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숲
1
한 올 한 올 실바람 모여들어
성긴 바람 댓잎 아우성을 부른다
툇마루 달린 메주 덮은 댓잎은
바다를 닮아 파랗고
대숲에 걸린 달에 놀란
강아지 짖어 대는 밤
안개는 스멀스멀 대숲을 향하여 기어간다
2
조카 녀석 잠든 얼굴엔
대낮 소꿉장난이 숨어있고
어머니 마른기침
대숲 가르며 비명이 된다
함석지붕 처마 밑으로
달빛은 잠식해 들어와
자정 알리는 시계추
깨우는 시간
3
뜰에 나서 귀 기울이면
풀벌레 기척 소리
비둘기 깃 퍼덕이는 소리
몸 비비며 울어대는
댓가지 요란함이 들려온다
대숲 너머 나 뒹구는 쟁기만
새벽을 부르고
4
길 따라 떠나신 할머니 모습
대숲에 어릴 때
먼바다에서 들려오는
고동 소리 정겹다
청댓잎 숨 몰아쉬며 잠들어도
뿌리는 부지런히 수액을 더듬는다
대숲에 달빛 숨어드는 밤(1985, 공주교대 계룡문학상 당선작)
아침
회색 천을 두른 안개가
어둠을 씻으며 산길로 오면
동편 하늘은 우물가에서 물 긷는
누이의 홍조 띤 얼굴
새벽별 하나둘씩
서쪽 하늘로 넘어가는
채 가시지 않은 어둠
둥지의 새들조차 단꿈에 잠긴
조용한 숲길 밟으며
어머니 벌써 바다로 가시나요
추위에 떨던 바다
아침이 옴을 즐거워하여 마중 나가고
검은 여 하늘을 우러르는데
어머니 발걸음을 재촉하지 마세요
포구를 떠나는 뱃고동 수 놓고
물새 떼 끼룩대는 갯벌에는
분명 긴 햇살이
천천히 손님처럼 찾아들 것입니다(1986)
저녁 바다
마음에 빈자리 너무 많아
찾아온 저녁 바다 어느덧
낙조落照의 꽃이 피고 있다
노을에서는 오렌지 향내가 난다
지금쯤 남녘바닷가 어느 조그만 농장의
오렌지 향기는 바다를 물들이고
향기에 취한 여행자는 명상에 잠겨
해변을 거니리
갯모롱이 돌아 어부의 집 한 채
바구니 인 어미는 밀물을 등지고 오고
아이는 모랫벌을 달려간다
잔잔한 웃음 위로 마주 서는 모녀母女
어깨 위로 출렁이는 금빛 물결
별이 바다 위로 떨어지는 밤
어둠 헤치고 불타는 수평선 고깃배 무리
팽팽하게 당겨오는 그물의 중량감에
함박 웃는 어부
탄성하는 바다
빈 가슴 채우고 돌아오는 귀로에
이슬이 내리고 아득한 기억을 넘어
동쪽 하늘로 보름달이 뜨고 있다(1986)
가을밤
가을비 푸른 속살 비치며 내리는 시골집
아버지는 콩걷이 녹두걷이 벼바심 걱정으로
사랑방 담배 연기 자욱하고
형 내외 새끼 꼬는 소리
귀뚜라미 울음 속에 연기처럼 피어난다
비릿한 갯내음 들창문 두드리니
주낙 놓으러 바다 나간 삼촌이 보고 싶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잠은 안 오고
마실 간 어머니 마중이나 가 볼까
비는 내리는데
우두둑 감 떨어지는 소리
먼저 가신 그분들의 발자취인가
밤이 깊을수록 촛농은 쌓이고
촛불 아스라이 흔들리는 긴 가을밤
어느메쯤 새벽닭은 우는가
속닥대는 형 내외 새끼꼬는 소리만 끝없고
마실 간 어머니는 왜 이리 늦으실까
갯바람 불어와 들창문 두드리는 바닷가에
밤비는 내리는데(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