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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여유 Dec 08. 2022

우리는 지구별 여행 중이야. 꼭 다시 만나

죽음에 대한 아이와의 아무말 대잔치 2

(죽음에 대한 아이와의 아무말 대잔치 1편에서 이어집니다.)



죽으면 모두 사라지는 걸까.      


“엄마, 죽으면 내가 없어지는 거야? 우리 추억도 사라지는 거야? 그럼 어떡해”     


눈이 퉁퉁 부은 채로 학교에 간다.

어제가 끝이 아니었구나.

9년 동안 걱정만 할 게 아니라 철학책, 종교책 두루 찾아 읽을 걸 그랬다. 모르면서 또 아는 척을 해본다.    


 

"‘나는 죽음이에요’라는 그림책에서는 죽음을 만나도 절대 죽지 않는 게 있대. 바로 “사랑”이야. 우리의 사랑하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가 봐.

파도를 생각해봐. 바닷가에 있는 파도는 생겼다 사라지지만 그 바닷물이 사라지니? 모습만 바뀔 뿐 해변에 파도 모습으로 있던 바닷물은 더 멀리 이동할 뿐이야. 없어지지도 사라지지도 않는다. 불생불멸(不生不滅)"


   

일주일 동안 기다려 온 그 좋아하는 라면도, 게임도 재미없다며 슬픔에 빠져있는 아이.

계속 마음이 쓰여 잠을 설친다. 급하게 찾아본 법륜스님 말씀을 내 마음대로 해석하여 또 아무말 대잔치를 한다. 마법천자문의 주문처럼 외친다. “불.생.불.멸.”     


“엄마, 난 마음만 남는 거 싫어. 지금 모습으로 있고 싶단 말이야”     


또 집이 떠나갈 듯 통곡한다.


“엄마가 우리 OO이 응애응애 애기 때 모습이 사라졌다고 속상해해? OO이는 엄마가 할머니 모습이 되면 지금 모습 사라졌다고 속상해할 거야? 아니지? 중요한 건 마음이야. 사실 (얼굴을 가리키며) 이건 마음을 잘 담고 있는 껍데기일 뿐이지”     


여기서 아이는 한번 더 대충격. 하지만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사랑했던 분들 떠나보낼 때, 특히 화장을 진행할 때 너무 슬펐던 나는 육체에 대해 이렇게 희화화를 해서라도 별 게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남은 사람의 슬픔에 대하여.      


“엄마, 할아버지 할머니 돌아가시면 내가 너무 많은 시간을 견뎌야해”


자고 일어나면 눈물 뚝뚝 흐르며 다시 질문이 시작된다. 언제 끝이 날지.


“일단 학교를 가야 하니 엄마가 수도꼭지를 잠가줄게. 눈 꼬옥. 콧구멍 꼬옥. 귓구멍 꼬옥. 배꼽 꼬옥”

간질간질한지 콧구멍이 벌렁벌렁. 입꼬리가 실룩실룩. 일단 임시방편으로 조치하고 학교에 보낸다.       


   

“엄마, 이제 수도꼭지 다시 풀어줘. 아까 학교에서 풀어질 뻔했어. 밥 먹고 단풍나무 볼 때”

“단풍나무를 보는데 왜 풀어져?”

“우리 같이 피크닉을 못 가는 날이 언젠가 오잖아”

이제는 피식 웃음밖에 안 나온다. 또 아무렇지 않은 척, 별 일 아닌 척 이야기를 풀어본다.    

 

"OO이가 보기엔 할아버지, 할머니가 불행해 보여? 아니지?

할아버지, 할머니도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를 모두 보내드렸어. 그런데도 지금 행복해 보이시지?

그것은 나중에 만날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지금도 사랑하는 가족이 곁에 있기 때문이지. 우리 OO이는 그냥 존재만으로도 기쁨을 주잖아.

아마 우리 OO이도 나중에 크면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이 생길 거야. 지금 생각하면 슬픈 게 당연해. 하지만 그때는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으니 슬픔도 줄어들고 잘 견뎌낼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우리는 꼭 만날 수 있어. 할아버지, 할머니도 지금 가족이 있고, 언젠가 만날 가족이 있기 때문에 늘 행복하신 거야.

지금은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아빠 모두 오래 함께 하려고 매년 건강검진을 받고 있어. 미리 걱정하지 말자"



          

마음끼리 알아보는 법.     


“엄마, 죽어서 마음만 남으면 우리는 어떻게 만나는 거야?”     

죽음에 대해 이렇게까지 궁금해할 일인가.


갑자기 얼마 전 배웠다고 알려준 오감이 불현듯 떠오른다.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오감이지만,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여섯 번째 감각이 있을 것 같아. 육감이라고나 할까.

블루투스로 핸드폰하고 차가 연결되는 것처럼 우리의 끈끈한 마음이 주파수가 잘 맞아서 꼭 알아볼 수 있을 거야. 엄마가 꼭 찾아서 붙어 다닐게. 혹시 귀찮으면 가라고 표시를 해줘"     


내 입에서 툭 튀어나온 육감, 블루투스. 이건 해도 해도 정말 아니지 싶다. 주워 담을 수도 없으니 기억하지 않기만 바랄 뿐.

위로로 시작한 아무말대잔치라지만, 믿기 힘든 허무맹랑한 판타지로 흘러가는 듯하다. 이제 죽음에 대한 대화는 일단락해야겠다.




마침 맑은 하늘에 청량한 공기. 피크닉 분위기 내기 좋은 날이다.

휴가를 내고 햄버거 세트를 사들고 공원 산책을 간다.     


"우리는 집에서 여행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처럼, 지금 이 껍데기를 빌려서 아름다운 지구별 여행 중이야. 그러니 열심히 사랑하고 감사하며 후회가 남지 않게 지내자. 영원히 지구별여행만 하면 너무 지칠 거야. 언젠가 다시 쉬러 갔다가 또 지구별 여행을 하고 싶으면 다른 껍데기를 빌려서 다시 오는 거야. 마음은 그대로라고 하니깐 그게 정말 다행이야. 그래서 엄마는 지금 껍데기까지 욕심부리지는 않으려고 해. 그래도 되지 않을까? OK?"     


“이순신 장군은?”

“이순신 장군도 지금 다른 껍데기를 빌려서 어디선가 지구별여행 중이실 수도 있지”

“응. 우리 다시 만나는 거 맞지?”

”당연하지 “

“진짜 맞지?”

“우리 책장에 있는 철학자 할아버지들은 죽음에 대해 늘 고민했대. 그분들이 오래 연구하고 말씀하신 게 뭔지 알아? 삶은 소중하다. 그래서 후회 없이 지내야 한다. 그런데 우리 OO이는 10살에 생각하게 됐으니 30년 넘게 이득 봤네. 30년 이득 본 파티를 하는 거 어때? 할 거야?”

“음.. 뷔페 갈까?”  

    

‘이제 됐구나.’     


여전히 “엄마, 우리 만나?”에 “당연하지” 대답을 기계처럼 반복하고 있다. 하지만, 극에 달했던 두려움과 무서움이 한 스푼씩 덜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다행이다.


아이를 위해 아무말 대잔치를 하며 신기하게도 나 역시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조금은 치유된 듯하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이 더욱 소중하고 감사해진다.



그렇다. “뭣이 중헌디

책 한권이라도 스스로 읽었으면.  오늘은 제발 계획대로 하루를 잘 보내봤으면.

수시로 끓어 오르는 마음을 이렇게  내려놓게 된다.

나에게 와준 것만으로도 고맙고 소중한 우리 아이. 후회 없이 사랑하자.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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