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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리모아 Jan 21. 2023

공부 의욕 없는 학생 다루기

혼자 열심히보다, 둘이서 대충이 낫다

   열성적인 선생님이 학업성적도 낮고 공부 의욕까지 없는 학생을 맡게 되었을때, 아무리 노력해도 학생을 바꾸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또 수많은 학원들이 100명의 학생 중 sky에 진학한 한두명의 학생들만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지만, 그외에 다수의 학생들은 열정적인 1타강사의 수업에도 불구하고 극적인 효과를 보지 못한다. 그렇다면 1타강사의 수업 실력이나 강의내용에 문제가 있을까? 그건 아닐것이다, 그 1타강사는 분명히, 공부의욕은 있는데 방법을 모르던 수많은 학생들에게 성적 상승효과를 주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왜 어떤 학생은 아무리 양질의 수업을 들어도, 그 모든 지식이 도로 튕겨나오는 것인가. 나는 이런 현상을 '강건너 불구경 현상'이라 내나름대로 정의내렸다. 학생은 불타는 집이 바로 자신의 집인데도 불구하고, 꽤나 느긋하게 그 모습을 구경하고는 한다. 왜 그럴까? 선생님이라는 소방차가 이미 자기의 노력을 훨씬 초과하는 노력을 알아서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주도적으로 뭔가를 해봤자 아무런 도움도 안될것이라는 열패감이 그 저변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열정적인 강사일수록 모든 문제를 자기자신이 해결하려 하기때문에 이 현상을 해결하기가 꽤 힘들다. 하지만 그건 마치 목봉체조를 하면서 모든 무게를 혼자 짊어지려는 행동과 같다. 학생의 입장에서 그런 선생님의  모습은 마치 슈퍼맨처럼 보일 수 있다. 만약 자신이 흉악한 악당의 손아귀에 잡힌 평범한 시민이라면, 슈퍼맨이 그 악당을 물리친 다음 당신에게 다가가서 자신과 함께 지구를 구할 영웅이 되자고 제안할 때 용기를 얻을 수 있을까?  이해를 못힌채로 문제도 잘 못 풀고 있는 학생을 보면, 열심히 설명하고 그보다 더 열심히 문제푸는 시범을 보여 주면 학생은 더 의욕을 잃게 된다. 당신이 그 문제를 열정적으로 해결하려 할수록 학생은 그 문제 상황으로부터 한 발짝 두 발짝씩 뒤로 물러나서 적극적으로 방관하려 할 것이다.


  교사라는 직업은 히어로가 아니라 트레이너에 가깝다. 요리학원이라 생각해보자, 선생님이 많이 도와줄수록 학생은 경험과 성장의 기회를 잃어 버린다. 마찬가지로 선생님의 말이 많을수록 학생은 마치 티비너머로 백종원의 요리 강의를 보고있는것처럼 그저 구경만 하게 된다. 초보일수록 백종원의 요리프로를 백번 보는 것보다, 김풍처럼 일단 장을 봐온 뒤 아무요리나 만들어보는게 요리 실력에 훨씬 도움이 된다. 그런데 대부분의 학생은 무슨 요리를 만들 지, 왜 만들어야하는 지, 이유조차 없는 상태이기에 선생님이 '열심히' 해결해주게 되는 것이다. 그럴수록 학생은 무능함과 부끄러움을 느끼며 더더욱 소극적으로 변한다. 이런 현상은 영어회화학원이나 PT트레이닝 등 어디서나 꽤나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많은 학생들이 겪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교육자입장에서 어떻게해야 이러한 불구경 현상을 해결할 수 있을까. 내 나름대로 고안해본 몇가지 해결방법을 공유해볼까 한다. 


  수업에 힘을 빼라. 

  해결을 포기해버리면 오히려 해결이 되는 경우가 많다. 자기집이 불타는데 소방관이 갑자기 주저앉아 버리면 느긋하게 방관하던 집주인은 발을 동동 구르게 될 것이다. 물론 모든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쓸 수 있는 방법은 아니다. 하지만 일대일 코칭이라면 이 방법은 꽤 효과적일 수 있다. 놀랍게도 하위권부터 중상위권까지 생각보다 많은, 아니 거의 대부분의 학생과 적극적으로 일탈하며 수업에 임했을 때 오히려 성적이 더 많이 오르는 기이한 현상을 나는 종종 경험했다. 

  예를 들어 내가 열심히 무언가를 설명하는데, 학생은 딴생각에 잠겨있거나 핸드폰, 거울, 그외 기타등등에 시선이 가있을 때, 학생의 폰을 빼앗고 통제하고 혼내고 열심히 설명하는 것보다, 잠깐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 학생을 바라보면 된다. 좀 더 적극적으로 이 방법을 사용하고 싶다면, 책을 덮는 방법이다. 

더더욱 적극적으로 쓰고 싶을 때는, 학생에게 "오늘 그냥 놀까? 같이 영화나볼래?", 혹은 "게임이나 한 판 할까?" 하는 식으로 적극적 일탈까지도 권했을 때, 오히려 학생에게 각성을 주고 수업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려는 마음을 불러 일으키게 된다. 사실 내 입장에선 반쯤 자포자기한 마음으로 그런 제안을 던졌던 것인데, 학생들이 의외의 책임감과 양심을 보여주어 나중에는 의도적으로 이런 제안을 종종 하게 되었다. 

  예를들면 나와 수업하는 한 초등학생은, 수학문제를 풀다가 잘 안풀리면 책을 찢고 연필을 내려찍어 부러뜨리곤 한다. 내가 그 학생에게 문제를 쉽게 푸는 친절히 방법을 알려주면, 그 학생은 초등학생 특유의 버릇 없는 말투로 "아~ 네에에~, 알았다고요~ 어쩌라구요~" 와 같은 말투로 대답하며, 그때부터 문제도 대충 읽고 숫자를 휘갈겨 쓰기 시작한다. 이쯤되면 나도 슬슬 열받기 시작한다.

  사실 내가 이런 상황을 몇달동안 버티다가 더이상 참지 못하고 처음으로 보였던 반응은, 같이 쾅쾅대며 책상을 발로 차고 화를 내는 것이었다. 매번 웃으며 칭찬하고 격려만 해주던 순둥이인줄 알았던 내가 그렇게 행동하자 학생은 매우 충격을 받았는 지, 그날 다시는 그런 공격적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그뒤로 수업 진도는 원활히 나갈 수 있어서 금방 수업이 끝났다. 사실 화를 내기까지 이미 여러달 고민을 해왔기 때문에 나는 내 화의 정당화를 위해, '아니, 내가 이정도로 참아줬는데, 학생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르나? 나도 화를 내서 이런 얼마나 참아주고 있는 지 거울치료로 알려줘야겠다.'라는 나름의 정당한 교육적(?) 이유까지도 붙여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막상 화를 내고 겁먹은 학생의 모습을 보고나니 나의 짜증이 학생에게 주는 무게는 학생이 나에게 내는 짜증의 무게와 전혀 다르다고 느꼈다. 학생에게 큰 잘못을 한 기분이 들었고, 그날 수업이 끝나고 나서 학생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지금은 그 학생의 화를 컨트롤 하는데 좀 더 능숙해졌다. 학생이 짜증을 내기 시작하면 나는 책을 빼앗아서 덮은 뒤 학생을 가만히 바라본다. 처음에는 그러고 나서, 그만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너무 힘들면 오늘 여기까지만 풀까?' 라고 물어봤다. 그런데 그토록 힘든 공부를 그만하게 되는 것이니 좋아하는 반응을 보일 것이라는 나의 예상과는 달리, 학생이 '그래도 해볼게요'라고 대답하며 다시 책을 펼쳐보이는 것이 아닌가! 그때 나는 깨달았다. 학생이 내는 짜증은 사실 '공부를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공부를 잘 하고 싶은데, 생각대로 잘 되지 않아서' 내는 짜증이라는 것을.


  그 뒤로 나는 수업 집중을 못하는 학생에게 그날 하루의 진도를 딱 정해주곤 한다. 60분 수업을 기준으로 한다면, 학생이 집중해서 40~50분 정도 걸릴 분량을 정해주는 것이 좋다. 물론 이 디테일한 진도는 학생마다 다르기에 선생님의 안목이 조금 필요하다. 개인적 경험으론, 이때 원래 정해두었던 충분히 성취 가능한 진도를 학생이 인지하고 있는 지가 상당히 중요하다. 그리고 그 진도를 학생이 성취할 능력이 있다고 선생님이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아 선생님은 그냥 변덕이 심한 인간이구나, 아싸~ 놀아야지~.' 라고 생각하는 역효과가 생길 수도 있다. 선생님의 생각과 감정을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너가 충분히 이정도는 풀 수 있는데, 못해서 조금 아쉽다, 그래도 나는 너랑 짜증내가면서 성취도 없을 수업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오늘은 그냥 수업을 여기까지 하고, 차라리 즐겁게 뭔가를 하면서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다.' 라는 신호를 보내야 학생은 선생님이 자신에게 던지는 실망과 기대를 느끼고, 이를 자신의 학습동기로 삼아 의욕을 불태우게 된다. 


  즉각적인 보상 제공

  게임은 왜 재밌을까? 흔히들 들어봤을 것이다. 게임은 즉각적인 보상을 주는 피드백 시스템이 있기 때문에 내가 잘했는지 못했는지 명확히 실시간으로 알 수 있고 내 노력이 바로바로 점수에 반영되기 때문에 재미를 느끼기 훨씬 좋다는 것을. 공부나 다이어트는 나의 노력과 결실 사이의 피드백이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고, 학생들은 쉽게 도중에 포기하거나 충분한 양의 노력을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사실 학생들이 공부를 재미없어 하는 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선생님(혹은 학부모)의 높은 기대치 때문인 경우가 많다. '1등급을 받으려면 다 외워야돼! 문제를 다 맞춰야돼!'와 같은 과한 열정은 듣는 학생의 마음을, 아예 그냥 시작조차 하기 싫게 만들어버린다. 

  숙제를 죽어도 안해오는 학생, 혹은 아무리 설명해도 '나는 그냥 공부가 싫은데요? 절대 안외울건데요?' 라고 말하는 학생에게(실제로 이런 학생이 많다), 진짜 별것도 아닌 숙제나 진도를 딱 정해주고, 그만큼만 해오면 기대 이상의 간식 (예를들면 치킨과 같은) 아니면 30분 정도 엄~청 일찍 끝내고 그냥 영화를 보는 등의 즉각적 보상을 제공하는 방법은, 학생들의 죽어있던 의욕을 각성시키는데 상당한 도움이 된다. 

  게다가 학생들은 성적과 별개로 착하고 양심적인 경우가 많다. 학생들은 대가없이 주어지는 혜택은 부당하다고 여긴다. 자신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데, 부당하게 이득을 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생각보다 어른스럽다. 그냥 받는 선물보다, 자기가 열심히 노력하여 공부한 것을 알아봐주고 제공하는 보상을 더 좋아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앞서 등장한 초등학생에게 "오늘 수학문제집 두 장 풀면 수업 일찍 끝내줄게~."라고 했는데 어떤 날은 학생 컨디션이 좋아서 10분동안 초집중하여 문제를 끝내버리는 경우가 있다. 이때 협상이 중요하다." 두 장 더풀면, 쌤이 게임 시켜줄테니까 더 풀어볼래?"라고 제안하면, 학생이 "너무 힘들어서 그냥 그만할래요"라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더 풀어보겠다고 대답한다. 혹은 애초부터 "쌤 오늘 네 장 풀테니까 포켓몬고 시켜주세요"라고 먼저 의욕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막상 문제집을 풀어보니 너무 어렵고 귀찮은 계산 문제 단원일 때, 지옥도가 펼쳐진다. 학생은 끊임없이 투덜대고, 짜증내고, 소리지르고, 연필을 부수고, 책을 찢고,  나는 힌트도 주고, 책도 빼앗아보고, 심호흡 시켜보다가 결국은 내 인내력의 임계점을 넘는 순간, "그냥 포켓몬고 시켜줄테니까 수학공부는 그만하자."라고 말을 하게 된다. 그런데 학생이 놀랍게도 "아뇨, 다 풀고 할래요." 라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자기가 성취해서 얻은 게임 시간이, 그냥 무작위로 주어지는 게임 시간보다 더 가치 있다는 것을 학생인 느낀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와 수업하는 한 여중생은 수업 때 그냥 간식을 사가서 주는 것보다, "숙제 다했으면 오늘 원하는 간식 과자 사갈게 어때?" 라고 제안했을 떄 훨씬 반응도 의욕도 좋다.


  단서 놓아주기

  불구경 현상을 해결하는 마지막 방법으로는, 단서 놓아주기가, 도움이 될 수 있다. 나는 공부의 자세에 있어서, 선생님이 앞장서서 불을 끄는 것보다는 소방호스를 학생에게 넘겨주고 뒤에서 같이 거들어주는 모양새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퍼즐을 선생님이 다 맞추고 학생은 옆에서 조각을 갖다주기만 하면 퍼즐 맞추기가 재미있을까? 반대로 학생이 직접 퍼즐을 맞추다가 답이 잘 안보일때에만 선생님이 살짝 도움을 주어야 학생의 집중과 의욕은 최고조로 발휘될 것이다. 상위권과 학생과는 고난도 지문을 같이 읽고 같이 풀든, 아니면 쉬운지문 여럿을 숙제로 내주고 피드백을 주든 문제가 없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무의욕 학생은, 고난도 문제를 풀면 포기하고 안풀고 찍고, 쉬운 문제를 여럿 풀게하면 귀찮아서 대충 읽고 대충 푼다. 이런 경우 선생님의 훨씬 더 세심하고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보통 선생님들이 학생에게 문제를 풀게 하고 그 동안 다른 잡무를 보는 경우가 많은데, 상위권의 학생이라면 알아서 생각하고 고민하고 풀지만(그래서 안 도와주는 것이 오히려 학습 효과가 높지만), 무의욕 학생은 집중을 그냥 놔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문제를 풀다가 학생이 막힌 것이 보일 때 "여기서 귀뚜라미는 무엇을 상징할까?" 하는 식의 질문을 던져서 힌트를 주는 것이다. 

  중3에서 고1로 올라가는 한 학생은 나와 수업하면서 40점 받던 국어 점수를 80점까지 올려보기도 한 경험이 있고, 심지어는 그렇게 80점을 받고 어떤 보상을 해주면 좋겠냐고 묻자 나와 롯데월드를 가고 싶다고 했을 정도로, 그리고 게임도 자주 같이 할 정도로 관계도 매우 친한 학생이다. 그런데 나와 수업할 때도 조금만 어려워지기 시작하면 갑자기 초딩이나 좋아할법한 무지개색스프링을 가지고 놀거나, 노래를 흥얼거리거나 수업 맥락과 전혀 상관없는 게임 연애와 같은 소리를 해댄다. 학생의 습관 자체가, '아 좀 어려운데? 내가 못할 것 같으니까 시간이나 때워야겠다'라는 무의식적인 마인드가 있고, 풀다가 조금만 어려워지면 바로 이런 시간때우기 모드로 바뀌고 마는 것이다. 이 학생은 나와 수업하면서 국어 성적은 한 번 오르긴 했지만 그동안 다른 과목은 꾸준히 50점대를 못넘겼다. 수학, 영어 학원에서 자습 시간을 주면 이어폰을 낀 채로 노래만 듣다 오는 등 점점 더 적극적으로 시간을 때우는 버릇이 생겼고, 나와의 수업에서도 그런 현상이 점점 심해졌다. 최근에는 국어성적도 다시 50점가까이 떨어졌다. 내가 문제를 풀어 보라고 시켜도, 멍때리거나 딴소리를 하며 문제를 풀어봐야겠다는 의욕 자체를 상실하여 도무지 수업을 90분 하면 10분 20분밖에 집중을 하지 못했다. 어머님께 상담을 드려보니 어머니께서도 이미 어느정도 인지하고 계셨고 오랫동안 고민해온 부분이라고 하셔서, 나는 진지하게 학원을 다끊고 나와 수학 과학을 초등과정부터 같이 해보자고 제안드렸다. 학습효과를 떠나서, 학습이란 것을 자기주도적으로 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고, 감사하게도 어머님께서 나를 믿고 맡겨주셨다.

  이 학생과 나는 매일 초등학교 문제집을 숙제로 풀었는데, 처음에는 개념 설명 파트를 아예 안 읽고 문제를 풀거나, 혹은 설명을 봐도 뭔소린지 이해를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마다 나는 개념에 다 나왔던 설명을 천천히 읽어보게 하고 그다음 그 개념이 문제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를 설명도 하고 학생이 직접 풀어도 보게 했다. 

  그러자 점차 개념과 활용이라는 이 학습 방식 자체를 학생이 터득하고 처음에는 연습문제도 제대로 못풀던 학생이 이제는 한권을 끝낼 수 있었고, 이제는 나름 꾸준히 숙제를 하는 학생이 되었다. (원래는 내가 내준 국어 숙제도 안하는 날이 반절이 넘었다.) 그 과정에서 무수한 시행착오와 포기와 좌절과 체념이 있었지만, 아무튼 지금은 내 나름대로 만족할만한 성과가 나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내가 수업을 열심히 하는 것보다도 학생이 열심히 하도록 상황을 만들어놓고 막힐때 도움을 주어서 성취감과 할만하다는 자신감을 느끼도록 만들었다는 점이라고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혹시 학생의 의욕이 없다면 의심해보자,

혹시 내가 너무 의욕이 많기 때문은 아닐까? 

학생이 해야만 하는 일을 내가 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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