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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신의 정형외과 Dec 06. 2022

금요일 새벽의 태권도 선수

경추 손상, 그 위험한 순간

* 본 글은 환자의 정보 보호를 위해 많은 부분 각색하였습니다.


 병원에서 의사로 근무하다 보면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이번에는 매년 온다는 경추 손상 환자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저의 첫 치프 레지던트는 척추 분야에서 시작되었고, 우여곡절 끝에 절반쯤 지나갔을적의 얘기로 기억한다. 응급실 당직을 하고 있던 동기에게 연락이 왔고 아주 심각한 환자가 한명 왔다고, 스무살인데 목이 다쳐 사지 마비가 왔다고 했다. 그 스무살의 환자는 태권도 선수를 하던 친구였고, 발차기를 하다가 3미터 높이에서 어깨와 목으로 떨어졌다고... 퇴근을 하려던 금요일 밤 11시였고, 걱정이 된 나머지 응급실로 향하였다.


 보호자는 타지역에서 병원으로 향하던 중이였고, 옆에는 학교의 선배가 동행해있었다. 신체진찰을 한 친구에게 물어보니 이미 어깨 아래로는 감각이 없고, 운동기능도 전혀 보존되어있지 않은 완전 척수 손상이였다고 한다. X-ray, CT 는 이미 촬영하였고 MRI 촬영을 대기중이었지만 이미 CT 상에서 심각한 경추의 신연-굴곡 손상을 확인할 수 있었고 굳이 더 검사를 하지 않더라도 추체 뒤쪽에 위치한 척수는 뒤틀리고 꺾여있을 것이 분명한 상황. 우리가 평소에 흔하게 하는 '괜찮습니다, 잘 될겁니다' 라고 말을 꺼내기 힘들 정도로 크게 다쳤다는 것을 직감했고 교수님께 환자가 보고되었다.


교수님은 지금 당장 응급수술을 준비하자고 하셨다. 수술은 어찌 되었든 틀어진 목을 제자리에 두고 척수가 끼여있는 곳을 풀어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고, 감각과 운동이 회복되는 것은.. 일단 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까지는 최선을 다 해보고 그 후에 기다려보자고. 그 시점이 토요일 자정이였고, 수술은 새벽에 시작되어 해가 뜰때쯤 끝났다.


 수술이 끝난 후 환자의 변화는 당장은 크지 않았다. 젖꼭지 아래로 감각이 없었는데 이제 발 끝까지 평소의 10% 정도는 감각을 느꼈다(느낌이 생겼다는 것은 꽤 고무적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동 기능은 회복되지 않았다. 가만히 있는 손을 보며 여기를 움직여 보라고 해도, 한참이 지나서야 '하고 있어야 안되나요?' 라고 말하였다. 그 젊은 친구는 다음날에도 불안함을 느껴 심지어는 죽고싶다는 얘기를 했다. 갓 스무살에 한창 건강하고 활발할 나이에 온몸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나를 보고 울먹이며 제발 안락사를 해달라고 요청하고, PTSD 처럼 사건이 생긴 시간만 되면 무서워했다. 수술 다음날은 호흡 상태를 상세하게 확인하기 위해 중환자실에서 지켜봤으며 주말이 지난 후에야 일반병실로 돌아가 엄마와 함께 생활했다.


수술 후 3-4일쯤 되어 청년은 조금 심적으로 안정이 되어 보였으며, 보호자의 요청대로 연고지의 재활 전문 병원으로 옮기기로 하였다. 부모에게는 긴 과정이 될 것이라며 여러차례 다독였고, 환자도 의지를 보였다. 전원을 가기로 한 전날 환자와 보호자에게 지금까지 수술을 하고 좋았던 경우들에 대해 얘기해줬다. 


 '정말 좋아 질까.. 걱정이 되었던 비슷한 환자가 외래로 와서 이제 많이 움직일 수 있다고, 다음번에는 꼭 걸어오겠다고 하더라니까. 너도 그럴수 있으니 힘내자.


 그런 다독임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교수님과 나는 환자를 ‘추시 없음’ 으로 퇴원시켰다. 환자가 걸어올 수 있는 날이 되면 한번 인사나 하러 오라는 말과 함께.


매년 한두명씩 온다는 경추 손상으로 인한 사지마비의 경우였다. 그 태권도 선수가 걸어서 다시 병원으로 인사를 하러 온다면 정말 더없는 기쁨일것 같다. 그리고 금요일 밤, 이러나 저러나 일단은 크게 다쳤고, 회복 가능성은 미지의 영역이며, 수술을 다음날 아침으로 미룰 수 있었음에도 원칙에 입각해 최선을 다하는 그 고민없는 결정을 내린 교수님의 자세를 배워야 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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