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뒤 잴 것 없더구나
아들에게,
넌 어제 흥미로운 말을 했어.
"이제 친구들에게 너무 베풀기만 하지 않을래요. 자기들은 나한테 베풀지 않는데, 나 보고는 쟤는 그냥 베푸는 녀석이네 하는 것 같아요."
상담 효과가 나타났다고 보기엔 너무나 이르지. 그냥 네가 자라나고 있고, 두 번의 놀이치료시간에서 긍정적인 요소가 있긴 있었겠지.
엄마는 네 말에 뛸 듯이 기뻤어. 네가 바로 말처럼 그렇게 행동하지 못할지라도 말이야. 그런 생각 자체가 생겨났다는 게 얼마나 기쁘던지. 동시에 아이의 성장을 묵묵히 믿고 기다려준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도 체감했지. 네 할머니는 어떻게 자식 셋을 키우시면서 바쁘게 일하시면서 그렇게 믿어주는 것까지 하신 건지, 늘 존경해 왔지만 새삼 더 존경스러워졌지.
난 내면이 불안정할 때가 많아서 그게 너에게까지 영향이 갈까 봐 노심초사하는 마음이 늘 깔려있어서 그런지 너의 말과 눈물이 정도가 심해보이자 당장 상담센터 예약을 하고 바로 놀이치료를 진행시켰어. 첫 상담에서는 나무도 그리고 너 자신도 그리고 이야기도 하고.. 한 주가 흘러 그 결과를 들은 나는 고통스러웠지만 그래도 빨리 진정했어. 어느 정도 예상하긴 했는데.. 생각보다 정도가 심했어. 그래도 빨리 진정한 이유는 내가 그 심리를 잘 알기 때문이기도 할 뿐만 아니라 네가 분명히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니까.
낮은 자존감과 높은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건 매우 지치는 일이야. 진이 빠지지. 그걸 엄마가 쓸데없이 잘 아니까, 어린 네 내면에 그런 그림이 새겨지는 걸 원하지 않았어. 기질적으로 엄마를 닮았으니 불안과 두려움 같은 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을 거야. 그게 필요이상으로 커진 상태에서 혹시나 굳어버리진 않을까 생각이 드니 앞뒤 잴 것 없더구나.
센터에선 아이들보다 주양육자가 더 큰 도움을 얻어간다며 감사를 표한 엄마 아빠가 많다고 했지. 나도 그렇게 되길 바라고 있어. 대기실에는 김붕년 교수의 책이 있어. 꼭 읽으려던 책이라 이번 주에도 엄마는 널 기다리며 그 책을 읽을 거야. 필요하다면 받아 적기도 하면서.
너와 내가 또 함께 자라나는 시간이 되길.
난 널 언제나 응원해. 언제나 지지해.
사랑해,
이따 만나.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