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은 미래의 '나'의 모습이다.
19.09.13 일기
바라던 것들이 하나씩 이뤄지는 것 같아 참 설레고 감사하다. 창밖만 멍하니 바라보는 어르신, 휴지를 애지중지하는 어르신, 강아지 인형과 행복하게 대화하는 어르신을 보며 생각이 많아졌다. 무엇보다 지금 이 순간이 감사하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어떤 말로도 벅차지만 앞으로 난 잘해갈 수 있을 거야!
화이팅!
출근 첫날 토사키상이 물어보았다.
"어르신 케어도 할 수 있겠어? 아니면 보조로 일을 할래요?"
"보조로 일하면서 케어 일을 배우고 싶습니다."
“알겠어요. 케어 일을 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말하세요.”
일본 요양원에 들어오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벅찬 순간이었다. 일본어도 부족했고, 어르신 케어는 한국에서도 해본 적 없기 때문에 무조건 보고 배우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보조인 내게 주어진 일은 화장실 청소, 침대 시트 갈기, 설거지, 거실 청소, 빨래, 식사 도움 등 일상생활 도움 및 주변 환경 정리이다.
내가 맡은 3층 어르신들은 네 분의 와상어르신을 제외하고 모두 거동이 가능한 어르신이었다. (층에 18명 어르신이 생활하고 거실이 2개로 나눠져있다. 9명/ 9명) 모든 방은 1인실이었고 청소할 때마다 어르신 방을 들어가면 각각 다른 가구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알고 보니 그룹홈에 오기 전 집에서 사용했던 가구를 가져와 익숙한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함이었다. 어떤 어르신은 갈색 서랍장, 어떤 어르신은 맨 아래 서랍장이 고장 났음에도 그대로 두고 사용하셨다. 한 어르신은 불상과 향을 피우는 물건이 있었는데 치매 증상이 심해 자주 깜빡하는 와중에도 방에 들어갈 때 손을 모아 기도하는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방에 걸려있는 어르신의 젊은 시절 사진이다. 내 나이대로 보이는 사진 속 모습. 지금은 짧은 머리에 편안한 일상복을 입고 웃고 계셨지만 사진 속에는 긴 머리와 스커트, 셔츠를 입고 무표정으로 카메라를 쳐다보고 계셨다. 사진을 보고 있으니 어르신이 우리 할머니이자 우리 엄마, 그리고 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같은 젊었던 시절을 지나 지금의 모습이 되었을 어르신을 보니 더 마음이 가고 잘 돌봐드리고 싶었다.
어르신이 미래의 나라고 생각하기.
그것이 어르신을 어떻게 케어해야 할지에 대한 나의 첫 마음가짐이었다.
1. 호기심 많은 남자 어르신
- 음식을 씹기 어려운 어르신은 반찬이 갈아져서 나온다. 밥은 흰 죽으로, 물과 국은 토로미(연하보조제) 가루를 섞어 젤리처럼 만든다. 특히 생선구이가 나오는 날에는 생선 살을 발라내 물고기 모양으로 반찬이 나온다. 다 갈아져 있어서 원래 모습을 잃었지만 물고기 모양을 보고 생선반찬임을 아실 것이다. 그런 작은 부분이 어르신을 배려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그래서 설거지를 할 때 음식물 쓰레기통 위에는 항상 말랑말랑 젤리가(토로미) 있다.
한 남자 어르신이 "수고 많으십니다~" 하며 내 옆으로 다가왔다.
낮은 목소리로 신사처럼 말씀하셔서 '인지가 돌아오신 건가?' 싶었는데 갑자기 손가락으로 음식물 쓰레기를 통통 찌르며 웃으셨다.
"이거 재미있네요~"
젠틀한 목소리로 웃으며 젤리 반찬을 만지는 어르신을 어찌 말리겠습니까~
2. 보석을 좋아하는 욥세여 어르신
- 거실 청소를 하고 있는데 보석을 좋아하는 여자 어르신이 소파에 앉아 나를 미소 지으며 보고 계신다.
"있잖아. 중국인이야?"
"아니요. 한국인입니다~"
"아~ 욥세여(여보세요)~ 욥세여(여보세요)"
"오! 한국말 잘하시네요?"
"드라마에서 봤어. 욥세여 욥세여~ 하하"
어르신이 나에게 마음을 열어주신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거실 청소를 끝내고 빨래를 하기 위해 돌아다니다가 또 욥세여 어르신을 만났다.
"있잖아. 중국인이야?"
"아니요~ 한국사람입니다~"
"욥세여~ 욥세여~"
소파 지나갈 때마다 나는 중국인과 욥세여를 무한반복으로 들었지만 그래도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