도의 역할만 할 뿐이죠. 수사보고서가 형사사건 기록에 꼭 들어가리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하지만 진술서는 피해자가 직접 작성해서 제출한 문서이기 때문에 증거로서의 효력을 가집니다. 형사사건 기록에도 포함되죠.
진술서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가면 될까요? 경찰민원포털에 올라온 서식을 보면 [성명 한자 연령 주민번호 본적 주거]와 같은 인적사항을 적은 후, 추가하고 싶은 진술을 적는 빈칸들이 나옵니다. 저 인적사항 항목들을 반드시 다 적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요, [이름, 나이, 생년월일, 집주소, 연락처] 정도를 정확히 적으면 됩니다. 핸드폰 연락처를 남기기 부담스러우면 이메일 주소라거나 팩스번호 같이 이후 수사기관에서 오는 연락을 받을 다른 창구는 꼭 적어두어야 합니다. 진술하고 싶은 내용을 다 적으면 오늘이 몇년 몇월 며칠인지 작성자는 누구인지 마지막에 적고 작성자 이름 옆에 도장을 찍거나 서명을 합니다. 더 확실하게 하고 싶다면 신분증 사본을 진술서와 같이 내기도 하죠.
이렇게 진술서를 써서 내면 완전히 끝일까요? 아닙니다. 하나 더 알아야 할 중요한 내용이 있어요. 진술서를 낸 사람은 나중에 법정에 가서 증언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갑자기 그게 뭔 부담스러운 소리냐고요? 이건 형사소송법에서 정한 것인데요, 뭐라고 써 있는지 한번 볼까요?
제312조(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의 조서 등)
④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이 피고인이 아닌 자의 진술을 기재한 조서는 적법한 절차와 방식에 따라 작성된 것으로서 그 조서가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 앞에서 진술한 내용과 동일하게 기재되어 있음이 원진술자의 공판준비 또는 공판기일에서의 진술이나 영상녹화물 또는 그 밖의 객관적인 방법에 의하여 증명되고, 피고인 또는 변호인이 공판준비 또는 공판기일에 그 기재 내용에 관하여 원진술자를 신문할 수 있었던 때에는 증거로 할 수 있다. 다만, 그 조서에 기재된 진술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하에서 행하여졌음이 증명된 때에 한한다.
⑤제1항부터 제4항까지의 규정은 피고인 또는 피고인이 아닌 자가 수사과정에서 작성한 진술서에 관하여 준용한다.
이게 한국말이 맞는건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어렵죠? 쉽게 설명하자면, 범죄를 저지른 당사자가 아닌 사람(목격자, 피해자 등)이 말한 것(진술조서)나 적은 것(진술서)를 증거로 쓰려면 그 말한 사람이나 적은 사람이 판사 앞에 나와서 "이거 내가 적은 것 맞아요." "이거 내가 말한 것 맞아요"라고 인정을 해야 증거로 쓸 수 있다는 뜻입니다.
모든 사건마다 다 법정에 나가는 건 아니고 피고인(재판에 넘겨진 가해자)이 그 진술조서나 진술서를 증거로 쓰는데 동의하지 않은 경우에만 법정에 나가는 거에요. 그래서 내가 제출하는 이 진술서를 피고인이 법정에서 증거로 쓰는데 동의하면 나는 따로 법정에 나가서 '내가 적어 낸 진술서 맞아요'라고 확인할 필요가 없어요.
에이~ 나중에 법정까지 나갈 수 있는 일이라면 진술서를 제출하지 말아야겠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꺼에요. 하지만 내가 감수한 작은 불편함이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처벌할 수 있는 중요한 증거가 되는 것이니 조금 귀찮아지더라도 꼭 진술서를 내는 것이 좋습니다. 게다가 요새는 법원마다 증인지원 프로그램이 잘 되어 있어서, 혹시 법정에 갈 일이 있더라도 미리 신청만 하면 재판에 들어가기 전부터 증언 마치고 집에 갈 때까지 증인지원을 다 받습니다. 피고인과 만날 수 없도록 증인이 이용하는 통로도 다르고 심리적 안정을 가진 채로 증언할 수 있도록 미리 자세히 설명도 해 줍니다. 그러니 너무 부담스러워 하지 마시고 새로운 진술서를 내는 용기를 내 봅시다!
마지막으로, 증거나 진술서를 낼 때는 꼭 복사본을 본인이 가지고 있으세요. 내가 낸 증거나 진술이라 하더라도 나중에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받으려면 청구가 불허되는 경우도 있거든요. 그리고 어떤 증거를 냈고 어떤 진술을 했는지 나중에 시간이 지날수록 가물가물 해 집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법정에 증언할 일이라도 생기면 다시 머릿속이 까매지기도 해요. 그러니까 조금 귀찮더라도 뭔가를 수사기관에 내는 경우라면 그 복사본을 꼭 챙겨두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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