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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마리 Apr 23. 2023

역시 매운맛 러시아

교양인이 될 테야

블라디보스토크 독수리 전망대


나의 여행계획은 허술했다. 여기서 말한 허술하지 않고 완벽한 계획은 포토 스팟, 맛 집 등 이 어디인지를 아는 것이 아니다. 현지상황을 이해하고 대비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막차 시간은 언제인지, 이용하는 화폐는 무엇인지, 조심해야 하는 것(예를 들면 호주에서 ‘쿼카’라는 아주 귀엽고 사람들에게 친근한 동물이 사는데 이 동물은 멸종위기종이라 만지면 벌금이 20만 원 정도란다. 이 쿼카의 별명은 돌아다니는 벌금이다.)

은 무엇인지 말이다. 현재 내가 있는 곳은 한국이 아니다. 당연히 내가 나고 자란 곳과는 많은 것이 다른것인데 나는 그것을 경시했다. 그 사소함이 나에게 얼마나 큰 사건을 불러일으킬지 모르고 말이다.      


오늘의  마지막 일정인 독수리 전망대로 덜컹거리는 승합 버스를 타고 향했다. 신나게 야경구경을 하고 사진도 찍고 완벽했다. 그렇게 더 머물며 눈에 담고 싶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숙소로 향하기 위해 버스를 찾았고 당황스럽게도 막차가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니 지금 10시인데?? 무슨 일이야 10시에 버스가 끊기다니 나는 어떡하지?’ 정말 상상도 못 한 전개였다. 그렇지만 내가 있는 곳은 한국이 아니었다. 러시아였고 조그마한 동네였다. 그곳에서는 10시에 버스가 안 다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두근거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선책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자 뭐 버스가 없으면 우버가 있잖아.’ 하고 말이다. 하지만 불행은 한꺼번에 온다고 했던가 그날따라 우버가 왜 이리 안 잡히는지..      

점점 시간은 밤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으며 주위에 사람들이 사라지고 나는 겁을 먹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 한 택시기사가 나타났고 현금이 넉넉하지 않아 카드결제 밖에 할 수 없어 거절 의사를 밝혔지만 카드가 가능하다는 말에, 점점 어둠이 몰려와 이곳을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불안함에 미심쩍었지만 택시에 탑승했다. 이렇게 불안에 쫓겨 한 선택이 나를 수령으로 더 이끄는지도 모르고 말이다.      


출발하자마자 그가 옳은 길을 가고 있는가 돈을 더 받기 위해 돌아가는 것은 아닌가 확인하기 위해서 구글 맵을 켰고 불행한 예감은 왜 틀리지 않는지 맵에서 안내해 주는 길을 벗어나 점점 다른 길로 가기 시작했다.

나는 상황에 대해 물었고 말이 통하지 않았다. 아니 내가 무슨 거창한 영어를 한 것이 아니다. 나도 영어 잘 못한다. 러시아어 번역기도 통하지 않았다. 택시는 점점 어두운 곳을 향해 한 곳에 멈춰 섰는데 주유소였다. 황당했다. 당황해하는 나를 두고 태연하게 주유를 끝낸 그는 다시 주행을 했고 atm기기 앞에 또 차를 세웠다. 그리고 하는 말 “핸드폰을 차에 두고 현금을 뽑아와” 그리고 15000 루블을 요구했다.(한국 돈을 환산하면 대략 2만 오천 원 정도다. 그 정도면 시내에서 공항까지 우버를 타고 갈 수 있었고, 독수리 전망대에서 숙소를 왕복 2번 할 수 있었다.)      


그가 유창한 영어를 할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음과 동시에 어이가 없었다. 카드가 된다고 친절하게 말한 그는 다른 사람이었나? 핸드폰을 두고 가라니 핸드폰을 가지고 도망가면? 나는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핸드폰도 없이 버려져 지금보다도 더 최악의 상황에 빠지는 것이 아닌가? 그 당시에 무슨 용기가 났는지 모르겠지만 호랑이에게 잡혀가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된다는 K-마인드로 "체크카드라 카드에 돈이 없다. 숙소에 현금이 있으니 숙소에 데려다주면 현금을 줄게 “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선심쓰듯이 숙소에 데려다 주겠다고 말을 하면서 돈을 더 요구했다. 무려 500 루블을 더한 2000 루블을 말이다.      


그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고 나는 최악들 중 최선의 선택을 해야 했다. 결국 나는 2000 루블을 지급하겠다고 했다. 꼭 숙소에 데려가 달라는 당부와 함께 정말 말도 안 되는 금액인지도 알았지만 나의 안전으로 거래를 할 강심장이 나에게는 없었다. 돈보다는 안전이 우선이었다.      

멈췄던 택시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는 동안 별생각이 다 들었다. 여기서 조금만 이상한 행동을 보이면 택시에서 뛰어내려야 하나. 러시아 경찰번호는 어떻게 되지?  ‘한국에서 여행 온 20대 김 모 씨 여행 출발 하루 만에 러시아에서 납치당해’라는 기사가 나오는 것까지 생각하며 거의 유언장을 썼다. 지금은 웃으면서 말할 수 있는 추억이지만 (사실 지금도 그가 아이스크림을 먹기 전에 바닥에 떨어트리고, 과자봉지를 뜯으려고 하는데 4모퉁이가 다 안 뜯겼으면 좋겠다. 딱 그 정도로만 그에게 돌아갔으면. 나는 카르마의 법칙을 믿는다.)

불행 중 다행으로 숙소에 무사히 도착했고 기사의 감시를 받으며 숙소로 향했다. 돈을 챙기는 순간에도 ‘아 그냥 괘씸한데 주지 마?’라는 생각을 잠깐 했지만 나는 쫄보다. 더욱이  그 사람이 앙심을 품고 해코지를 한다면 당해낼 제간이 없다. 결국 돈을 건넸고 그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좋은 시간 보내”라는 말과 함께 미소를 지으며 유유히 사라졌다.      


일이 마무리되니 긴장이 풀려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고 자책을 하기 시작했다. 너무 들떠 기본적인 것도 체크하지 못한 내 탓이다.부터 시작해 왜 그 시간에도 버스가 당연히 있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을 하였지? 좋은 풍경과 야경에 홀려버린 것일까? 숙소에 도착해서 데스크에 도움을 청할 걸 그랬나? 그랬다면 그 사람을 처벌할 수 있었을까? 정말 자책을 넘어선 분노, 억울 등 휘몰아치는 감정들을 억누를 수 가없었다.     

이런 일을 당할 때 옆에 친구와 가족이라도 있었으면 같이 술을 먹으면서 수다를 떨면서 잊지 못할 안주거리가 생겼다 하며 흘려보낼 수도 있었을 텐데, 지금이라도 전화할까?라는 생각까지 했지만 오지도 못하고 걱정을 많이 하겠지? 하면서 이 생각은 접었다.      

이렇게 혼자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하다 보니 점점 심해져 그 당시 거의 데스노트를 쓰고 있었다. 테이큰의 리암 니슨 수준처럼.. l'll find you, and i'll kill you.

     

그러던 와중 대뜸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기차를 타기 위해  짐도 싸고 준비를 해야 하는데 이 감정에 치여 아무것도 하지 못하면 또 오늘처럼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무사하기만을 바라지 않았나? 무사하였으니 되었고 내가 당한 일은 첫날부터 너무 들뜬 나에게 조금은 더 차분하고 꼼꼼해 지라는 가르침 같았다. 생각을 바꾸니 지나왔던 일들이 아닌 앞으로 펼쳐질 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시간이 한참 흘러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원작자가 쓴 [페터 비에리의 교양 수업]에 "우리는 언제 어디선가 주워들은 조각난 말과 생각의 찌꺼기들을 뒤풀이하는 자괴감의 일상에서 벗어나, 큰 관심과 넓은 시야로 세상과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 즉 교양인이 된다."     

이 글을 보는 순간 그때의 선택이 옳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만약 내가 그 당시 계속해 그 기사가 준 조각난 말과 생각의 찌꺼기들을 뒤풀이해 자괴감에 빠졌다면 나한테 주어진 시베리아를 놓쳤을 거라고. 그렇다면 자기 자신에 대해 조금이라도 이야기할 수 있는 지금의 나도 없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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