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저녁 7시, 공인중개사 사무실에 도착하니 20대쯤으로 보이는 여성이 벌써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보더니 갑자기 일어나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사장님? 내가 사장님인가...’ 어리둥절해하는 나를 보고,
중후한 목소리의 공인중개사 사장님이 말했다.
“여기는 전세 계약하러 오신 임차인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경매로 성공했다는 성취감도 컸지만,
나를 "사장님"이라고 부를 때마다 마음이 회복되는 기분이었다.
생각해보면, 지난 2년 동안 직장에서 계속 진급에 실패하고 자신감은 점점 바닥을 쳤다.
어느 날, 나보다 먼저 진급한 후배가 나를 보고, “선배, 일을 이렇게 하면 안 되죠.”라고 지적했을 때는,
붙잡고 있던 자존감마저 무너져 차 안에서 눈물을 쏟았던 기억도 있다.
그날 계약을 맺은 임차인은 28살의 신혼부부였다.
남편은 연하였고, 두 사람은 2주 뒤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돈은 부족했지만 깨끗한 집에서 신혼을 시작하고 싶어 했던 두 사람은 새 아파트는 엄두가 안 나고,
오래된 아파트는 너무 초라해 보였다고 했다.
그러던 중 내가 경매로 낙찰받은 집을 보고 인테리어가 마음에 들어 바로 계약을 결정했다고 한다.
계약을 마치고 나니 하늘을 나는 것처럼 기뻤다.
마산의 유명 빵집 ‘고려당’에 들러 아내와 아이들이 좋아하는 빵을 잔뜩 사서 부산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부산에 거의 다다랐을 때, 신호에 멈춰 잠시 쉬고 있는데 카톡이 왔다.
임차인이 보낸 메시지였다.
“사장님, 좋은 집을 좋은 가격에 거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경매로 시세보다 절반 값에 낙찰받고,
전세 6천에 월세 20만원까지 시세보다 저렴하게 계약을 맺었다.
경매로 신혼부부의 삶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에 기분이 묘했다.
그날 집에 도착하기 직전, 차 안에서 큰 소리로 외쳤다.
“나, 진짜 진급 떨어지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