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성웅 Oct 20. 2023

멋진 옷과 잘생긴 외모에 목메는 사람들

'옷이 날개'인 사회

천박한 자기 과시보다 내적인 만족

옷은 목적과 용도에 맞게

웃는 얼굴, 굳은 얼굴

외모 지상주의



'옷이 날개'인 사회

현재도 과거도 '의식주(衣食住)'는 한국인의 기본적인 욕구였다. 셋 중에서 '옷'이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은, 우리 조상들이 과거부터 양반은 의관을 정제해야 한다라며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더라도, 먹는 것보다 체면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복장은 중요한 ‘예의’로서, 신분과 위상의 표시였다.


조선시대 의관을 정제한 양반들

세상이 그러니, 각종 관혼상제 등 경조사에는 옷 색깔까지 고려하여, 축하나 위로의 마음을 세심하게 배려하는 게 양반의 도리였다. 자연스레, 사람들은 '겉치레'에 따라 대하는 태도와 예우가 달랐으니, 누추하거나 남루한 옷을 입으면 아무 데서도 행세할 수 없었다. 그만큼, 역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우리에게 ‘옷은 날개’였고, '옷매무새는 모두의 관심'이었다. 


이처럼, 좋은 옷을 잘 차려입는 사람이 대우를 받는 사회였으니, 지금도 더 좋은 옷을 찾는 이들로 옷가게는 늘 붐빈다. 무슨 행사가 있으면, 모두가 양복과 양장으로 챙겨 입고, 가방과 신발도 구색을 갖춘다. 심지어, 여성들은 '명품 가방을 덧붙여야 패션의 완성'이라며 자신의 아름다움에 더하여 돈을 과시하기에도 여념이 없다. 남보다 못하거나 다르면 괜스레 주눅이 든다. 남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루이뷔통', '샤넬', '에르메스', '구찌' 등 진품인지, 짝퉁인지 모를 수많은 명품 브랜드가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그리고, '자기 과시'용으로 좋은 옷을 차려입었으니, 대놓고 자신의 옷을 남이 알아주기 바란다. 상사든, 동료든, 아랫사람이든 우리의 일상에서, 입술에 침도 안 바르고 지나가는 칭찬이나 영혼 없이 겉만 번드르르한 말이 남발되는 이유다. 


2022년 국가별 1인당 명품 소비액 비교 

2023년, 명품 브랜드는 원자재값 상승 탓이라며 제품 가격을 또 10%씩 인상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이 백화점에서 명품을 사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서고 있으니... 제품 값을 올려도 매출은 늘어난다. 미국이나 서구 등 GDP가 높은 서구에 비해서 인구대비 명품 매출량은 우리가 결코 못지않다. 2023년 1월, '모건 스탠리'는 인구 1인당 명품 소비 1위 국가로 한국을 지목하였다. 높은 인플레에도 전 국민이 명품에 열광하는 이유가, 제품의 가성비 때문일까? 아니면, '자기 과시'를 위한 한국인의 명품 사랑이 유별나서일까? 그런데, 어디? 옷뿐인가? 신발이나, 시계, 자동차도 그랬다. 우리에게 겉치레는 '자존심'이었다. 


천박한 '자기 과시'보다 내적인 만족

이에 비해, 서구인이 유행을 타고 비싼 옷은 입는 건 ‘자기 과시'용이라기보다 ‘자기만족'용이라는 게 일반적이다. ‘좋은 옷을 입으면 스스로에게 기분이 좋다’는 것... 그뿐이다. 그들도 명품을 알지만, 단지 명품이라는 이유로 걸치는 것이 아니며, 그런 내색도 하지 않는다. 당연히, 자랑을 하거나 그런 걸로 대화를 삼지도 않고... 그냥, 개인의 취향에 따라 디자인을 보고 사는 거지, 값을 보고 사는 게 아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들 속에 살면은 비싸고 좋은 옷을 입은 사람에게 내가 주눅 들 일도 없고, 내 옷이 주위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괜히 자책할 것도 없다.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충분히 자신만의 멋을 내면 된다. 


서구의 문화를 이해하면, 단지, '좋은 옷을 입고, 고급 차를 운전하는 것'으로, '자신이 남보다 낫다'라고 생각하거나, 남다른 대우를 받으려고 하지 않는다. 겉치레로 나의 수준을 과시하려는 건 유치한 난센스이니까. 불필요한 과시욕은 ‘물질만능주의’의 한 단면일 뿐이다. 


역대 대통령부인들

누구나 돈을 동경하지만, 자아가 존중되는 성숙한 사회일수록 '가진 것'으로 신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때, 전, 후임 대통령 영부인들의 옷바람이 언론의 중심에 섰었다. 누구는 공금으로 옷을 사거나 빌려 입었다고, 누구는 대국민 홍보용으로 중소기업 무명 브랜드를 입었다고 언론들은 입방아를 찧어댔다. 사실 여부를 떠나, 지도층 인사나 유명 인사라면 허풍선처럼 천박한 '자기 과시'용이 아니라, 당당하게 '자기만족'용으로 옷을 입으면 어떨까?  


옷은 목적과 용도에 맞게

그런데, 오스트리아에서는 각종 행사 복장 때문에 매우 예민하였다. 공적 행사는 물론, 결혼식 등 각종 사적 행사 초청장에도 일시, 장소, RSVP(참석여부)와 함께, ‘Attire(옷)/Coat’ 란에서 복장을 캐주얼, 모자, 외투, 신사복, 예복, 만찬복, 연미복 등으로 자세히 알려주는 탓이다. 행사 성격에 맞추어 옷을 입어달라는 것인데, 사실, Ball (무도회)등 사교행사에서는 옷이 '비싸냐? 싸냐?'의 문제가 아니라 용도에 맞는 옷이나 신발이 아니면 행사기간 내내 지내는 시간이 어색하다. 특히, 무도회처럼, 춤추는 장소에서는 요란한 장신구나 아름다운 우리의 한복은 거추장스러울 수도 있다. 가끔 결혼식장에 가보면, 반바지 차림에 헐렁한 옷을 입고 하객으로 오는 이들도 있다. 아무리, 신랑, 신부와 친하고, 자신의 개성이 독특하다 하더라도, 지나치게 격식을 파괴하는 복장은 신랑, 신부를 축하하는 예의로 보기 어렵다. 행사 성격에 따른 격식을 차릴 때는 차려야 한다. 


미군 예복과 북한군 장성예복

이런 '겉치레 격식'을 따지는 데는 과거에는 군대만 한 곳이 없었다. 군복의 화려함은 각개 병사에게 자긍심(만족감)을 불어넣었고, 같은 유니폼으로 대형을 갖추고 커다란 집단을 구성하면, 그 위세 당당함으로 상대의 기를 꺾을 수 있었다. 거기에 군복의 강렬한 색상은 더욱 크게 보이는 작용도 하였다. 


과거, 나폴레옹 전쟁 당시 전쟁은 숫적인 우세가 승패를 좌우하는 방식이었다. 전쟁터에 동원된 양쪽 군대 수 천명의 병사들은, 인접 전우가 대포나 소총 사격에 쓰러져 가더라도 북과 나팔 소리에 맞추어 적을 향해 계속해서 진군하여, '시각적'인 세를 과시하였다. '옷이 날개'였던 셈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군대에 화려함은 사치다. 먼저보고 먼저쏘니, 적의 눈에 띄면 바로 죽는다. 이제는, 철저히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위장용 군복을 입는다. 더 이상 공간적인 세 과시는 무기체계의 발달로 그 의미를 잃었다. 군복의 용도나 목적이 바뀐 것이다. 위의 북한군 장성 예복처럼 주렁주렁 매달린 각종 훈장 과시는 우스꽝스러운(?) 지나친 허세에 불과하다.  


웃는 얼굴, 굳은 얼굴  

그런데, 옷만 잘 입으면 뭐 하나? 남에게 부드러움을 줘야 한다. 우리의 언행과 태도는 인간으로서 동정심을 갖거나, 부끄러워할 줄 알며, 겸손하게 살고, 옳고 그름을 가릴 줄 아는 데서 우러난다. 그리고, 개인 간 소통에서 말만큼 중요한 게 ‘표정’과 ‘제스처’인데, 우리의 표정은 서구인에게 다소 ‘무표정’하게 보이는 듯하다. 

'일제의 유산일까?' 우리는 어릴 적부터 친구 사이에도 ‘헤프게 실실 웃는 아이’나 '말이 많은 아이'는 만만하게 대했다. 반면에, '일본 무사'처럼 입을 한일 자로 굳게 다물고 다소 긴장된 표정을 지으며 과묵한 아이를, 의지가 강한 남자로 보고, “저놈 만만치 않은데...”라며 다소 조심스럽게 대하였다. 그래서였는지, 어느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지 않겠냐마는, 이런 이유로 일부 가정에서는, ‘자식은 강하게 키워야 한다’라며 아빠부터 항상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잔정을 표시하는 데 인색한 가정에서 성장하였던 아이들이 많았다. 


반면에, 서구인은 일부러라도 웃는 표정을 짓는다. 모두가 웃는 사회가 자신도 편안하고, 남도 편안하다. 모두가 긴장되고 굳어있는 사회보다 낫지 않을까?” 뿌리는 대로 거두는 법이다. 미국에서 사는 동안, 초등학교 1학년 둘째 아이는, 미국 여자 담임선생을 무척 따랐다. 그리고, 학교에서 다녀오면 엄마에게 항상 그날의 학교생활을 들려주었다. 그런데, 어느 날은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혼자서 거울을 보며 자꾸만 억지로 웃는 모습을 보여, 엄마가 물어보니, 학교에서 미소 짓는 법을 배워서, '보기에 좋은 웃음'을 찾으려고 여러 가지 모습을 해본다”라고 하였다. 


아이가 부모가 가르쳐주지 않은 것을 선생님으로부터 담으려는 모습도 좋았고, 표정 훈련이 비록, 작은 교육이지만, '평생 동안 아이의 인상을 결정할 수도 있는 일'이라 아이의 그런 시도가 보기에 좋았다. 이처럼, 아이의 미소는 어릴 적 학교에서부터 출발하여서인지, 아이는 그때부터 미소를 참 잘 짓는다. 친구 간 대화 때도, 직장에서도 복도를 지나치며 눈이 마주치는 사람이나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그의 미소를 보는 사람들은 마음이 부드러워질 것이고, 그를 더욱 기억나게 할 것이다. 미소를 잘 지으면, 나 자신도 좋고 남에게도 좋다.  

 

그런데, 대부분 한국인, 특히 여성은 웃을 때 파안대소나 박장대소하기보다 입을 가리고 수줍게 웃지만, 서구인은 입을 가리고 웃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렇게 하라고 배운 적도 없고, ‘있는 모습 그대로’를 나타내니 그럴 필요도 없다. 이처럼, 환경별로 표현 방법은 다소 다르다. 우리와 서구인 중에 어느 쪽이 좀 더 자연스러운지? 성숙한 지? 는 관점에 따라 다르지만, 분명한 것은, 자기만족이 우선인지? 남을 의식하는 것이 맞는지? 는 경륜과 인격에 좌우되는 것 같다. 자기만족은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외모 지상주의

우리의 DNA가, 태생부터 작은 눈과 낮은 코, 각 진 얼굴, 작은 키를 가진 핸디캡 탓일까? 한국인은 얼굴이 예쁘다키가 크고 잘 생겼다는 세간의 평에 목을 맨다. 일부 부모는 초, 중학생 아이의 ‘키 키우기’에 노심초사하고, 고등학생 등 젊은 여성은 화장술도 모자라 성형수술을 하려고 줄지어 기다린다. 자기 만족도 있겠지만, 남의 시선에도 민감한 탓이다. 사실, 우리 조상은 예전부터 높은 관직에 오르려면 ‘신언서판'(身言書判) 즉, ‘신수가 훤해야' 좋다며 ‘훤칠한’ 외모를 중시했다. 결국, 호감 가는 이목구비가 뚜렷한 미남, 미녀에게 ‘올인’했단 이야기로… 능력보다 ‘관상’이 인생 미래를 결정한다는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어쨌든, 부모에게 물려받은 ‘잘생긴 얼굴’은 호감을 줄 수 있으나, 얼굴 생김에 큰 가치를 부여하는 건, '좀.., ' 그렇다.


미스 아메리카 선발대회

이렇게 얼굴에 민감하니, 우리는 별다른 미안함(?) 없이 남의 외모를 쉽게 말한다. 큰 실례인데도... 하지만, 서구인은 외모나 체형을 화제로 삼지 않는다. 너 미인이다라고 해도, “그래고맙다로 그만이다. 미인은 많지만 얼굴로 평가받는 걸 싫어하고, 피부색이 어떠니, 몸매가 어떠니 하는 말은 자칫 성차별이나 성희롱이니 말하지 않아야 한다. 


한 때, 일본에서 '금발(Blond Hair)'이 미인의 조건으로 환영(?)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정작, 백인들에게 금발 미녀는 ‘둔하다’는 약간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미스 아메리카에 선발된 여성 중에 장애인도 있다. 그들은 진정한 미인을 뽑을 때, 외모만 아니라 교양, 인격을 포함하여 여성의 매력을 평가하였다. 이처럼, 미인의 기준은 외모보다 교양과 인격이 중요하다. 자연의 조합으로 우연찮게 얻어진 겉치레만 미인은 불행할 수 있다. 자연은 항상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기 때문이다. 영원한 미인은 없다.  


'최후의 만찬', 레오나르도 다빈치 작

'최후의 만찬'작품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걸작품이다. 그는 중앙에 위치한 예수님의 모델로 지고지순한 19세의 남성을 찾아서 그림을 그렸다. 7년 동안 계속해서 그린 후에, 어느덧 마지막 공백에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를 그리기 위해 악랄한 사형수를 모델로 하여 작품을 완성하였다. 그런데, 이 모델이 7년 전 예수님 모델이었다는 일화가 있다. 가장 착하고 잘 생긴 사내가 7년 동안 가장 나쁜 짓만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얼굴이 악마처럼 변하였다는 것이다.  


미국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이 “40대 이후의 얼굴은 본인의 몫이다라고 했듯이, 외모는 본인의 심성에 따라 변하므로, 항상 웃으며 긍정적이고 친절한 태도와 무엇보다 자신의 노력으로 이룬 실력과 인격이 중요하다. 그리고, 웃는 얼굴이 좋은 인상을 주듯이, '올곧은' 자세 또한, 바른 마음가짐과 더불어 자신을 돋보이게 한다. 그런데, 이런 요소는 의외로 한 인간의 평가에 크게 작용하므로 항상 타인을 의식하고 행동해야 한다.


오래전, 할리우드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My Fair Lady)‘에서 주인공의 ’미천한 말씨'와 '행동‘을 고쳐, '사랑스럽고 우아한' 여인으로 변모시키는 스토리가 나온다. 뿐만 아니라, 서구의 어느 정도의 격식을 갖춘 모임에서는 식탁에서의 자세가 인격의 척도가 되기도 한다. 실제, 역사가 오랜 서구 명문대학의 기숙사에서는 이런 류의 격식 높은 모임을 자주 베풀어 교수와 학생이 교류하는 가운데 자연스레 자세를 배우게 하기도 한다.


이전 08화 서로가 다르게 느끼는 '냄새'와 '소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