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차로 접어든 어느 월요일 아침이었다.
강의실 공기가 처음과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맨 앞줄에는 이미 노트북을 켜놓고 코드를 치는 사람들이 있었고,
뒤쪽에는 조용히 팔짱을 끼고 앉아 있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났다.
화이트보드에는 낯선 영어와 괄호들이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분명 초보자도 할 수 있는 과정이라고 했는데…’
처음 25명이던 수강생은 어느새 8명이 빠져나가고 없었다.
자리만 비어 있는 게 아니라,
첫 주에 같이 웃으면서 커피 마시던 사람들이 통째로 사라진 느낌이었다.
강사는 늘 같은 속도로 말을 이어갔다.
“자, 여기서 인터럽트가 걸리면요, 메인 루틴이…”
" 여기 신호가 하이 로우로 가면은요,..."
이해하는지 눈을 살피기보다는
‘오늘 진도를 어디까지 나가야 하는지’에 더 신경 쓰는 사람처럼 보였다.
뒤에서 멍하니 화면만 바라보는 학생이 있어도, 수업은 멈추지 않았다.
그날 저녁, 집에 와서 결국 입을 열었다.
“여보, 수업 따라가기가 너무 힘들어…”
아내는 잠깐 놀란 눈으로 나를 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그럼 오빠, 수업 끝나고 공부하고 들어와.
어차피 시작한 거잖아. 한 번은 붙어 봐야지.”
그래서 내 하루 일정은 이렇게 바뀌었다.
새벽 5시 기상.
쌀쌀한 공기 맞으면서 운동장 한 바퀴를 돈다.
동네 사람들은 아직 커튼도 안 걷은 시간.
운동이 끝나면 스터디카페로 향한다.
7시부터 8시 30분까지는 전기기능사 교재를 펼쳐 놓고 혼자와의 전쟁.
빨간펜이 책 위를 왔다 갔다 하고,
옆자리 사람의 키보드 소리가 배경 음악처럼 깔린다.
9시부터는 스마트 팩토리 수업.
하루가 끝나는 5시 이후에는 다시 공부.
집에 들어가기 전까지 최소 3시간은 더 앉아 있었다.
‘고3 때도 이렇게는 안 했는데…’
스스로도 좀 웃기면서, 한편으로는 대견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책상에 오래 앉아 있는 사람인 줄, 나도 몰랐다.
문제는 다른 과목이 아니었다.
전기, 파이썬, 설계는 어떻게든 따라가 볼 만했다.
진짜 벽은 주 2회 있는 임베디드 수업이었다.
교수는 속도를 늦출 줄 몰랐다.
칠판에는 레지스터, 인터럽트, 포인터 같은 단어들이 춤을 추고,
모니터에는 까만 화면 위에 흰 글자가 쏟아졌다.
C언어나 프로그래밍을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모를까,
나 같은 ‘완전 생초보’에게는
“복습을 해야지”가 아니라
“손을 놓고 싶다”는 마음부터 들게 만드는 수업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나면 머릿속은 이런 느낌이었다.
마치 영어로 꿈을 꿨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한 단어도 기억나지 않는 상태.
그리고 어느 날, 결국 결심했다.
‘이건 혼자 끙끙댄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팀장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강의실 한쪽, 좁은 상담실에서 서로 마주 앉았다.
“팀장님… 수업을 도저히 따라가기가 힘듭니다.
이렇게 들어도 되는 건지 모르겠어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팀장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 마음 이해해요.
이 과정이 기초라고는 하지만,
완전 처음 접하시는 분들에겐 많이 벅찰 수 있어요.”
잠시 숨을 고르더니 말을 이었다.
“그래도요, 여기서 ‘아, 이런 분야가 있구나’까지만 이해하셔도 충분해요.
전부를 다 이해하려고 하지 마시고,
완주를 목표로 해 보세요.”
그리고 한마디를 덧붙였다.
“제가 나중에 좋은 일자리도 소개해 드릴게요.
조금만 더 힘내 봅시다.”
상담실 문을 열고 나와 복도를 걸어가는데,
유난히 복도가 길게 느껴졌다.
위로를 들은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완주만 하세요”라는 말 한 줄로
내 버거움이 덮여 버린 것 같기도 했다.
집으로 가는 버스 안, 창밖으로 어두워진 도로를 보면서
내 안에서 두 목소리가 싸우기 시작했다.
‘그래, 그냥 끝까지 버텨보자.
어차피 시작했잖아.’
‘근데… 이게 정말 나한테 남는 걸까?
지금 이 버거움은, 나를 키우는 건가
아니면 그냥 갈아 넣는 건가.’
그 뒤로도 며칠 동안은
같은 루틴이 계속됐다.
새벽에 일어나 운동을 하고,
스터디카페에서 전기기능사 책을 펼치고,
하루 종일 수업을 듣고,
다시 복습을 했다.
몸은 점점 그 생활에 익숙해지는데,
마음은 점점 낯선 곳으로 밀려가는 느낌이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완주’와 ‘포기’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는 기분이었다.
조금만 더 버티면 될 것 같다가도,
갑자기 모든 끈이 동시에 끊어질 것 같은 위태로운 느낌.
그러다 결국, 어느 날,
줄이 한쪽에서 툭 하고 끊어져 버렸다.
더는 “조금만 더”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할 수 없던 그날,
나는 드디어 결정을 내렸다.
그만두겠다고.
다음 편에서는
그 결정을 입 밖으로 꺼내기까지의 이야기와
수업을 내려놓은 뒤에야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 것들을
조금 더 솔직하게 적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