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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무언가

점검할 겸

by 내복과 털양말

아들에게,


요즘 참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생각이 들 때쯤이면 꼭 무언가 일이 생겨. 넌 요즘 마음이 좀 힘든 것 같더구나. 엄마는 양육태도도 점검할 겸, 네 마음의 건강도 확인할 겸, 어린이상담센터에 다녀오게 되었지. 자존감의 형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어. 센터에선 네게 놀이선생님을 만난다고만 말하고 오라고 하더라. 너는 조금 어리둥절한 듯하더니만 잘 놀고 왔어. 생각보다 빨리 목소리도 커지고 신나게 조잘조잘 이야기하며 놀더라고. 넌 낯선 사람 앞에서는 긴장하고 입을 다무는 편이라 그렇게 빨리 신나게 이야기 나누는 소리가 들려서 조금 의외였어. 넌 그 시간이 좋았던지 다음에 또 놀러 가도 되냐고 물었지. 네겐 일일권만 끊었다고 답했지만, 엄마가 가서 결과를 들어보고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일일권이 될지 여러 번 가게 될지 알게 되겠지. 다행히 그 뒤로 일주일간 너는 쾌활하게 잘 지냈어.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엄만 조금 긴장되는 게 사실이야. 지금 엄마는 다른 생각이 아무것도 들지 않는구나. 그저 네 결과가 궁금할 뿐이야.


네 아랫니 두 개는 꽤 벌어져있어. 치과에 정기점검 다녀오니 단정할 수는 없지만 나중에 교정을 해야 할 수도 있다고 하네. 교정이야 필요하면 하면 되는 일이니 그것 때문에 걱정하진 않아.


오늘은 오랜만에 생물 고등어를 구워 먹었어. 생선코너 아저씨가 소금을 기가 막히게 쳐주셔서 적당히 짭짤하게 촉촉한 고등어구이를 먹을 수 있었지. 돌아서면 배고프다는 네가 조만간 또 얼마나 자랄지 엄마는 무척 기대돼. 유치원 선생님은 네가 이제 치킨에 대해 무심해졌다며 놀라셨어. 엄마도 놀랐지. 네 덕분에 나도 덩달아 치킨을 잊을만하면 먹으며 지냈는데 아주 조금 아쉽긴 하네.


넌 오늘 늦게 데리러 오라고 했지. 태권도도 안 가는 날이니 느긋하게 놀렴. 장마전선이 벌써 북쪽으로 이동했다는 기사를 본 것 같은데, 밖에서 노는 건 적당히 했으면 싶구나.




잘 다녀올게.

사랑해.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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