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생리 전후로 몸무게 차이가 좀 생기지만 이번에는 별 차이가 없다. 이유가 뭘까. 고민 끝에 결론냈다. 짐작건대 옥수수 때문이다. 지금도 옥수수 대에 젓가락을 꽂아 꼬치처럼 들고선 이따금씩 야금야금 옥수수 알을 털어먹고 있다. 아직 미처 다 식지 않아 열기를 품은 옥수수다. 2014년 영화 <인터스텔라>에 보면 사람의 힘으로 만든 게 맞나 싶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옥수수밭을 보게 되는데, 인류 최후의 식량 옥수수의 위용을 떠올리다 내 손 안의 옥수수를 비교하면 어쩐지 짠하다.
지난 주말에는 달리기를 하다 아버지 전화를 받았는데, 점심은 무얼 먹었느냐고 물어보시기에 "아, 뭐, 옥수수랑 바나나랑 이것저것 먹었어요." 하니까 아버지께서 껄껄 웃으신다. "이래서 피는 못 속여." "왜요?" "나도 바나나랑 옥수수 먹었어." 우리는 수화기 너머로 서로 표정을 상상하며 웃었다. 웃겨서 더 달리기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 전화의 용건은 슬리퍼 밑창이 똑떨어졌다는 거였는데, 바꿔 말하자면 내게 효도할 기회를 주신 거였다. 우여곡절이 있어 슬리퍼는 아직 아버지께 도착하지 않았지만 나는 생각했다. 옥수수를 좋아하는 유전자라는 것도 있나. 문과는 이래서 안 돼.
우리나라 옥수수 자급률은 8%다. 아니다, 0.8%이다. 이 수치를 보고 깜짝 놀랐는데, 그러면 99.2%의 옥수수가 해외에서 온 옥수수라는 뜻이다. 어릴 때 가족끼리 차 타고 강원도 놀러 가면 보이던 옥수수들은 그럼 0.8%의 옥수수들이었던 건가? 시중에 유통되지 않고 개인적으로 길러서 먹는 옥수수들은 심심찮게 눈에 띄긴 하는데, 그러고 보면 강원도에서 길가에서 팔던 옥수수들은 판매용으로 그 통계가 잡히긴 했을까 의문이다. 농가의 수입을 보고 추정해 알았으려나? 음, 명확하게 알 수 있는 건 옥수수가 알고 보면 대부분 다 해외파라는 것뿐. 알고 보니 2022년 기준 사료용 포함 시 자급률은 4.3% 정도라고. 옥수수 수입산은 대부분 미국,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지에서 온다. 내가 먹은 옥수수는 중국에서 왔다. 우리나라에서 자급률이 높아질 기미는 없어 보이니, 제발 옥수수 공급을 끊지 말아달라고, 옥수수를 부디 잘 길러 달라고 손 편지라도 써야할 것 같다.
어릴 때 내 외할머니께서는 '뉴슈가'를 넣고 옥수수를 큰 통에 넣고 찐 다음, 미처 다 식지도 않은 뜨거운 옥수수를 손에 쥐고선 손주들을 먹이려고 끊임없이 알을 골라 벗겨내주시곤 했다. 그러면 내 동생 중 한 명은, "할머니, 나 까만 거 안 먹을래." 하거나, 다른 녀석이 "그거 저 주세요." 하거나 했다. 돌아가면서 어미 새한테 먹이 받는 아기 새처럼 외할머니 옥수수 알갱이를 받아먹던 기억이 푸근하다. "안 뜨거워요?" 하고 만져봤던 옥수수가 어마어마하게 뜨거웠다. 당신의 손이 아무리 뜨거워도 따뜻하고 맛있는 알갱이를 얼른 먹이고 싶으셨던 마음이었을지도.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옥수수 알갱이를 골라 뜯어주는 것은 사랑이구나.
아버지나 어머니도 옥수수 알갱이를 나누곤 했다. 부모님처럼 손으로 한 줄 한 줄 고르는 것은 엄지의 크기만큼만 가능한 일이라 어린 나에게는 초당 알갱이 수확률(?)이 너무 적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직접 갈비처럼 와구와구 뜯어먹는 것을 선호했다. 짐승처럼 옥수수를 갉아먹는 것도 충분히 재밌지만, 차분하게 옥수수를 줄 맞춰 뜯어먹는 쾌감을 생각하면 지금도 짜릿하다. 옥수수가 알이 단단하지 못해 뭉개질 때는 또 뭉개지는 식감의 재미가 있다. 옥수수 알껍데기가 이 사이에 끼는 것은 곤란하지만 그런 불편을 두려워해서야 맛있는 옥수수를 먹을 자격이 없다. 아니면 한 알 한 알 옥수수 알을 골라 건네주는 도저한 사랑을 퍼부어주는 외할머니를 가지면 된다.
옥수수는 찐 옥수수가 가장 좋다고 생각하지만, 삶아도 되고 구워도 맛있다. 하지만 누가 내게 옥수수 통조림 알갱이를 주면서 '이것이 옥수수'라고 하면 나는 화가 난다. 대개는 스위트콘이라고 불리는 종인 경우가 많은데, 나로서는 그 영혼을 추출당해 껍질만 남은 것 같은 스위트콘이 싫다. 마치 로봇이 인간과 비슷할 때 점점 호감을 갖다가 너무 비슷해지면 오히려 로봇에게 느끼는 감정이 불쾌한 골짜기로 확 빠져버려 비호감이 되는 것처럼, 누군가 친절히 발라내어 준 옥수수 알갱이가 아니라 기계로 전부 처리해 낸 옥수수 통조림은 어딘지 모르게 조금 모욕적이다. 그게 볶음밥이나 샐러드 등에 흔히 들어있는 단맛 강한 그 옥수수다. 지금 생각하니 흔하다는 게 싫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요새 찐 옥수수 파는 곳이 근처에 더러 있어 자주 사 먹었었는데, 가격대는 2개 3천 원, 3개 5천 원 이런 식이다. 얼마 전에는 친구네 동네 놀러 가서 보니 찐 옥수수 가격이 더 싼 곳도 있었다. 착한 옥수수 가격이 부러웠던 기억이다. 붕어빵을 가까이서 사 먹을 수 있으면 붕세권, 찐 옥수수를 손쉽게 사 먹을 수 있는 곳에 산다면 옥세권에 산다고 할까. 이 가게 저 가게에서 찐 옥수수를 사보면 각자 다 또 다른 매력이 있다. 하도 옥수수를 사 먹어서 엥겔 지수가 치솟자 이제는 궁여지책으로 인터넷에서 쪄서 얼린 냉동 옥수수를 사다가 냉동고에 쟁여놓고 먹는 중이다. 가끔 이게 '스위트콘'과 뭐가 다른가 싶을 때가 있는데, 그래도 옥수수를 못 먹는 것보다는 낫지 않나 생각한다.
사실 옥수수가 내가 되는 과정을 우리는 사는 내내 직간접적으로 체험하고 있다. 옥수수는 사료용으로도 쓰이고 (옥수수를 먹은 동물을 내가 먹는다) 공업용으로도 쓰이는 신기한 곡물이다. (대표적으로 튀김, 볶음, 샐러드 등 다양한 요리의 식용유로 널리 사용됨, 발연점이 높아 튀김용으로 특히 적합하며, 마가린, 마요네즈, 드레싱 등 식품 가공업에서 원료로도 쓰임, 비누, 고약, 페인트, 금속표면 방수제, 잉크, 직물, 니트로글리세린, 살충제 등 다양한 산업 제품의 원료로도 쓰임) 어떤 사람에게는 간식일 뿐인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다양하게 쓰이는 밥줄과 같은 중요한 의미라. 또 아주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어떤 사람은 알레르기 때문에 옥수수를 마음껏 먹지 못하기도 한다고. 간식거리라는 한 가지 관점으로만 옥수수를 바라보다가 그것이 사뭇 다르게 쓰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 새삼스레 신기하다. 내가 '옥수수'라고 할 때 당신은 다른 옥수수를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이. 옥수수에 얽힌 기억부터 우리는 아주 다르게 구성돼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
내가 만약 고양이라면 츄르 대신에 찐 옥수수를 내밀어 주시라. 그 고소하고 달큼한 냄새에 행복해하며, 발랑 뒤집어져서 바닥에 등을 붙이고 옥수수를 줄 맞춰 뜯어먹는 묘기를 보여드리리. 내가 돌고 돌아 다시 옥수수가 될 때까지, 몇 개의 옥수수를 건네받을까. 그것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