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터뷰 10. 올인..하겠습니다.
필자의 친구 [탱커말고딜러]님과의 업터뷰. 현재 카지노에서 신입 딜러로 일하고 있다. 영어를 잘하는 대신 가끔 한국어가 서툰데(한국인이다), 그녀의 한국어가 유창해질 때는 욕을 할 때뿐이다.
어렸을 때 꿈이 뭐였어?
초딩때 아빠 친구가 힐튼 호텔에서 일하셨거든? 처음 5성급 호텔에 가보니 너무 좋은거야. 그때 관광업, 서비스직에 대해 관심이 생겼어. 중학교 때도 호텔리어, 가이드 같은 꿈은 쭉 가지고 있었어. 학생기록부 발급해 보니까 '관광전문가'라고 써놨더라.
첫 번째 직장은?
대학교 4학년 때 취준하면서 관광박람회에 내 이력서를 쭉 돌렸어. 면접 보자고 여러 곳에서 연락이 왔고, 힐튼 호텔 계열사에 합격해서 다니게 됐어. 거기서 세상의 풍파를 다 맞았지.
그때 나는 사무직이 짱이라고 생각했어. 손님과 대면하기보단 백오피스라고 해서 직원들을 지원하는 쪽이 있는데 그중에서 인사부로 일하게 됐어. 1년밖에 일을 안 했기 때문에 꾸벅꾸벅 인사만 하다 나왔어.
인사부를 선택한 이유가 있어?
나는 생각보다 보수적인 사람이고, 예측가능한 일상이 중요하거든.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하는 쳇바퀴 같은 삶이 그땐 정답이라고 생각했어. 우리 아빠도 그런 직업이었고, 나도 그걸 보면서 사회생활이 저런 거구나 생각하며 자라오기도 했고.
그래서 사무직 중에서도 내 성격에 맞게 사람들과 소통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인사부에 지원했지. 인사부에서도 신입사원 교육, 지원 업무를 담당했어.
첫 번째 직장의 장점은 뭐였어?
직원 수가 4~500명 정도 되는 큰 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 있는 경험이 좋았어. 어린 나이에다가 첫직장이라서 실수해도 너그럽게 봐주셨고, 배운 것도 많았어. 호텔 업계에선 브랜드 네임이 있는 편이라 만족했었고. 하루이틀은 와 나 도시로 출퇴근한다! 하는 자부심이 있긴 했는데, 다니다 보니 감흥이 없어졌어.
단점은?
일하는 양에 비해 연봉이 만족스럽지 않았어. 1년을 다니면서 365일 중에 단 하루도 정시퇴근한 적이 없었어. 입사 첫날에도 야근 아닌 야근을 했어. 18시가 됐는데 아무도 퇴근을 안 하는 거야. 그게 기업문화란걸 눈치채고 이직 준비했어야 했는데.. 첫직장이다 보니 몰랐던 거지.
그럼 몸이 힘들어서 그만둔 거야?
근본적인 이유는 코로나야. 코로나 터지고 나서 매출이 안나오니까 무급휴가를 때려 버리거나, 인원감축도 했어. 그럼 남은 직원들은 더 많은 일을 해야 했지. 버티고 버티다가 나왔어.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그래도 2~5년 정도는 더 다녔을 것 같아. 일이 재밌었거든.
두 번째 직장은 뭐였어?
코로나가 길어지고 관광업계가 주춤하다 보니 진로 방황 시기를 겪었어. 오랫동안 관광업에 대한 꿈을 갖고 있었는데, 그게 멈추니까 근본이 흔들리는 기분.
강사도 해보고, 이런저런일 해보다가 내가 대학생 때부터 화장품에 미쳐버린 코덕(코스메틱 덕후)이었잖아. 좋은 기회가 생겨서 나름 손꼽히는 화장품 브랜드의 온라인 영업직으로 들어가게 됐어.
그 직장의 장단점은 뭐였어?
장점은, 브랜드 파워가 있고 회사의 자본이나 체계가 탄탄했어. 기초부터 배워야 했는데도 시스템이 너무 잘 갖춰져 있었어.
단점은, 경쟁이 너무 심해. 뛰어난 사람들이 많은데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경쟁해야 하고. 동료가 경쟁자인 시스템이라서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면서도 경쟁자가 돼야 한다는 게 나는 너무 힘들었어.
또, 그 직무의 특성일지는 모르겠는데, 매출 하나하나에 희비가 갈린다는거? 사실 매출이라는게 내가 잘해서 잘 나오고, 내가 못해서 못 나온다기보다는 외부적인 요인도 많은데 말이야.
지금은 어떻게 카지노 딜러가 된거야?
코로나가 거의 끝나면서, 다시 관광업계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 마침 화장품 회사 그만두고 일을 쉬고 있을 때 공고를 보고 지원하게 됐지.
지금 회사는 어때?
관광업계 중에서도 나름 연봉이 높아서 좋아. 의외로 안정적이기도 하고.
단점은 3교대 근무라서 건강이 박살나. 지난달에는 진짜 죽을 뻔했어. 5개월간 6킬로가 빠졌어. 어디서 야간근무가 2급 발암물질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몸소 느꼈어.
모든 서비스업이 그렇겠지만 감정노동이 있는 편이야. 고객들은 자기돈이 걸려있다 보니 아주 예민하지.
또, 나이가 나이다 보니 경조사나 약속이 많은 편인데 주말 근무도 있으니까 자유롭게 참여하지 못한다는게 MBTI 'E유형'의 인간으로서 슬퍼.
카지노는 어때? 가본 적이 없어서 궁금하다.
한번 빠지면 중독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잃을 때도 있지만 딸 때도 있잖아? 사람들이 진 건 잘 기억 못해. 20만원 잃고 다음판에 10만원 따면 앞에 20만원 잃은건 잊어. 딸 때의 기쁨이 엄청나잖아. 본전보다 많이 땄다 싶으면 털고 나가야 하는데 그게 어렵지.
우리(직원)는 어떤 게임에 투입될지를 매일 아침 알게돼. 테이블도 계속 순환하고, 되게 철저해.
드라마 올인 봤어? 그거랑 똑같아. 나도 합격하고 나서 궁금해서 봤는데, 송혜교가 교육생 때 교육받는 거부터 카메라 돌려보는 장면 같은게 정말 비슷하더라고.
지금 직장에서 인상 깊은 에피소드가 있어?
요즘 도파민에 절여져 있어서, 이 업터뷰도 재밌게 하고 싶은 강박이 좀 있어서 열심히 기억 더듬어봤어.
신입은 티가 나잖아. 고객들도 재밌어하거든? 버벅대고 이러는게 얼마나 재밌겠어.
어느날 내 앞에서 아저씨 두 분이 날 보며 이런 대화를 하더라고.
"여기 들어오기(취직하기) 힘든가? 나 게임 잘하는데. 나도 잘할 수 있을 거 같은데"
“들어오기 쉽던데? 난 나가기가 힘들던데”
웃참하느라 혼났잖아. 이런 대화를 맨날 들으니 매일이 도파민에 절여지지 않을 수가.
지금 직업을 추천하는 편이야?
성향에 따라 다를 것 같아. 관광업계에서 일하고 싶고 서비스업 잘 맞으면 추천해. 일도 재밌어.
퇴근 후에 잔업 생각 안해도 되고, 근무시간도 딱 지켜지는 게 좋아. 내 일만 잘하면 윗사람한테 갈굼 받을 일도 없어. 신입 때야 못하니까 혼날 수밖에 없어도 3년 차쯤 되면 터치 받을 일이 크게 없어.
대신 내성적이거나, 감정노동 싫어하고, 기싸움이 힘들면 추천하지 않아. 손님들이랑 생각보다 기싸움도 많이 하는데, 돈이 걸려있다 보니 자꾸 본인이 맞다고 우겨. 카메라 돌리면 다 나온다고 하더라도, 그 순간에는 기분이 나쁘잖아. 그런거 쉽게 털어내고, 멘탈도 잘 관리할 수 있어야 해.
앞으로의 계획이 있어?
뭘 해야겠다는 계획을 갖고 살지는 않아서.. 나도 내가 딜러 할 줄 몰랐고. 구체적인 계획은 없는 대신 자기개발은 꾸준히 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래서 무슨 자격증이든, 어떤 공부든, 취미든 계속 뭔가를 배우고 싶어.
직업을 선택할 때 중요하다고 선택되는 3가지를 꼽자면?
1. 내가 이 일을 하면서 행복하진 않더라도 괴롭지는 않아야 한다
2. 내가 일하는 만큼 돈이나 복지 등의 대가가 합당한가
3. 내가 이 회사에 헌신하는 만큼 회사가 나를 존중해 주는가
착하고 일 못하는 동료 vs 일 잘하고 싸가지 없는 동료
동료 없으면 안 되나? 나 혼자 잘할 수 있어. 둘 다 너무 힘들어..
굳이 고르자면 후자가 낫네. 1인분은 하잖아.
10년 뒤 너의 모습은 어떨 거 같아?
4년 만에 직업이 세 번 바뀐 걸 생각하면, 아마 다른 일을 하고 있지 않을까? 이제는 무턱대고 그만두거나 다음 계획 없이 그만두진 않을 것 같긴해. 이제는 나이를 먹은 만큼 책임져야 할 것도 많고.. 다른 일을 하게 되는 기점은 결혼이나 육아가 되지 않을까 싶어.
너에게 직업이란?
직업상담사 자격증도 있는 나지만..잘 모르겠어.
나한테 직업이란, 돈벌기 위한 수단? 삶을 영위하기 위한 수단 인 것 같아.
행복과 보람은 직업을 통해 번 돈을 쓰는 것에서 온다고 생각해.
회사생활을 하며 생긴 팁이 있다면?
회사생활하면서 생긴 팁은 손님들한테 받은 팁밖에 없어.
아니면..아저씨들 농담 받아주는 넉살?
진로를 고민하는 독자들에게 한마디!
일단 취미든 뭐든 해보고 싶은거 다 공부해 보라고 하고싶어. 그안에서 경로가 보이더라고. 자격증 하나 따놓으면 그거 써먹을만한 채용공고가 있을거고. 그걸로 일은 안 하더라도 나한테 결과물이 남으니까. 쓸모없는 배움은 없다. 어쨌든 길은 있을 테니 해보고 싶은거 다 도전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