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_43. 영화 <웨폰>
1.
우연히 보게 된 예고편의 이미지들이 굉장히 강렬해서 꽤 흥미로운 영화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감독 전작 <바바리안>을 미처 보진 못했지만 꽤 크게 호평받았던 작품이라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 크게 관심이 갔던 것도 사실이다. 결론을 먼저 이야기하자면 예상대로 꽤 그럴듯한 작품이 나왔다. 다만, 처음 기대했던 것은 강렬한 이미지였지만 막상 영화를 보고 기억에 남은 것은 이미지가 아닌 이미지를 풀어가는 스토리 텔링 형식과 그 속에 담긴 메시지였다.
2.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을 먼저 언급할 수밖에 없다. 사실 전반적인 상황들을 이어 붙여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놓고 보면 허점들이 속속들이 보인다. 중요한 것은 방식이다. 영화는 학생 17명의 실종이라는 사건을 6명의 각기 다른 등장인물의 입장에서 서술하는 방식을 택하는데, 이 과정을 풀어가는 논리가 꽤 준수하다.
단순히 사건을 대하는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는 인물들 뿐만 아니라 사건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주변인까지 사건에 휘말리기 때문에 각 캐릭터들의 이야기는 시간적, 공간적 시작점이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면 번잡스럽게 느껴졌을 수 있지만, 본 작품은 이를 효과적으로 풀어낸다. 앞선 이야기의 어떤 지점에서 여러 입장들이 어떻게 충돌하는지, 혹은 편승하는지 그 마찰 지점을 꽤 현명하게 설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사건을 여러 개로 분절시키고, 다시 하나로 직조하는 과정이 좋았다는 뜻이다. 사실 서술 방식에 대한 큰 기대를 하고 감상한 것은 아니었으나, 예상외로 일정 수준 이상의 쾌감을 선사하여 꽤 즐겁게 감상하였다.
3.
다만, 잘 이끌어가던 영화의 호흡은 중반을 넘어가며 한 풀 꺾이게 된다. 냉정한 이야기를 먼저 하자면 아이들의 실종은 사실 이 영화의 단초 역할만 할 뿐 그 이후에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 그것에서 오는 미스터리를 기대했다면 그다지 깊은 인상을 받지는 못할 것이다.
또한 배후가 밝혀지는 순간도 문제다. 문화적 영향 탓일까, 개인적으로 서양 오컬트 장르에서 공포를 크게 느끼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차치하더라도 지나치게 단순하며, 앞서 잘 구축해 놓은 감정선을 그대로 수용하지 못한다. 결국 사람을 조종하여 일종의 무기로 사용하는 주술을 사용했다는 것인데, 시각적으로 단순하려면 심적 긴장감을 조성하고, 심적으로 단순하기 위해선 시각적으로나마 일종의 쾌감을 선사해야 하지만 둘 중 어떤 방향으로든 무언가 느끼기에는 지나치게 단순하다.
4.
사실 <웨폰>은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내포하고 있는 여러 암시들이 더 중요한 영화다. 제목부터 강렬하게 '무기들'이라고 정했으니 관객들 입장에서는 이 영화가 의미하는 무기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것이 응당 진행해야 할 수순이다.
아무래도 많이 보급된 총이다 보니 그만큼 총기 난사를 비롯한 범죄에도 자주 사용되는 '글록 17'과 그 탄창수인 '17발', 그리고 반자동 소총 민간판매 금지 법안이 하원에서 찬성 '217표'로 가결되었다는 것, 글록 17은 대표적인 반자동 소총이라는 것은 영화가 어떤 의미로 이런 숫자를 설정했는지 직접적으로 유추할 수 있도록 한다. 또한 아이들이 달려 나가는 자세는 사진 '소녀의 절규'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 같으니(실제로 감독이 직접 '영감을 받았다'가 아닌, '영감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라고 인터뷰했다) 영화 자체가 무기에 대한 메타포가 담겨 있는지 유추할 수 있다. 사실 이 정도면 은유도 아닌 직유다.
그러나 사실 이런 부분은 나를 포함한 한국 관객들이 숙지하고 있기엔 무리가 있는 부분이다. 물론 한국에 살면서도 미국 사회면, 정치면에 빠삭한 누군가가 분명 있겠지만, 이 영화를 보자마자 이런 암시를 잡아낼 정도의 관객은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또한 좋게 말하면 문화적 차이, 과하게 말하면 무지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영화에 대한 감상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부분이라고 본다.
5.
영화에서 사람을 무기로 만드는 것은 마녀의 주술이지만, 그 기저에는 등장인물들의 약점과 결핍, 외부의 힘이 깔려 있다. 폴은 경찰임에도 불구하고 감정 통제를 잘하지 못하고, 알코올 중독을 앓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또한 아내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 저스틴을 만나 잠자리를 갖는다. 제임스는 더 말할 것도 없이 도둑질을 통해 근근이 벌어먹고 사는 마약중독자다.
마커스와 저스틴은 앞선 사람들과 경우가 다르지만, 두 사람 다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부분들이 있다. 마커스의 경우 동성 연인과 함께, 즉 사회의 편견 속에 살고 있으며 학교 이미지(조금 더 나아가 사회의 편견 속에서 살아온 것이 자신이 몸 담고 있는 학교의 이미지를 올곧게 유지하고자 하는 욕심을 키웠을 것이라 유추할 수 있다)를 위하여 교장으로서 역할을 다하지 못했고, 저스틴은 부모님이 인질로 잡혀 글레디스의 직접적인 명령을 받아 강제적으로 조력하게 된다.
6.
앞서 언급한 무기에 대한 메타포를 감안하여 생각해 보았을 때, 결국 영화 <웨폰>은 주변인, 혹은 결핍이나 약점이 있는 누군가가 스스로 무기화(극 중 직접적으로 'weaponize'라고 언급한다) 되는 과정, 그리고 그렇게 무장한 자신의 총구를 다시 한번 사회로 돌리는 과정을 마녀와 주술, 그리고 아이들의 실종을 통해 이야기하며 노골적으로 미국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또한, 물체화된 무기가 아닌 행위적인 부분들을 기조로 생각해 본다면 한국 사회에도 충분히 통용되는 이야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