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_36. 영화 <4월 이야기>
1.
영화 <4월 이야기>를 보면 주인공 우즈키가 카레를 만드는 장면이 나온다. 요리에 서툰 우즈키가 능숙하게 카레를 만들리 만무했고 역시나 혼자 먹을 정도를 훨씬 넘긴 양의 카레가 만들어졌다. 옆집 이웃과 카레를 나눠먹고자 하지만, 생판 모르는 옆집 사람이 건네주는 카레를 흔쾌히 먹을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결국 우즈키는 꽉 막히는 카레를 물과 함께 혼자 넘긴다. 이렇듯 카레는 혼자 먹기 참 힘든 음식이다.
2.
영화 <4월 이야기>의 1시간 남짓한 이야기는 갓 시작한 스무 살의 봄이 가진 서투름과 어색함, 풋풋함과 생그러움을 담고 있다. 주인공의 카레 이야기는 그중 서투름에 대한 이야기다. 이제 막 혼자 살기 시작한 스무 살의 서투름. 식사와 서투름, 두 단어의 조합은 사실 그렇게까지 익숙한 조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식사는 1년 365일, 그것도 하루 세 번씩이나 이루어지는 생존의 가장 기본적인 행위인데, 어떻게 서투를 수가 있는지. 이제 내 인생을 책임져야 하는 성인이 되었음에도 그 식사조차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우습지 않은가.
하지만 혼자 살아본 경험이 단 한 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그 서투름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즈키와 같이 당장의 식사거리를 해결하는 것도 능숙하지 않았던 그 시절을 떠올릴 것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나 먹을 것만 만들면 되는 건데 그게 뭐가 그렇게 힘들었던 건지. 비단 식사뿐만이 아니다. 스무 살은 내가 여태까지 당연하게 하고 있던 그 모든 행동들을 익숙하게 해내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시기다. 그리고 그 서투름이 사라진다는 것은 어찌 보면 내가 성장하는 과정과도 맥이 같을 것이다.
3.
서투르다는 것은 어리다는 것이고, 어리다는 것은 풋풋하다는 것이며 이는 곧 청춘이라는 이미지로 연장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에는 '처음'이라는 단어가 관통한다. <4월 이야기>는 결국 처음에 대한 이야기다. 그를 좋아해 대학까지 쫓아왔지만 그저 뒤에서 쳐다볼 뿐 제대로 전하지 못하고 몇 번이나 삼켜버린 몇 마디 말도, 동기 따라 엉겁결에 따라갔지만 누가 봐도 해본 적 없는 동작으로 헛손질하는 낚시도, 그리고 앞서 이야기 한 혼자 먹을 분량을 몽땅 넘겨버린 카레도 그 모든 것은 결국 우즈키의 처음을, 그리고 누군가의 처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처음의 서투름은 누군가와의 관계로 채워진다. 결국 그 모든 처음은 첫사랑, 대학 동기, 옆집 이웃, 사실 살면서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사람이었거나, 제대로 된 대화 한번 나눠본 적 없는 누군가와 함께한다. 그리고 다들 알다시피, 스무 살은 인생을 통틀어도 그 어느 때보다 인간관계가 폭발적으로 확장되는 시기다.
4.
식사 제안을 거절했던 옆집 이웃은 늦게나마 우즈키를 다시 찾아온다. 이왕 만든 카레를 버릴 수는 없지 않겠냐는 약간의 민망함 섞인 대화와 함께 카레를 나눠 먹는다. 이렇듯, 카레는 혼자 먹기 참 힘든 음식이다. 동시에, 함께 먹기에도 참 좋은 음식이다.
5.
며칠 전의 일이다. 알람이 울리기 한두 시간 전쯤 무심코 눈이 떠졌다. 비가 오고 있었다. 영화 <4월 이야기>처럼. 아쉽게도 극 중 배경과 같은 봄은 아니었지만,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시원한 빗소리였다. 그 새벽의 빗소리가 나에게 어린 시절의 그 서투름을 상기시켜 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문득 카레가 먹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비록 처음이라는 것이 익숙한 나이는 이미 지났을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조만간 카레를 만들어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