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_40.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1.
영화는 남들과는 조금 다른 아웃사이더 두 주인공의 우정을 다루고 있다. 특유의 자유분방함으로 늘 가십이 뒤따르는 재희, 그리고 남들과 조금 다른 성적지향을 가진 흥수. 그렇다, 어쩌면 두 사람은 일반적인 사회 규범 안에 제대로 녹아들지 못한 사람들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뜻밖의 사건을 시작으로 두 사람은 서로만이 이해할 수 있는 어떤 공통점들을 찾아낸다. 그렇게 두 사람은 둘도 없는 단짝이 되어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조금 특별한 20대를 꾸려나가기 시작한다.
2.
'김고은 배우가 주연이다'라는 것과 두 주인공이 익살스러운 포즈를 취하고 있는 포스터 외에는 아무 사전 정보 없이 관람했기 때문에 예상외의 전개에 다소 당황한 감이 없잖아 있다. 단순한 로맨틱 코미디쯤으로 생각하고 관에 들어갔는데, 그것과는 거리가 먼 꽤 실존적인 주제를 (얕게나마) 얘기하고 있었으며 설정상 두 사람의 로맨스 또한 아예 존재할 수 없었다.
영화는 시작과 동시에 흥수의 성적 지향을 드러낸다. 딱히 반전도 아니고 영화 진행에 있어 필수적인 설정임에도 영화 홍보 시 이를 의도적으로 지워낸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포스터도, 예고편도, 완전히 설정을 오해하도록 유도한다. 물론 원작이 존재하기 때문에 어떤 내용으로 진행될지 알고 있었던 사람들 또한 많겠지만 아마 나와 같이 사전 정보 없이 로맨틱 코미디를 생각하고 갔던 사람들은 의외의 전개에 놀랐을 것이다. 이렇게까지 지워낼 필요가 있었는지.
3.
언젠가 헤테로 주인공과 동성애자 친구 사이의 판타지를 그린 설정들이 유행했을 때가 있다. <대도시의 사랑법> 또한 그 철 지난 판타지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그럼에도 한 가지 고무적인 것은 최근 한국 상업영화 중 성소수자의 삶을 가장 본격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다만, 아직 열려있지 못한 사회 분위기를 보여주기 위하여 힘을 좀 많이 준 듯한 장면들이 몇몇 보인다. 대표적으로 학교 축제 성소수자 부스 장면이 그렇다. 개개인이 성소수자 관련 활동에 찾아와 물리적 폭력을 부리는 일이 물론 있기야 하겠지만 해당 작품 내에선 다소 작위적인 장면으로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성소수자의 삶은 흥수의 관점에서 나름 다양하게 보여주려고 노력한 것 같으나, 재희의 관점에서 보는 사회는 단순히 이분법적으로 그려져 풍부하지 않게 보인다. 비판하고자 하는 점들은 알겠으나 전달 방식이 다소 투박하다는 의미다.
4.
사실 의미 있는 주제를 제외하면 그렇게까지 새로울 것은 없는 영화다. 특별한 도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작위적인 장면들 또한 종종 눈에 보인다. 영화의 전반적인 준수함을 몇몇 장면들이 깎아내리는 것이 아까울 뿐이다.
5.
가수 아이유의 노래 중 'love wins all'이라는 곡이 있다. 음률, 그 음률에 붙은 가사, 이를 읊는 목소리, 그리고 그 외 여러 방면에서 마음에 드는 부분이야 차고 넘치지만, 내가 곡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정작 노래가 아니라 그 밖에서 나온다. 가수는 이 노래의 소개글을 자필로 써서 공개했다. 그중 한 구절이다. '하지만 직접 겪어본 바로 미움은 기세가 좋은 순간에서조차 늘 혼자다. 반면에 도망치고 부서지고 저물어가면서도 사랑은 지독히 함께다. 사랑에게는 충분히 승산이 있다.' 나에게 이 노래가 가장 크게 다가왔던 순간은 노래를 들을 때가 아닌, '사랑에게는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이 소개글을 읽을 때였다. 그렇다. 사랑에게는 충분히 승산이 있다. 그것의 형태가 어떠하든, 그것의 대상이 누구이든.
모든 사랑이 로맨스나 성적인 텐션을 수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면에서 우정은 사랑의 여러 카테고리 중 하나이며, 재희와 흥수 또한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는 관계이다. 남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나'라는 사람이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흉보고 깔보고 욕하더라도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내가 나로서 살아가는 한, 그 존재에게는 충분히 승산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