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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우비 Nov 13. 2024

퀴어 커플을 위한 결혼식의 모든 것

퀴어 웨딩 A-Z

1.

2005년에 처음 만났을 때 오스씨의 나이 45, 내 나이 33이었다. 그는 부산에서, 나는 서울에서 살고 있었다. 우리는 주로 육체적 관계를 위해 주말에 만나는 사이로 시작했는데, 중간 지점인 대전에서 만난 어느 날, 난 선언했다.

"안 되겠다. 이런 식은 싫다. 난 동거까지 가능한, 진지한 만남을 고민하는 사람과 만나야겠다. 당신의 선택은?"

그는 한 번도 누군가와 같이 사는 것을 고려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요? Go예요, stop이에요?"

우리는 일단 사귀기로 하고는, 1년이 지나 동거를 시작했다.

사귄 지 십 년이 됐을 때, 또 난 선언했다.

"더는 못 참아. 당장 가족에게 커밍아웃하던지 헤어지던지 해!"

그해 말 오스씨는 가족에게 커밍아웃했다.

가족들의 반응은... "너네 그렇고 그런 사이로 같이 살고 있는 거 다 알고 있는데 뭘 새삼스럽게 말하니?" 셨다고.

그렇게 우리 사이는 가족에게 공식화되었다.


세월은 또 흘러 흘러, 내년이면 우리가 함께한 지 이십 년이 된다.

한 사람과 이십 년을 살다니! 결혼하지 않고 이십 년을 함께 한 부부라고? 스스로 얼굴에 금칠하는 격이지만, 이건 정말 "와, 대단해!" 손뼉 치고 싶다. 이성애자 부부라도 결혼 안 하고 이십 년 살긴 힘들 거다. 하물며 보통 이십 년인가! 행여나 대놓고 꽁냥꽁냥 하기라도 하면, "너네 무슨 사이야?"라는 질문이 따라오니 남들 앞에서는 반드시 '사랑하지 않는 척' 해야 하는, 그 어려운 미션을 7,000일 동안 해 온 거다. 어떤 수배자도 이렇게 잘 숨기며 살 수 없을 거다. 이 정도면 공소시효 만료해 줄 거다.

정말, '부부 협회' 같은 곳이 있다면 우리에게 상 줘야 해!

물론 줄 리가 없다. 그들의 사랑은 밴댕이 소갈딱지만 한 크기인 데다 편협하기 이루 말할 데가 없어 우리를 담을 그릇이 안 된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상을 주기로 했다.

우린 이십 주년을 기념해 결혼식을 하기로 했다.


2.

종종 말한 적이 있었다.

"우리도 결혼식 하자."

오스씨는 희미하게 웃는다. 사실상 "우주여행 가자." 같은 말이니까. 나도 습관처럼 내뱉는 말일 뿐이었다. 확실히 작년(2023년)만 해도 우리에게 결혼은, 개화기 사람들이 동경하던 서양문물 같은 거였다.

그런데, 올해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결정으로 동성 부부도 한국에서 사실혼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면서, 개화기 조선인이 순식간에 21세기 세계 시민이 될 길이 열렸다.

나이 든 아저씨들이 오는 게이바나 다니고, 이반시티(최대 게이사이트)에서 야한 게시물이나 읽고 있을 때는 몰랐는데, 적극적으로 현실과 싸우는 사람들 쪽으로 눈을 돌려보니 이미 많은 게이 부부가 결혼식을 올리고 있었다. 특히 자국 국경 내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외국인 동성 커플에게 결혼증서를 주는 나라들이 많아지면서 해외에 나가서 결혼식을 올리고 증서를 받는 커플이 꽤 많았다.

그 증서, 나도 가지고 싶었다.

"내가 뭐가 부족해서 그까짓 증서 하나 못 가지는 삶을 살아야 해?"

주어진 조건에 순응하면서, 현재와 적당히 타협하면서 살기 싫은 나의 뾰족한 마음에 제대로 불이 붙었다.

'결혼 증서를 받기 위해 미국(하와이)에 가자.'는 나의 주장에 오스씨는 '하와이 여행' 쪽에 더 무게감을 싣고는 고개를 끄덕 끄덕였다. 물론 놀러 간 김에 기념품 사듯 결혼 증서 쇼핑하자 쯤으로 여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치 자기야? 그치.....? 왜 말이 없니?


3.

"만약에 우리가 결혼식을 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때때로 자문해 본 적이 있다. 그리고 펼쳐지는 상상들...

만약 우리가 결혼식을 한다면, 과정 하나하나가 모두 사랑의 확인이 될 것이다. 나와 오스씨가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의 옷을 입고 사진을 찍을 거다. 우리가 가장 좋아했던 그 장소에서. 하객은 가족과 좋아하는 친구로만 구성할 거다. 축의금도 안 받을 거다. 음식은 그냥 좋은 카페 하나 빌려서 브런치 스타일로. 식이 끝나면 가성비 와인과 사퀴테리로 2차 파티를 하고, 3차는 게이 클럽에 가서 신나게 놀 거다. 신혼여행은 아마도 파리가 되겠지. 오스씨가 가자고 가자고 난리니까. 하지만 난 남태평양 리조트가 좋다. 스노클링도 하면서 고래상어 먹이도 주고.

그렇게 한바탕 꿈을 꾸고 나면 '에휴~" 한숨이 절로 나온다. 현생에선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꿈일 테니까.


지난해에 코로나로 미뤄졌던 오스씨 조카들의 결혼식이 연달아 진행되었다. 가족 행사 말고는 결혼식에 참석한 적이 없어서 나로서는(게이라서 축의금을 돌려받지 못하니까 안 가게 됨) 신기한 볼거리였다.

잘 꾸며진 전문 식장에 친인척들과 친구들, 회사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식순이 물 흐르듯 흐르고, 사진사가 열심히 사진 찍고, 애들은 시종일관 방긋방긋 웃고, 식사는 맛있었다. 모두가 제가 맡은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조카들의 얼굴은 삶의 새로운 장으로 나아간다는 들뜬 감정으로 빛나고 있었고, 부모들의 눈동자는 삶의 한 챕터를 확실하게 마무리했다는 벅참으로 촉촉이 젖어들었다.

나는 스테이크를 썰면서 조금 심드렁했던 것 같다. 와인도 맛있고, 음악도 좋았고, 조카들도 이뻤지만, 그런 느낌이 들었다.

대학 갈 형편이 안 돼서 시험조차 못 봤는데,
합격한 친구가 축하 파티에 초대해서 참석한 느낌.


너의 앞날을 응원할게! 축하까지 해줬는데, 친구는 나에게 '그래서 너도 나중에 형편 좋아지면 대학은 갈 거지?"라고 묻지도 않는 거다. 사실상 암묵적인 배려지만 아랫배에서 뭔가가 자꾸 꼬물거리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무릇 삼촌이란 작자가 이런 뿔난 애정을 가지다니, 자격 미달이다.


4.

이런 옹졸한 마음과는 별개로, 정말 오랜만에 결혼식을 보면서 한 가지는 확실했던 것 같다.

난 절대로 못 한다는 것. 오랫동안 사랑을 숨기는 방법만 배워와서인지 많은 사람 앞에서 자기야, 사랑합니다. 이런 거 쑥스러워서 못 할 거 같다. 식 내내 땀만 줄줄 흘릴 거 같고, 선서할 때 목소리 갈라질 거 같다. 수 천만 원짜리 흑역사가 되어 유튜브 웃긴 동영상에 박제되고, 쇼츠로 만들어져 전 세계에 퍼져나갈 거 같다.

하지만, 서로의 연인을 당당하게 내보이고 싶은 퀴어들이 있다면 꿈꿀 수도 있겠다. 화려한 웨딩홀과 수많은 꽃, 멋진 음악과 조명. 아름다운 옷을 입은 나와 사랑하는 연인.

그 모든 게 지금은 가능한 시대가 되었으니까, 꿈꾸실 분들은 과감하게 꿈을 꾸시라.

그런 분들을 위한 책도 나와 있다.

웨딩플래너로 활동하고 있는 한가람님이 쓴 책, <퀴어 웨딩 A-Z. 퀴어 커플을 위한 결혼식의 모든 것>은 퀴어들을 위해 예산부터 의상, 촬영, 본식, 준비물 등등 결혼을 위한 모든 정보를 담았다. 결혼에 대한 막연한 환상과 기대만 가지고 있던 퀴어 커플이 있다면, 이 책을 통해 본인이 원하는 형태의 결혼식을 구체적으로 구상할 수 있다.

우리처럼 한국 결혼식에 관심을 두지 않고 해외에서 결혼식과 증서를 원하는 커플에게도 도움이 되는 책이다. 해외 동성 커플에게 증서를 주는 나라들을 소개하고, 구체적인 방법까지 자세하게 나와있다.

우리도 이 책을 통해 하와이에서 결혼하려고 준비했었다.

지금은 괌으로 바뀌었는데, 괌에서의 결혼방식도 나와 있다.

현재까지 이 책이 판매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교보에서 검색을 해봐도 나오질 않는다.

구입을 희망하시는 분들은 아래의 링크를 클릭해 보시길.


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dBQv9d1bPh-QiCfA2lBS_XEtL3DFkC1rosGpB8kB1ca5KUNg/viewfo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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