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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마와 구름

꼭 잡아두는 방법

by 내복과 털양말

엄마는 혼낼 때 마그마처럼 무섭지만 안아줄 땐 구름처럼 포근해요. 엄마는 무지개처럼 예쁘고요, 있는 그대로도 예쁘고 화장해도 예뻐요. 엄마는......




아들에게,


매주 너에게 편지를 띄우면서 엄마는 여러 생각을 해. 네가 한 어린이의 아버지가 되었을 때 보면 좋겠다, 젊은 네가 세상에서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을 때 봐도 좋겠다, 스무 살이 되면 그해부터 매년 1년 치 편지를 보내도 좋겠다, 뭐, 생각이야 많지. 그런데 이 편지는 엄마를 위한 것이기도 해. 네 말을 다시 떠올려보고, 네 마음을 유추해 보고, 찰나의 행복이 공중에 흩어지지 않게 꼭 잡아두는 방법도 되더라.


어제 곤충채집을 하러 둘이 나선 날에 너는 차창 안으로 들이치는 뜨거운 햇빛을 받으며 마그마와 구름과 무지개를 계속 말했지. 운전 중만 아니었다면 얼른 휴대폰을 꺼내 녹음했을 텐데. 기억나는 대로 적어봐도 더 생각이 안 나서 어찌나 아쉬운지. 나도 너에게 많은 말을 건네는데 흘러가는 시간 속에 많은 말들을 잊게 되겠지. 엄마가 나름대로 애써서 잡아둘게. 작년엔 네가 엄마는 국화처럼 예쁘다고 말한 건 딱 적어놨어. 네 말을 아빠에게 전하니 아빠는 "엄마는 아들의 첫사랑이고 아들은 엄마의 끝사랑이라더니" 하면서 웃더라.


월요일이라 아까 사범님께 너의 이번 주 스케줄을 알려드렸어. 최근 몇 달 동안 계속 같은 요일에 같으니 사범님도 이미 짐작은 하셨겠지. 다만 네 마음이 태권도를 그만두는 쪽으로 잡혔다는 건 아마 모르고 계실 거야. 너는 다음 띠까지만 하고 그만하겠다고 결심을 굳혔어. 운동 자체를 그만두고 싶어 했지만 그건 엄마가 안 된다고 딱 잘랐지. 체력은 모든 것의 기본이고, 네가 요즘 쑥쑥 자라고 튼튼해지는 것도 다 운동이 쌓여서 그런 거라고. 다른 운동으로 바꾸면 바꿨지 운동을 그냥 그만두는 건 안 되는 일이고, 박태환 선수도 어릴 때 너무 골골대서 그 선수 어머니가 운동시키려고 수영장 보냈던 거라며 어디선가 읽었던 인터뷰 기사까지 언급했지. 엄마는 메달이나 그런 건 기대하지 않아. 하지만 건강은 꼭 챙겨야 하잖아. 그러니까 넌 종목을 바꾸겠다고 했지. 춤추는 걸 좋아하니까 각종 무용 영상도 보여주고, 최근에 계곡에 가서 개헤엄 치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던 모습이 생각나서 어린이 수영 영상도 보여줬지. 그랬더니 너는 수영을 하겠다고 했어. 사실 엄마는 네게 양궁도 권해보고 싶었는데, 우리 지역에서는 전통 활쏘기는 배울 수 있을 것 같지만 일단 초등생 이상부터 교실이 있는 것 같고 우리 집이랑 거리도 좀 있어서 네게 말해보진 않았어. 무엇보다 엄마의 사심 채우기 같기도 해서, 그런 건 안 하려고. 엄마가 관심 있는 건 엄마가 해결해야지 너한테 바랄 건 아니니까.


태권도도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기 때문에 더 권하지 않으려고. 1년 반동안 그만두고 싶은 마음 생길 때 잘 참았어. 그때그때 마음 솟는 대로 그만뒀다 시작했다 하지 않고 끈기라는 게 있어야 한다는 걸 알려주려고 바로바로 그만두지 못하게 한 거였어. 이제 좋은 수영교실 알아봐야지.



좋은 하루 보내자!



이따 만나.

사랑하는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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