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_33. 영화 <좀비딸>
1.
여느 장르가 그러하듯 좀비 영화 또한 시간이 흐르며 다양한 변주를 주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어느 순간부터 좀비를 단순히 공포의 대상쯤이 아니라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는 설정들이 등장하곤 했다. 영화 <새벽의 황당한 저주>를 보면 창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묶어 놨을 뿐, 좀비가 된 친구를 평소와 같이 대하며 함께 게임을 즐긴다. 영화 <웜 바디스>는 여기서 더 나아간다. 니콜라스 홀트가 분한 좀비 'R'은 아예 감정을 가지고 인간과 본격적으로 사랑에 빠진다. 좀비라는 소재 자체가 죽음 그 자체를 움직이게 만든 것이다 보니, 영화가 살육의 굴레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과감하게 살육이 아닌 감정을 불어넣는 것으로 아예 노선을 크게 돌린다면 감정적 효과가 더 커지기도 한다. 영화 <좀비딸>이 노린 것도 또한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2.
사실 영화 자체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그렇게까지 신선한 편은 아니다. 소재 자체는 흥미로우나 이를 풀어내는 작법은 여느 가족영화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평이한 방식이다. 연출을 맡은 필감성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 영화 <인질>이었던 점을 생각한다면 전작에서 느꼈던 재치와 속도감을 찾아보기 어려워 실망했을 수도 있다. 다만, 가족 코미디 특성상 액션, 스릴러 장르에 어울릴 법한 연출을 그대로 적용하긴 어려웠을 것이라 감안되는 편이다.
3.
'좀비가 된 딸을 살리기 위한 아빠의 고군분투'라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이상 신파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영화 중반 본가 방문 장면, 영화 말미 창고 장면 등에서 감정을 터뜨릴 만한 연출들을 넣은 것은 사실이나, 그럼에도 영화는 무거운 분위기를 최대한 자제하고 가벼운 코미디의 흐름을 따라가기 위해 최대한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 말미 창고에서 정환이 수아에게 건네는 대사는 충분히 짐작 가능하긴 하지만 굳이 덧붙이지 않아도 될 대사라고 느껴져 감정을 고조시키기 위한 사족처럼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슬픈 장면이 있다는 것만으로, 혹은 감정을 다소 과잉시키는 부분이 있다는 것만으로 신파라고 비판하는 것은 과한 처사로 느껴진다.
4.
아쉬운 점은 영화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단순히 나열되는 정도로 그친다. 극 중 큰 사건들이 크게 조응되기보다는 따로 쓰인 내용을 느슨하게 연결한 느낌이 드는데, 이는 꽤 긴 분량을 가진 만화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가 많이 보이는 단점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챕터를 본격적으로 나누는 긴 호흡의 스토리를 2시간 남짓한 한 편의 작품으로 묶어내다 보면 이런 문제가 눈에 띌 수 있다고 생각은 한다. 하지만 동시에 각 에피소드들 간의 유기성을 높이고, 말 그대로 '한 이야기'처럼 엮어내는 것은 연출과 각본의 역량이기도 하다. 관객들이 구태여 여러 개로 내눠진 챕터 구조를 가진 긴 분량의 원작을 감안할 의무는 없다.
5.
영화가 가진 전반적인 톤은 당연하게도 좀비가 아닌 가족에 맞춰져 있다. 무대를 도심과 떨어진 '은봉리'라는 어촌 마을로 삼은 것은 이러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단순히 '격리된 곳'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닌, 전반적인 소품과 색감이 따스한 계절감을 직접 안겨준다. 이는 영화가 보여주는 가족 사랑을 시각적으로도 함께 묘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6.
결국 영화를 살리는 것은 배우다. 2019년 영화 <엑시트>, 2024년 영화 <파일럿>에 이어 이번 2025년 영화 <좀비딸>까지 조정석 배우의 코미디 영화는 이제 관객들에게 일종의 장르로 확실히 각인된 것 같다. 이번 영화에서 또한 특유의 능청스러운 표정 연기를 보여주며 관객들이 기대한 바를 충분히 만족시켜 준다. 이정은 배우는 나잇대에 맞지 않게 훨씬 더 고령의 캐릭터를 연기하여 조금 우려스러운 부분도 있었으나, 약간의 분장과 자연스러운 연기로 여러 걱정들을 말끔하게 씻어준다. 두 배우뿐만 아니라 출연한 대부분의 배우들(심지어 고양이까지!)이 큰 구멍 없이 전체적으로 잘 어우러진다.
7.
영화 <좀비딸>은 400만이 가까운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이며 2025년 최고 관객수를 기록하고 있다. 어쩌면 많은 관객들은 스케일 크게 때려 부수는 영화보다는 이렇게 작지만 따뜻한 영화들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조금 더 스케일 크고, 조금 더 돈을 많이 들인 블록버스터 영화들만이 극장에 들어서는 요즘, 어쩌면 이런 영화들의 흥행은 극장 시장의 수요 조사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