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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은 감사의 말

by 단호박 Jan 30. 2025

지금은 움파룸파가 되어 버렸지만 한 때 로맨틱 코미디를 주름잡았던 휴 그랜트는 젊은 시절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 커리어의 모델은 런던의 시내버스다. 네 시간 기다려도 한 대도 안 오다가 스무 대가 한꺼번에 오는...

박사과정 3년 차가 될 때까지 아직 출판된 논문이 없던 대학원생인 나는 무릎을 쳤다. 그래, 이것이 나의 커리어 모델이구나. 그리고 그 해, 한 대의 버스가 지나가고 나니 드디어 버스가 오기 시작했다.

      


버스가 오기 시작한 데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그 몇 해 전 A 선배님과 일을 같이 시작한 것이 주요했다. 그때 나는 석사과정을 마치자마자 공동 연구를 위해 영국으로 파견을 갔다가 막 돌아온 참이었다. 마침 새로 연구 주제를 정해야 할 시점이어서 지도교수님의 제안으로 A 선배님이 새로 시작한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되었다. 선배님은 그 당시 박사학위를 막 받은, 굉장히 연구를 잘하고 좋은 논문을 많이 쓴 분이었는데, 당시에는 조금은 무뚝뚝하고, 할 말은 (거침없이) 하는 사람이라는 후배들의 평을 들었던 것 같다. 스토브리그의 백 단장 같달까...


하여튼 새로운 팀이 된 우리는 구조가 변형된 DNA를 회복시키는 단백질이 특정 DNA를 어떻게 인지하는지에 대해서 연구하기 시작했다. 선배님은 DNA의 구조 변형에 대해 오래 연구를 해왔기 때문에, 처음 시작하는 나에게 샘플 준비부터 가르쳐 주었다. 더 할 것도, 뺄 것도 없이 꼭 필요한 얘기만으로. 논문에는 간단한 한 줄로 기록되는 부분이지만 실제로는 굉장한 노력이 드는 일이었다. DNA를 직접 합성기로 합성하고 DNA의 구조를 변형시키는 처리를 한 후, 정제과정을 거쳤다. 대량의 DNA를 합성하고, 처리하기를 반복했다. 칼럼 앞에 하염없이 앉아서 DNA 가 분리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각종 소설책을 무지막지하게 읽어댔던 기억들이 스냅숏처럼 남아 있다.      


샘플을 만들고 나서는 단백질과 DNA 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실험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는 주간, 선배님은 야간에 일했다. 마치 2교대 근무하듯이. 저녁 식사 후 실험실에서 실험한 내용, 특이사항, 데이터 등을 얘기하고 나는 퇴근을 하고 그때부터 선배님이 일을 했다. 서로 만나지 못했을 때는 메모를 남기고 이어서 계속 실험을 했다. 엄청나게 효율적인 방법임에는 분명했다. 하지만 밤에 일하는 사람은 엄청 힘들었을 것이고, 아마 요즘 대학원에서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 같기도 하다. 어쨌든 우리는 밭에서 당근이나 무를 뽑듯 데이터를 쑥쑥 얻었다. 이 연구를 하면서 가지고 있는 가설과 비교하며 데이터 분석을 통해 중요한 포인트를 찾아내는 법을 많이 배웠다. 실험하기 전에 계획을 잘 세우고 어떻게 하면 얻은 데이터를 남김없이 쓰는지도 배웠다. 이런 선배님의 가르침 덕분에 내 커리어의 다음 버스들이 오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박사 후 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친 선배님은 대학에 임용되어 실험실을 꾸리고 학생들과 좋은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나도 우여곡절 끝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논문 쓴 데까지 보냅니다”. “내용 추가한 파일 보냄. 그림 추가 바람” 

아직 실험실이 본격적으로 돌아가기 전 이런 메일들이 많이도 오고 갔다. 2 교대 실험을 하던 시절처럼 서로 각자의 일을 묵묵히 하며 하나의 결과를 이루어 갔다. 내 실험실엔 아직 학생도 실험장비도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주로 혼자서 컴퓨터로 할 수 있는 부분을 맡아 연구에 참여했다. 독자적인 연구를 하기 어려웠던 그때, 이런저런 연구를 같이 하자고 선배님이 독려해 주지 않았다면 연구의 끈을 이어가기 어려웠을 것이다. 선배님과 같이 쓴 논문들도 많이 출판되었다.      


점점 더 큰 규모의 연구사업을 수행하고, 우수한 논문들을 발표하고, 학회나 학교 일까지 해내느라 선배님은 항상 바빴다. 나는 실험실 셋업을 하고 연구비 수주를 위해 노력하기 시작하면서 이렇게 바쁜 분께 별의별 질문을 해댔다. 한정된 예산에서 어떤 장비부터 사야 할지, 연차보고서에 달성율은 어떻게 적어야 하는지, 논문 투고할 때 리뷰어로는 누구를 추천하면 좋을지... “참고할 만한 연구계획서 좀 보여주실 수 있나요?” “선배님 실험실에 실험하러 가도 돼요?” 등등. 막 자맥질을 배운 새끼오리같이 질문을 쏟아냈다. 나 같으면 귀찮았을 것도 같은데, 선배님은 귀찮은 기색 없이 항상 간결하면서도 최선의 답을 해주었다. 연구나 학교 생활에 어려운 점들을 물어볼 수 있는 분이 계셔서 항상 마음이 든든했다.      


실험실이 자리를 잡으면서 선배님께 전처럼 질문을 하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일은 점점 줄어들었지만, 안 풀리는 문제들, 인간관계, 아이의 진로나 교육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학회에서 만날 때마다 항상 반갑게 인사하고, 읽어보면 좋을 논문이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 연구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알고 지낸 시간이 쌓여가면서 이야기도 점점 풍성해졌다.  각자 제출한 논문의 수정을 위해 하고 있던 실험이 예상보다 오래 걸려서 둘 다 제출일자를 미루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며 너털웃음을 짓기도 했다.  2023년 10월이었다.      


그 해 가을에는 이상하게 카카오톡 메시지의 1이 없어지지 않다가, 갑작스레 아프시다는 연락을 받았다. “병원에 계신 줄 몰랐어요, 얼른 쾌차하세요.”라고 보낸 메시지에도 오래 1이 사라지지 않았다. 젊고 건강하셨기에 곧 회복하실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 찾아뵙지 않은 걸 두고두고 후회하고 있다.


작년 1월, 장례식장에서 유가족분들께 위로의 인사를 전하면서도 믿기지가 않았다. 지난 1년간 실험실 선후배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선배님과 같이 하던 학회 일을 하면서도, 현실감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수정 중이었던 선배님의 논문이 유수의 저널에 출판되었다. 감사의 글에 선배님 추모 글을 넣은 내 논문도 출판되었다. 시간이 이리저리 흘러, 선배님의 제자들을 만나 서로 안부를 묻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선배님이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이 여전히 실감 나지 않았다. 여러 계절 동안 나는 혼자 강변을 산책했다. 항상 감사했다고 한 번 더 말하지 못한 후회가 강바람을 타고 자꾸 밀려왔다.        

출처: Ri_Ya on Pixabay출처: Ri_Ya on Pixabay

선배님, 학문적으로, 인간적으로 선배님께 많이 배웠습니다. 제 인생에 중요한 결정을 할 때마다 꼭 필요한 조언을 해주셨어요. 더 많이 감사드렸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후회됩니다. 훌륭한 연구자이자 멘토셨던 선배님을 잊지 않고 오래 기억하겠습니다. 부족하지만 저도 후학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선배님, 부디 평안하세요.


커버이미지: Pexels on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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