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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매니저 Aug 08. 2024

아메리카노는 소화제가 아니야

뒤늦게 일상의 기쁨을 찾은 이야기 

첫 번째 진급에서 떨어졌을 때는 “한 번은 그럴 수 있지” 하는 분위기였다. 동기들은 위로주를 권했고, 선배들은 내년에 꼭 합격하라고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었다. 하지만 두 번째 진급에서도 떨어졌을 때 상황은 완전히 달랐다. '살생부'에 오른 직원들은 진급 차수가 되어도 진급을 시켜주지 않았고, 실제로 두 번의 누락 후 자진 퇴사했다. 근무 태만과 책임감 없는 선배들은 내 머릿속에서 '무능함'의 대명사였다. 그런 내가 그들과 같은 처지가 되다니 믿기 어려웠다.

퇴사를 결심하고 창업 박람회에 다녀왔다. 치킨과 떡볶이로 인기를 끌던 프랜차이즈 본사 직원과 상담하고, 부산에 있는 해당 매장 세 곳에서 음식을 시켜봤다. 치킨뿐 아니라 떡볶이도 가성비가 좋아 매혹적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초량에 10평 남짓한 좋은 매장도 눈에 띄었다. 부동산에 가서 물어보니 권리금 3천만 원, 보증금 5천만 원, 월세 200만 원이었다. 인테리어비와 집기를 사면 약 2억 원이 들었다. 아무리 잘 돼도 월에 4백~5백만 원 가져가는 게 최대치로 보였다. 만일 장사가 되지 않으면 인건비조차 건지기 힘들어 보였다. 가게의 위치와 인테리어 견적이 확정된 후 임대차 계약을 하기 직전 아내가 강하게 반대했다.

“오빠 급하다고 식당을 차리는 건 아니야?” “아니야, 이건 분명 잘 될 수 있어.” “오빠 잠재력이 있어, 다른 일 해봐. 식당일은 오빠랑 맞지 않아.” “너까지도 나를 무시해? 왜 내가 식당을 못한다고만 생각해?”

식당을 하려는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아내와 당시 많이 싸웠다. 아내와 심하게 싸운 후 한동안 끊었던 담배를 물었다. 콜록콜록, 목이 따가워 기침이 나왔다. 회사에서 급하게 내쳐진 선배들이 떠올랐다. 그들 대부분 프랜차이즈 식당을 차렸다. 첫 몇 개월간은 장사가 그럭저럭 잘 되었지만, 곧 경쟁 업체가 생기고 매출 하락으로 큰 손해를 보고 폐점했다. 그들의 실패를 보면서 급하게 창업을 해서는 안 된다고 다짐했다. 그런 내가 그 상황이 되니 선배들과 똑같은 길을 가고 있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았다. 결국 식당 창업은 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 말하지만, 당시 창업을 했다면 난 쫄딱 망했을 것이다. 그 뒤 정확히 3개월 뒤 코로나가 발생했고 식당은 직격탄을 맞았다.

여전히 회사를 나와서 무엇을 할지가 막막했다. 회사를 열심히 다니는 것도 아니고 퇴사를 하려니 무엇을 할 배포도 없었다. 회사와 가정만을 바라보고 달려온 지난 10년 동안 난 나를 숨겨오는 데만 익숙해졌다. 심지어 회사에서 1시간의 점심시간에도 뭘 먹고 싶은지 귀 기울일 시간도 없이 그저 옆에서 많이 시키는 메뉴로 따라간다. 씹는 건지 삼키는 건지도 모르게 10분 안에 식사 시간이 끝난다. 밥을 먹고 카페에 들러 커피를 주문한다. 이번에도 “뭐 마실래?” “같은 거,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 줘요.” 아메리카노는 커피가 아니라 소화제가 된 지 오래였다. 지난 10년간 모든 결정을 회사에 맡긴 내가 직장을 벗어나 새로운 일을 한다는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었다. 직장을 벗어나 무엇을 하겠다는 큰 목표보다 나라는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자신에 대한 회복이 우선이었다.

가장 쉬운 질문으로 시작했다. “이번 주말 뭐 하고 싶어?” 도저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래서 질문을 바꿔봤다. “내가 싫어하는 게 뭐야?” 그러자 몇 가지 큰 것들이 머릿속에 구체적으로 잡혔다.

내가 싫어하는 것:  

월요일 출근

과음하는 회식

급하게 먹는 점심

이를 반대로 바꾸어 봤다.  

월요일 출근 → 월요일 연차

매주 과음 회식 → 퇴근 후 사우나 휴식

급하게 먹는 점심 → 내가 좋아하는 돈가스집 가기

급하게 먹는 점심을 반대로 바꾸니 내가 좋아하는 돈가스 집에서 여유롭게 식사하고 싶어졌다.

점심 시간 홀로 가고 싶었던 돈가스 집에 앉아 제공된 모닝빵과 스프를 먹고 돈가스를 음미하며 먹었다.

점심 시간이 바뀌었을 뿐인데 기분이 무척 가벼워졌다. 그럼 조금 더 어려운 걸 도전해보기로 했다.

“매주 월요일 새벽까지 술 마시고 다음날 숙취에 시달리기 싫어”를 반대로 하니 “정시에 퇴근해서 목욕을 갔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보며 쉬고 싶어”로 바뀌었다. 회식 당일 5시, 회식에 못 간다고 이야기하려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거 하나 원하는 대로 못 하면 지금 인생이 바뀔 수 없어”라는 강렬한 내면의 소리가 들렸다. 난 팀장의 자리로 다가가 “팀장님, 오늘 회식 일이 있어 참석 못하게 되었습니다.” 팀장은 눈을 크게 뜨며 “아니, 오늘 같은 날은 시간을 좀 비워 놓지”라며 가볍게 핀잔을 줬다. 회식 모임을 뒤로 하고 퇴근길에 마음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예전에 회식에 불참하게 되면 “아, 팀장한테 찍히면 어쩌지” 소외감과 불안감이 덮쳤지만 내가 원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가슴 안에 얼음골의 계곡물이 쏟아지듯 시원했다. 이전 내 머릿속에 점심 시간 개인적으로 먹기, 회식 불참은 대역죄라는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막상 점심 때 혼자 먹어보고 회식에 빠져도 팀장에게 미움을 받거나 왕따를 당하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내가 결정을 내리고 선택을 한 만족감에 자존감이 조금씩 생겨났다.

조금 더 어려운 일에 도전하기로 했다. 그건 월요일 출근이다. 월요일은 6시까지 출근해서 한 주의 실적을 정리하고 다음 주 활동 계획을 세우느라 그 어느 날보다 바쁘고 스트레스가 심하다. 그래서 정말 큰일이 있지 않는 이상은 월요일 연차를 쓰지 않는다. 난 용기를 내서 월요일 연차를 냈다. 당연히 내가 맡은 부분을 동료들에게 인수인계를 확실히 하고 나왔다.

일요일 오후가 되면 회사 나갈 생각에 소화조차 되지 않아 맛있는 삼겹살도 이게 껌인지 종이인지 맛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월요일 연차를 낸 일요일, 점심에 먹은 퍽퍽한 닭가슴살이 투풀 소고기보다 훨씬 맛있었다. 일요일 밤마다 불면에 시달려야 했는데, 침대에 눕자마자 꿀잠을 잘 수 있었다.

월요일 해가 뜨기 전 회사에 도착했다. 난생 처음 월요일 연차를 내고 아이들 등원을 시켜줬다. “우리 동네에 이렇게 애들이 많았던가?” 등원을 시키고 따스한 햇살이 비치는 카페의 창가에 앉아 아메리카노를 마셨는데 

깜짝 놀랬다. " 아메리카노가 이렇게 맛있었나?" 소화제로 여겼던 아메리카노가 인생을 풍요롭게 해주는 마법의 차로 변했다. 

행복감이 밀려올라 왔다. 바쁜 회사 생활을 하느라 소중한 일상의 행복을 만끽하지 못 했다는 깨달음이 왔다. 그리고 내 마음속 깊은 울림이 들렸다. “퇴사 후 급하게 무엇을 할지 찾기보다, 즐겁게 사는 방법을 생각해봐.” 내 삶은 참고 견디고 절제하는 삶이었다. 즐거운 삶이란 나에게 사치였다.

회사에서 인정받고 더 높은 곳으로 진급하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는 좁은 생각에 갇혀있던 나는 즐거움을 쫓아가기로 했다. 가장 먼저 가고 싶었던 '제주도 올레길"가기로했다. 

이틀간 연차를 하루에 4만 보씩 3일을 걸었다.

올레길에서 만난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광은 순수한 열정을 회복 시켜줬다.  

제주도 여행 이후 나의 선택에 대해 자신감이 더해지자  “부동산 경매”를 해보자는 강렬한 마음이 싹 트기 시작했다.

회사를 퇴직 후 자신이 하고 싶은 캠핑을 맘 껏 다니며 자신의 즐거움을 발견한 케이 수환처럼 

(캠핑 전문 유투버) 나 역시 마음속에 우러난 꿈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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