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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마리 Apr 23. 2023

완벽한 하루

첫 여행지 러시아 - 블라디보스토크

러시아 첫날 일정

아무리 망설였던 발걸음일지라도 공항과 비행기가 주는 설렘은 어떠한 설렘과도 비교할 수 없다. 허리와 다리를 겨우 필수 있는 좁은 좌석에 앉아 나에게 해당된 반쪽짜리 창문을 통해 밖의 풍경을 보게 된다면, 그 풍경이 밝은 대낮이 아니라 빛나는 야경이라면 그 순간만큼은 온갖 근심걱정으로부터 해방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어쩌면 사람들은 여행이라는 것이 마냥 즐겁고 행복한 일들만 있다고 확신할 수 없을지라도 그 찰나의 순간을 위해 떠나길 고대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도 짧은 순간이지만 비행이 주는 황홀한 풍경 속에 잠시 내게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안한 감정을 잊고 익숙했던 한국을 떠나 러시아로 향하고 있었다.     


나에게 평소 가지고 있던 러시아의 이미지 물으면  “불곰국? 시베리아? 푸틴?” 딱 여기까지였다. 정말 호감도 비호감도 없는 그냥 우리나라 위에 있는 추운 나라 그게 다였다. 첫 여행지로 러시아의 작은 도시인 블라디보스토크를 정한 것도 정말 단순하게 내가 여행을 시작하게 된 계기인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첫 출발지이니까, 그게 다였다. 그래서 블라디보스토크의 여행일 수도 2박 3일, 온전히 그 도시를 여행할 수 있는 날은 겨우 하루 (첫째 날은 밤에 도착해서 관광을 할 수 없었고 마지막 날은 시베리아 횡단열차 탑승 날이어서 온전하게 주어진 관광시간은 많아봤자 하루가 전부였다.)였다. 엄청난 기대를 가지고 정한 여행지가 아니라서 그런가 2시간 반 정도 되는 비행을 마치고  공항에 첫 발을 딛었을 때 나의 감상평은 “엥? 뭐야? 그냥 똑같은 인천 공항인데?” 이게 다였다. 도착한 시간이 밤이라 공항의 모든 상점도 문을 닫았고 그 넓은 공간에 사람도 없이 조용해 여행지의 활기참이 없이 더욱더 휑한 느낌이었다.      


놀랍게도 나는 첫 일정은 공항노숙이었다. 첫째 날부터 공항 노숙이라니, 처음부터 노숙을 결심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노숙을 결심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 늦은 밤(오전 12시 반 정도) 도착해서 시내까지 나가는 방법은 우버 같은 교통수단을 이용해야 하는데 그 밤에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판단했다.(지금 생각해 보면 픽업서비스 등 다른 여러 가지 방법도 있을 텐데 정보가 부족했다는 생각도 든다.) 두 번째 이유는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한 일인데도 어이가 없다. 그냥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나는 워낙에 어디에서도 머리만 대면 누가 업어 가도 모를 만큼 잠을 잘 자기도 하고 모름지기 배낭여행을 왔으면 공항노숙이라도 해봐야 되지 않겠나 라는 그냥 말도 안 되는 여행부심이었다.


여기에도 나름 규칙이 있었다. (언제 공항에서 노숙을 할지 모르니 알아두자 꿀 팁이다.) 공항에서 노숙하기 좋은 곳은 조용하고 편안하게 자려고 사람이 없는 곳을 선택하는 것보다 사람이 특히 보안요원이 정기적으로  다니는 곳 등 살짝 인적이 있는 곳을 추천한다. 여기에 의자가 두 개 이상 붙어 있는 곳이 있다면 더 좋다. 더불어 겨울이면 히터 여름이면 에어컨 하지만 너무 앞이어서 답답하고 추운 곳이 아니라  살짝 떨어져 적당한 온도가 유지되는 곳을 찾도록 하자. 혹시 모를 소매치기를 방지하기 위해 가방을 자물쇠를 채우고 베개 삼아 겉옷을 덮고 잠을 자면 호텔이 따로 없다. 그렇게 공항에서 배낭하나 들고 노숙하는 젊은 여행가 나 자신에 취해 잠이 들었다.(허세가 아주 가득가득하다.)      

고요했던 주위가 점점 큰 말소리로 채워지고 깜깜했던 주변이 점점 햇빛으로 인해 밝아짐에 따라 나도 눈이 떠졌다. 생각보다 잠을 잘 잤는지 피로도 많이 안 쌓였고 이로 인해 다음 일정에 피해가 주는 일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숙소와 공항 노숙 하나를 고른다면 망설임 없이 숙소에서 편안하게 잠을 자는 것을 택하겠다. 숙소에서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으면 그냥 그렇게 하자. 괜히 어른들이 잠은 집에서 자야 한다고 했던 것이 아니다. 부모님 말씀을 잘 듣자. 정말 기억에 많이 남고 잊지 못할 추억이 되지만 정말 꼭 필요한 경우에 하자. 혹시나 이 글을 보고 공항노숙을 생각했다면 지양하는 것을 추천한다.  


찌뿌둥한 몸으로 짐을 챙기면서 생각했다. 더 이상 두려워하거나 겁을 먹어서는 안 된다. 한국처럼 일이 생기면 당장 달려와 줄 수 있는 부모님도 위로해 주는 친구도 없다. 겁먹지 말고 여기서 나가자 이렇게 나를 토닥이면서 막상 나가기 걱정했던 것들이 무색하게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숙소와 관광지가 있는 시내로 나가는 기차표를 구매해 기차를 타면서 낯설지만 평화로운 풍경을 구경하니 너무나도 행복했다. 이것이 바로 여행이구나 하면서 내가 왜 여태까지 망설였을까? 생각보다 별거 아닌데 하고 말이다.

그렇게 숙소에 도착해 체크인을 하고 유명관광지인 해양공원과 아르바트거리를 구경했다. 삼시세끼 잘 챙겨 먹고 디저트 두 개씩 아주 야무지게 먹으며 말이다. 너무나도 완벽했다. 이제 나의 일정은 블라디보스토크의 하이라이트 독수리 전망대에서 야경구경만이 남아있었다.


이때까지 나는 몰랐다. 이 아름다운 야경이 나에게 얼마나 큰 시련을 줄지, 모든 것이 순조롭다고 여행 별거 아니라고 자신만만하게 외치던 나를 얼마나 작고 초라하게 만들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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