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의 방향』 식탁 위로 흩어진 온도
‘김정곤 정신의학과’ 상담실에 앉아 창밖을 보고 있었다. 두꺼운 유리벽으로 가로막힌 수족관 속 소리처럼 안국역 주변의 소음은 웅웅 거리는 듯 들렸고 공기청정기가 내뱉는 투명한 바람만이 내 뺨을 스쳤다. 문이 열리고 바람이 빠져나갔다.
“윤 기자님, 어서 오세요. 신혼여행은 잘 다녀오셨어요?”
김 원장의 환한 인사를 받으며, 나는 잠시 첫 약속이 취소되었던 결혼식 전날의 소란을 떠올렸다. 약속을 미루는 김 원장의 미안함을 활기찬 목소리로 거뜬히 받아들였고, 한 달이 지난 오늘에야 만남이 이루어졌다. 나는 짧은 미소로 답하고 곧바로 인터뷰 주제를 꺼냈다.
스몰 토크거리로 좋은 신혼여행지의 날씨이야기조차도 하지 않았다. 여행지의 감상 같은 '가벼운 소동'들이 사라진 심리적 진공 상태였다.
“황혼 이혼은 보통 어떤 계기로 오나요?”
“사건이 있다기보다 10년, 20년 이상을 참다가 오는 경우가 많죠.”
무슨 말인지 알기가 어려웠다. 아직 그 나이를 살아보지 않은 내게 황혼과 이혼이라는 조합은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잠재 지문 같았다.
“뭘 참다가 오는 거죠?”
“... 어느 순간 깨닫는 겁니다. 자신의 삶에서 가장 소중했던 무언가가 사라졌다는 걸요.”
사건의 단서를 발견한 형사처럼 나는 펜을 멈추고 ‘사라졌다’는 말을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그리고 볼펜 끝으로 꾹 눌러 새기는 날카로운 압력으로 한 자 한 자 적었다. 나는 이내 펜을 고쳐 쥐고 김 원장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탯줄을 끊어내지 못한 어른이 생각보다 많아요. 결혼을 하면 자식을 돌보듯 서로에게 보호자가 되어야 하는데….”
‘탯줄’에서 이어진 ‘보호자’라는 무심한 단어가 내 가슴 어디쯤을 건드리는 순간, 그다음 말이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저녁은 먹었어? 집에 반찬은 남았니?”
나의 엄마는 곧잘 전화를 걸어 밥을 먹었는지 확인했다. 따로 살기 시작한 다 큰 여자를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이라 생각했다.
“먹었지. 아주 잘 먹었어요”
친절하지도 않은 말투로 서둘러 끊고 싶은 마음이 전달되는 대답이었다.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시간을 보니 오후 7시 35분이라는 숫자가 남편이 된 그를 떠올리게 했다.
[저녁 먹었지? 나 야근인 거 알지?]
저녁 시간이 지났을 것 같다는 생각에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영업부인 그에게 접대는 일상이었지만, 반듯하고 정중한 그에게 접대라는 단어는 늘 어울리지 않는 옷 같았다. 원고를 정리하고 사무실을 나온 시간은 11시가 넘었다. 웬일인지 도로는 텅 비어 있었다. 정지선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창문을 내리고 시원한 가을밤공기를 코 깊숙이 들이마셨다.
쿵—.
묵직하고 거대한 충격이 내 등을 사정없이 밀어붙였다. 고개가 꺾이며 시야가 하얗게 번졌다. 나의 시야에는 텅 빈 거리뿐이었고 고개를 돌려 뒤를 보니 하얗게 헤드라이트가 차 안을 비추고 있었다. 도로 위로 내려섰을 때, 주위엔 차가운 가로등 불빛뿐 도와줄 이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가장 먼저 단축번호 1번을 길게 눌렀다.
[통화 연결이 되지 않습니다. 다음에 다시...]
기계적인 안내음은 나를 밀어내듯 차가웠다. 두 번, 세 번. 경찰이 오고, 보험사가 사고를 접수하고, 견인차가 차를 끌고 어둠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그의 전화는 오지 않았다. 나는 지나가는 택시에 몸을 실었다.
뒷좌석의 깊은 어둠 속으로 몸을 깊게 묻은 채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나의 안녕을 물어줄 목소리가 이 세상에 없다는 서늘한 자각. 그 공허함이 너무 거대해서, 나는 분노보다 먼저 막막한 정적이 찾아왔다. 택시 창밖으로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불빛들이 낯설었다. 보호자가 사라진 현장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어둠 속에 섞여 내 존재를 지워버리는 것뿐이었다.
집 앞에 도착할 즈음에서야 손바닥 안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화면에 그의 이름이 떠 있었다.
“전화했었네?”
남자의 첫마디는 부재중 전화에 대한 기계적인 확인, 딱 그 정도의 온도였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격식을 차리듯 예의 있게 대하는 특유의 친절하고 정중한 목소리. 나는 마른 입술을 떼어 짧게 뱉었다.
“사고 났었어.”
그는 짧은 시간 말이 없었다. 수화기 너머의 낮은 숨소리뿐. 그리고 접대 장소의 소란스러운 웃음소리가 아주 멀게 섞여 들었다. 침묵이 이어지는 동안 나는 그가 전화 속 건너편에서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가늠해 보려 애썼다. 1초, 2초, 3초. 그 짧은 정적 끝에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고?”
“… 지금은 집 앞이야. 차는 견인됐어.”
“아……. 그래. 잘 처리한 거지?”
나는 ‘응’이라는 짧은 대답으로 전화를 끊었다. '잘 처리했다'는 건 그에게 무슨 뜻일까. 사고 이후 일련의 과정에 행정적 오류가 없었느냐는 확인일 뿐이었다. 어두운 텅 빈 집에 불을 밝히고 집 안을 둘러봤다.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서 몸을 뉘일 자리를 찾는 사람처럼 서성였다. 그날은 그렇게 혼자 잠들었다.
아침은 의외로 가벼웠다. 어제의 사고와 감정의 방향을 잃었던 것을 잊을 만큼 괜찮았다.
그 일로 상대를 비난하고 싶지 않았다. 대신 나는 평범한 하루를 성실히 살아냄으로써 어제의 낯선 감정을 잊으려 애썼다.
그리고 집으로 향하는 퇴근길에 나 스스로에게 말을 걸었다.
‘말하지 않는 정보는 전달되지 않고 나는 남자에게 감정의 정보를 주지 않았잖아.
그리고 앞으로도 솔직한 감정을 말하는 게 좋겠어’라며 다짐이 아닌 기준을 정해 보기로 했다.
내 안의 불편함을 가라앉히고 그의 사정을 먼저 가늠해 보려던 노력은, 성인 남녀가 만든 가정을 함께 만들어 가고 싶다는 나만의 간절한 방식이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된장찌개를 식탁 한가운데 놓으며, 침묵 속에 갇힌 진심을 꺼내어 솔직히 말해보겠다는 용기가 일상의 가면을 뚫고 나왔다.
"김치 맛있지?"
남편은 젓가락질을 멈추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라도 들고 눈을 맞췄다면 내 입술 뒤에 고여 있었던 진짜 하고 싶은 말이라는 정보가 자연스럽게 이어졌을지도 모른다.
나는 된장찌개를 한 술 뜨고는 숨을 들이마신 뒤 입을 열었다.
"어제 사고 났을 때 말이야..."
나의 말은 남편의 정수리에 꽂히고 있었다. 정적이 흘렀다.
숟가락을 내려놓고 ‘말을 할 땐 얼굴을 봐’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고작 숟가락만 내려놓고 앞에 앉아 있는 남자의 젓가락에 시선이 두었다.
달그락거리는 젓가락 소리가 거실의 정적을 날카롭게 긁었다.
“나… 사고는 처음이라 정말 당황했었어.”
고개를 들지 않고 시선을 반찬 그릇에 둔 남자를 카메라 고정샷처럼 지켜보고 있었다.
또다시 침묵을 두고서야 그는 짧게 내뱉었다.
“응.”
그게 다였다. 가슴 밑바닥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치미는 것을 느꼈다.
“걱정은 안 됐어?.”
“...”
“걱정은 안 됐냐고?”
“... 접대 중이었어”
남자가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그의 눈은 ‘나는 접대 중이었다’라는 사실을 전달하는 데 급급한 사람의 눈빛이었다.
그의 시선이 마주쳤을 때, 나는 오히려 그 투명한 눈빛에 숨이 막혔다.
“알아, 접대인 거. 그래도… 괜찮은지. 무슨 일이 생겼나 걱정 정도는 할 수 있잖아? 사고부터 집에 와서 잠들 때까지, 아니 아침까지 나를 돌봐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그야말로 마음의 소리가 입 밖으로 정보가 아닌 상태로 흩어지고 있었다.
남자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탁 소리조차 나지 않게, 아주 천천히. 그는 마치 이해할 수 없는 외국어 문장을 해독하려는 사람처럼 미간을 아주 살짝 좁혔다.
“잘 처리했다며?”
질문이 아니었다. 그는 정말로 앞에 앉아 있는 여자가 왜 그런지를 모르는 표정이었다. 논리적으로 완결된 사건에 왜 감정이라는 변수가 추가되어야 하는지 도무지 계산되지 않는 듯했다. 의도나 의식을 갖지 않은 채 몸에 밴 그의 정중한 무심함이 나를 덮쳐왔다.
“당신은 내 남편 아니야?”
“…무슨 소리야? 잘 처리했고 다친 것도 아니고. 거기서 남편이 왜 나와?”
그의 시선이 내 눈에 머물렀지만, 그것은 관통하지 못하고 툭 튕겨 나갔다. 그는 나를 느끼지 않고 바라만 보고 있었다. 나는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한 채, 몸속의 기운이 속절없이 빠져나가는 무기력함 속으로 가라앉았다. 문득 24년 전 시드니의 눈부신 햇살 아래서 보았던 그의 정중한 침묵이 겹쳐 보였다.
그때의 그 고요함 속에 내가 읽어내지 못한 다른 무언가가 숨겨져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아주 옅은 의문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글. 사진 l 윤희오(hio)
식탁 위의 숨에 대해 이야기해 주세요.
다음 화, [제2장 : 일관성이라는 저주]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