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글을 보고 '나도 최근에 고소장 접수를 거부당한 적이 많다!!'라고 분노의 연락을 주신 분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수사권조정 전에는 어떻게 돌아갔길래 고소장 접수가 지금보다 쉬웠는지 이유가 궁금하다는 분도 계시더군요.
그런 점을 감안해서 고소장 접수 거부 실전사례와 대처 방법을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수사권조정 전에 사건 접수 거절이 별로 없었던 이유를 설명해 드릴게요. 가장 큰 이유는 검찰과 경찰 두 곳에서 모두 고소장을 받아주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고소장을 경찰서에서 받아주지 않으면 검찰청 민원실에 접수하고 오면 되었거든요.
그 때는 경찰이 사건을 안 받으려고 하거나 사건에 대한 잘못된 관점을 드러내는 등 사건의 전망이 별로 좋지 않을 것 같으면 검찰청에 가서 접수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검찰에 접수된 고소장은 검사가 살펴보고 가장 적절한 관할의 경찰서로 "수사지휘서"를 붙여 보내면서 언제까지 사건 수사를 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경찰에서 수사를 한 후 사건은 다시 검찰에 송치되었죠.
물론 그 시절에도 검찰이 말도 안 되는 사건까지 하나도 거절하지 않고 몽땅 받은 것은 아닙니다. 같은 사건을 중복해서 고소하거나, 기재된 내용 자체만으로 허위인 것이 분명한 고소, 법에 위반되는 고소와 같은 것은 받지 않았어요.
문제는 지금 많이 발생하는 경찰의 고소장 접수 거부는 그런 명확한 이유로 인한 것이 아닌 경우가 많다는 것이죠.
그래서 고소장 접수가 거부되었을 때 '제발 접수해달라'고 계속 반복해서 요구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냐?는 분도 계시더라고요.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조금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들이요.
지난번에 설명드린 다른 방법들 기억하나시나요?
(1) 계속 접수해달라고 가서 고소장 반복해서 내기
(2) 정식으로 경찰에 항의를 하거나 진정서를 넣기
(3) 우체국 가서 등기우편으로 고소장 접수하기
(4) 관할이 다른 경찰서에 가서 고소장 내기
(5) 이미 개시되어 있는 다른 사건에 추가 고소장을 내기
그런데 무작정 계속 접수해달라고 하면 진상 취급을 당하면서 문전 박대를 당해 심한 마상(마음의 상처)을 입을 수도 있어요. 그러니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정중한 태도를 잃지 않고 가해자를 꼭 처벌하고 싶다는 의지를 잘 전달하는 것이 좋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1)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사건 발생 후 너무 늦게 고소를 했다는 이유로 안 받겠다고 해도 굽히지 마세요. 공소시효가 끝난 사건이 아니면 발생한 지 오래된 사건이라고 고소장을 안 받을 수는 없거든요.
(2) 이건 민사소송으로 하세요!
경찰에서 최근 경제사건에 대한 고소장을 받으면, 고소장 접수를 할 사안이 아니라며 민사소송을 내라고 하는 경우도 많이 있어요. 사실 금전관계 사건(특히 사기나 배임 사건)은 투자를 할 때나 돈을 빌려줄 때 어느 정도의 수익을 기대하면서 어느 정도의 위험을 감수하고 했다고 봐서 피해자를 조금 비난하는 경우도 있어요. 경제사건은 대체로 입증이 까다롭고 법리가 복잡하기 때문에 가해자와 피해자가 얽히고 섥혀있는 큰 금액의 경제사건은 되도록 경찰에서 받으려고 하지 않아요.
여기서 정말 피해자에게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2022년 9월 10일부터 법무부가 시행하고 있는 '검사의 수사 개시 범죄 범위에 관한 규정'으로 조금 숨통이 트였습니다. 이 시행령이 예전에는 굉장히 좁고 어렵게 되어 있어서 검찰에서 사실 경제사건을 거의 들여다보기 어려웠거든요. 그런데 이걸 바로잡아 이제는 대부분의 경제 범죄를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있도록 바뀌었습니다.
민사사건이니 경찰서에 고소장을 가져오지 말라는 소리를 계속 들으시는 분은 그 고소장을 검찰청에 가지고 가셔서 "2022년 9월부터 바뀐 검차의 수사 개시 범죄 범위에 관한 규정(대통령령)에 따라 이 가해자를 검찰에서 직접 수사해 주세요."라고 말하면서 고소장을 접수해 보세요.
(3) 여기 관할이 아니니 맞는 관할로 가세요!
경찰에서 '이 사건은 우리 관할이 아니라 접수할 수 없다'라고 말하면서 고소장 접수를 거절하는 경우에는 이렇게 이야기하세요.
"경찰청 훈령인 범죄수사규칙 49조에 보니까 고소와 고발은 '관할 여부를 불문하고' 접수해야 한다고 되어 있던데요?"
그렇습니다. 법을 잘 모르는 데 어디가 제대로 된 관할인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리고 관할은 원래 한 개가 아니에요. 범죄가 발생한 곳을 관할하는 경찰서나 가해자나 피해자가 사는 곳 경찰서 모두 관할이 있어요. 그러니 어디에 고소장을 내야 하는지 정말 모를 때에는 가까운 경찰서에 내시고 관할이 있는 곳으로 이송(사건을 보낸다는 뜻) 해달라고 하면 됩니다.
마지막으로, 고소장 접수를 안 해주는 것에 대하여 어디까지 항의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는 분도 계셨어요. 맘 같아서는 당장 그 자리에서 싸우고 싶더라도 일단 진정하시고요. 경찰도 지금 수사권 조정 이후 너무 힘들어졌기 때문에 일부러 피해자를 힘들게 하려고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닐 거예요.
그러니 쉬운 단계부터 항의하는 방법을 알려드릴게요.
고소장 접수를 자꾸 안 해주는 것이 국민의 권익을 침해한 것이라는 국민권익위원회의 결정이 여러 개 있어요. 112로 신고한 후에 같은 내용을 정식으로 고소장을 냈는데, 그 고소장이 원래 접수된 내용과 같다고 반려한 것은 부당한 업무처리라고 결정된 사례가 있고요, 이런 걸 왜 신고하냐면서 고소인의 동의도 없이 고소장을 반려한 것도 부당한 업무처리라고 결정이 났어요. 경찰에 이런 내용을 알고 있다는 것을 고소장 접수하면서 항의하시는 것도 좋을듯합니다.
다른 방법도 있어요. 고소장 접수를 거부하는 경찰관이 일하는 경찰서에 청문감사실이 있는데요, 그곳에 고소장 접수가 거부되었고 그게 부당하다는 내용의 민원을 넣으세요. 그러면 많은 경우 해결이 됩니다.
그렇게 했는데도 처리가 잘 안되면, 경찰청에 '진정서'를 작성해서 접수를 시키세요. 진정서 서식은 경찰민원포털에서 다운 받을 수 있어요. 일단 진정을 접수하면 경찰청에서 경찰서로 해당 내용을 조사하거나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면서 문제가 해결되기도 합니다.
간혹 고소장 접수를 별다른 이유 없이 거부한 경찰을 직무유기죄로 고소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처벌을 당한 경찰은 거의 없지만 말이죠.
소송을 하시는 분도 있더라고요. 고소장 접수를 거부한 경찰을 상대로 국가배상청구를 해서(법원에 소송을 따로 걸어야 합니다) 승소한 사례가 있고, 그 경찰관을 상대로 위자료 청구를 해서 대법원까지 가서 소액이긴 하지만 이긴 사례도 있습니다.
그런데 범죄 피해로 인해 이미 충분히 힘들고 고통스러운 피해자에게 이런저런 방법으로 더 에너지를 쏟아보라고 말하는 저도 참 마음이 어렵습니다. 길이 좁아졌고, 가려는 사람은 여전히 많기 때문에 예전보다는 더 큰 에너지가 드는 것이 사실이에요. 혼자 해 내기 어렵다면 이 일을 도와줄 사람이나 단체의 도움을 받으시길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