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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유소가맥 Apr 27. 2024

기대한 게 발전이면 실망을, 전에 맛본 맛이면 본전을

2024_17. 영화 <범죄도시 4>

1.

 많은 팬들이 <범죄도시> 시리즈를 '김치찌개 맛집'이라 칭하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다. 나 또한 일정 부분 공감하는 바다. 하지만 그럼에도 최소한의 변화는 있어야 한다. 어떤 날에는 참치도 넣어보고 또 다른 날에는 꽁치도 넣어봐야 한다. 돼지고기가 비싸다면 하다못해 스팸이라도 넣어봐야 한다.(요즘 물가에 가격은 매한가지인 것 같다만) 어쨌든 같은 바운더리 내에서나마 그럴듯한 변주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음식점은 손님이 다른 음식을 시킬 수라도 있지만 영화는 만드는 사람 마음이다. 그렇기에 만드는 사람의 의지가 중요하다


2.

영화 <범죄도시 4>

 그렇게 성공적인 결과라고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지난 3편에도 개선의 노력은 있다. 평면적이다 못해 납작한 캐릭터지만, 그럼에도 마석도라는 인물에 변화를 주기 위해 배경과 액션 스타일을 눈에 띄게 변경한 전적이 있다. 악당을 둘로 늘려 주인공을 옭아매는 긴장감을 배가 시켜보고자 도전했고, 전반적인 분위기도 최대한 가볍게 끌고 가고자 코미디를 곳곳에 주입했다.


 4편을 감상하는 자세는 당연히 어떻게 3편의 뜨뜻미지근했던 결과물을 수습하느냐로 치우칠 수밖에 없다. 이번 4편 역시 소극적인 변화지만 어쨌든 이런저런 소소한 변경사항들을 집어넣었다. 이 문장의 방점은 '소극적'이다. 사실 맛의 변화는 딱히 없다. 변화나 발전을 기대했다면 실망스러울 것이고, 전에 맛봤던 그 맛을 찾았다면 본전은 찾을 것이다.


3.

영화 <범죄도시 4>

 전편에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주성철과 리키 둘 사이에서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해 두 악당 모두 애매한 포지션이 되었다는 점이다. 이번 편 또한 백창기와 장동철, 두 명의 악역이 등장한다. 전편과 다른 점은 두 악당 모두 액션을 통해 주인공을 코너로 밀어 넣지 않는다는 점이다. 장동철은 직접 나서지 않고 뒤에서 계략을 꾸미는 인물이다. 마석도와 대면하는 장면도 없을뿐더러, 심지어 마석도가 그의 존재를 제대로 인지하기도 전에 사망한다. 전작처럼 분량 안배와 캐릭터 형성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느니 차라리 현명한 선택으로 보인다.


 다만 ‘왕년의 IT 천재’라는 설정과 같이 나름대로 지능을 이용한 캐릭터를 노리고 나왔다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눈치도 없고 무능하다. 입을 제대로 놀리지 못해 명을 재촉하는 재수 없는 촉새 캐릭터의 전형을 보여준다.


4.

영화 <범죄도시 4>

 백창기는 여태껏 시리즈에 등장했던 악당들 사이 가장 크게 차이나는 인물이다. 시리즈의 시작이지만 가장 이질적인 분위기를 풍겼던 1편에서 조차 악당들은 큰 액션과 대사, 다소 과장된 표정으로 캐릭터의 악함 혹은 광기를 드러냈다. 이와 반대로 백창기는 표정 변화부터 최대한 자제하는 인물이다. 대사도, 표정 변화도 없고 심지어 액션조차 특수부대 출신이라는 것을 자랑하듯 깔끔한 모션을 취한다. 전작의 악당들이 보여줬던 다소 과한 광기는 백창기 보다는 오히려 액션 하나 없는 장동철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이런 변화 자체에는 문제가 전혀 없다. 하지만 이런 캐릭터 구성 때문일까, 마석도와 백창기 둘을 붙여놓았을 때 텐션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대화도, 접점도 거의 없고 마석도가 백창기를 찾아가는 방식 또한 어쩌다 보니 백창기에게 다다랐다 느낌이 강하다.


 덧붙여 백창기라는 인물을 설명하는 방식이 아쉽다. 극 중 백창기가 특수부대 출신이라는 설정은 대사로 단 한번 나올 뿐, 그 출신이 영화 자체에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저 백창기라는 캐릭터의 강함을 자랑하는, 영화 진행에 하등 영향 없이 지나가는 설정일 뿐이다. 그가 구사하는 액션이 전편에서 우왁스럽고 거칠었던 악당들의 스타일과 다르다는 점에서 그가 숙련된 캐릭터라는 것을 인지할 뿐이다.


5.

 드디어 마석도 외 경찰들에게도 역할이라는 것이 생겼다. 다루고 있는 소재가 디지털 범죄로 넘어오며 단순히 물리력만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발생하고 이를 다른 경찰들이 커버한다. 러닝타임 내내 ‘석도야!’만 외치던 지난 세 편에 비하면 괄목할만한 성장이라 할 수 있는 부분.


영화 <범죄도시 4>

 문제는 그나마 생긴 소중한 비중을 장이수 캐릭터와 나눠먹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전작 말미 장이수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었기에 어떤 방식으로든 활용될 것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장이수를 활용하기 위해 사이버 수사대를 비롯한 경찰들이 다소 무능하게 그려진다. 다른 소속도 아니고 사이버 범죄를 전담하는 사이버 수사대 소속 경찰들이 일개 양아치 한 명이 도박 사이트 하나 만들겠다는 시도만으로도 알 수 있는 정보들을 장이수에게 배운다. 극 중 말마따나 '경찰이라더니 아는 것 하나 없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6.

 아쉽게도 유머 타율이 갈수록 낮아지는 것 같다. 꽤 유치했다 하더라도 극 중 배경 시간대를 감안하고 봐야 한다는 변명이 어느 정도 통했던 전편들에 비해 이번 편은 2018년까지 시간대를 끌어왔음에도 유머 코드가 변하지 않았다. 2018년이라고 할지라도 벌써 8년 전 옛날이라 변명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클라우드 동기화'를 사용한 말장난 같은 부분은 아무래도 참기 힘들다. 사실 <범죄도시> 시리즈 속 시간의 흐름은 그저 다른 사건을 가져오기 위한 수단일 뿐, 그게 유머가 되었든 인물이 되었든 성장이나 변화에 그 어떤 영향도 끼치지 않는다.


영화 <범죄도시 4>

 3편 개봉 후 많은 관객들이 지적했던 '지나치게 코미디적 요소에 치우쳐져 있다'는 불만을 인지한 듯 웃음기를 상당히 뺐다. 여전히 영화 곳곳에서 쉼 없이 농담을 날리긴 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3편보다는 1편의 분위기에 훨씬 더 가깝다. 3편이 농담 속에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느낌이라면 이번 편은 이야기를 진행하는 와중에 농담이 섞어 들어간 듯하다. 마석도 또한 1편에서 보였던 적당히 소소하게 부패한 경찰의 모습을 보인다. 물론 3편 개봉 전 이미 4편 촬영을 마무리했다는 점을 생각해 봤을 때, 위와 같은 변화들이 전편 반응에 대한 피드백인지, 기획 단계부터 이런 변화를 진행한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


7.

 사실 <범죄도시> 시리즈는 관객들이 기대하는 바도,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바도 마동석 배우가 가진 캐릭터성을 위시한 액션이다. 마석도의 압도적인 파워와 이에 적절히 리액션하는 악당이 보여주는 합은 이 영화 가진 거의 모든 것이다. 그 부분에선 자기 역할을 충분히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 <범죄도시 4>

 앞서 이야기했듯 특수부대 출신이라는 백창기 캐릭터 설정 상 액션 스타일이 군더더기 없다. 불필요한 움직임 없이 단도를 휘두르는 모습에선 날렵함을 넘어 깔끔함이 느껴진다. 비교적 거칠고 날 것의 액션을 보여줬던 전의 세 악당들과 비교했을 때,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마석도가 주먹질을 할 때 이제 총알 소리가 아니라 거의 대포 소리라 느껴질 정도로 사운드 과장이 심하다. 물론 사운드에 힘을 주는 것도 액션의 스케일이나 인물의 힘을 느끼게 해주는 효과적인 방법인 것은 맞지만, 이 정도라면 다소 과한 편이라는 것을 부정하기 힘들 것이다.


 무엇보다 액션이 나오기까지의 빌드업이 눈에 이젠 너무 빤하게 보인다. 액션의 쾌감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제 그 수가 너무 쉽게 읽히다 보니 그 쾌감의 강도가 현저히 낮아졌다는 것이 문제다.


영화 <범죄도시 4>

 가장 큰 문제점은 결정적인 한 방이 없다. <범죄도시> 시리즈는 이제 너무 아는 영화가 되어버렸다. 사실, 극 중 어떤 장면을 잘라 다른 편에 넣는다고 하더라도 크게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이 정도 했으면 동어 반복이 아니라 답습이라고 표현해도 그렇게까지 과한 표현은 아닐 것이다.


8.

 적어도 내가 볼 때 이 시리즈의 목표는 관객들이 알고 있는 재미를 관객들이 아는 방식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애당초 목표를 그렇게 설정한 이상, 큰 변화가 없다는 점에 대해 불만을 가지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그래도 상영관에 걸린 이상, 그리고 돈을 지불하고 관람한 이상, 나도 내 나름대로의 감상 소회를 밝힐 뿐이다.


 어쨌든, 단순히 익숙함 정도로 말하기에는 벌써 네 편이다. 3편 개봉 당시 ‘관객들이 이 시리즈에 바라는 게 너무 명확하게 존재하고, 그 익숙함을 보러 오는 관객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흥행에 있어서 큰 약점까지는 아닐 것으로 예상한다’고 이야기한 적 있다. 이번 편 역시 마찬가지다.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러 오는 이유는 너무나 명확하다. 다만, '약점까지는 아닐 것'이라는 관용적인 표현은 더 이상 쉽게 사용하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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