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하지 않게, 차근차근.
아들에게,
엄마는 불안을 숨기는 데 능숙하지 않아서 네가 어딘가 아프다고 하면, 혹은 네 말을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면 나도 모르게 너를 다그치게 돼. 제대로, 알아듣게 설명하라고 하면서 목소리가 커지고 표정이 무서워지지. 너는 그런 나를 보면서 무서워서 눈물이 터질 것 같지만 참을 때 짓는 얼굴을 하지. 엄마는 그 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내가 그때 심호흡이라도 하고 진정한 뒤에 입을 열었어야 하는데, 하고 후회하곤 해. 불안이란 게 그래. 나를 잡아먹다 못해 너까지 잡아먹지 못하게 하려고 그렇게 신경을 써도, 진정한 상태일 때는 괜찮다고 토닥여주기도 하고, 또 해보자고 격려해주기도 하는데. 내가 정신을 차리기 전에 불안이 나를 먹어버리면 꼭 네 앞에서 실수를 하지. 가끔씩 그래도 나름대로 괜찮은 엄마인 것 같아, 네게 잘해주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있어. 그런데 꼭 그럴 때면 무언가 가슴에 턱턱 걸리는 일이 생기지. 육아란 오만을 용납하지 않더라.
엄마는 네게 정말 이상적인 엄마가 되고 싶나 봐. 너그럽고 이해심 많고 사랑 많고 모든 걸 다 포용하는 그런 환상 속의 엄마가 되고 싶나 봐.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아서 맨날 반성하고 그러나 봐. 그런데도 너는 이따금 엄마에게 “좋은 엄마”라고 해주지. 고맙고, 미안하고, 가슴이 찡해져. 엄마는 현실 속의 흠 많은 보통 사람이라, 나 자신보다 나은 모습으로 네게 다가가려고 수면 아래에서 안간힘을 쓰고 있어. 나 때문에 겁에 질렸을 때 네 얼굴이 번쩍 생각나면 그냥 울기도 하고 그래. 네가 “머리가 찝찝해”라고 말했을 때도 사실은 네 머리가 아프다는 소리인 줄 알고 병원을 알아봐야 하는지 판단하려고 제대로 설명하라고 한 거였는데, 그때 네 표정도 생각나면 눈물 나지. 네 앞에서는 울지 않지만 난 사실 눈물이 많은 사람이거든.
이상이 높으면 안 좋아. 현실을 받아들여야지. 심호흡해야지. 급하지 않게, 차근차근. 써놓고 보니 아이를 키우는 것뿐 아니라 삶 전체에 해당되는 말들이구나. 손등에 적어놓기라도 할까 봐. 건강한 내면은 정말 중요한 거야. 엄마와는 다른 어른으로 자라줬으면 하는구나. 네가 없을 때 내가 겪어가는 순간들을 너는 겪지 않도록.
심호흡 많이 할게. 무슨 말이 튀어나갈 것 같으면 참고선 이 말이 맞는지 다시 생각해 볼게.
아, 아빠가 샌드백 샀대. 조만간 배송될 거야. 대결 놀이를 가장해서 늘 2인 1조로 편 먹고 너 하나를 공격한다는 네 유치원 “친구들”에게 더 매운 주먹을 알려줄 날이 오면 좋겠구나.
이따 만나.
사랑해.
너를 사랑하는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