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쿠바 스키여행 1
코로나 여행제한이 해제된 이후에도 나는 해외여행에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코로나 기간 동안 국내 도시 한 곳을 선정해 일정 기간 살아보는 방식의 여행에 재미를 붙였다.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좋은 곳들이 많았나 새삼 놀라는 시간이었다. '잠시라면(?) 살아보고 싶은 소도시'가 생각보다 많았고, 오버투어리즘 걱정도 없었다. 동네 책방을 탐험하면서 좋은 책으로 감정과 정서를 세탁하는, 해외여행에선 언어 장벽으로 불가능한 체험도 매력적이었다.
한편으로 아무런 목적과 정의도 없이 습관적으로 저가 비행기 표를 검색하던 지난 시절의 광기에서 벗어나고도 싶었다. 일본만 일 년에 서너 번은 갔던 시절이 있었다.
먹을 거 떨어졌어, 그럼 일본 돈키호테 가서 사 오자, 뭐 이런 농담이 횡횡하던 시절이었다. 아베 정부의 엔저 정책을 채찍 삼아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뛰어다녔다. 90년대 내내 일본 음악과 일본 만화에 열광하며 청춘을 보냈던 탓에 하고 싶은 것도, 사고 싶은 것도 넘쳐났다.
그렇게... 즐거움이 습관이 되고, 습관이 떨쳐내기 힘든 중독으로 발전하기 직전, 그러니까 2019년 가을, 긴자역 앞에서 공항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오스씨에게 말했다.
"우리 이제 그만 오자, 일본."
트렁크 가득 무언가를 채웠지만 마음은 오히려 텅 비어버린 듯했다.
오스씨가 뭐라고 대꾸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몇 달 후 코로나 시대가 왔고, 나의 해외여행 병은 강제적으로 치료되었다.
다들 아시다시피 코로나 종식이 선언되었고, 빨리빨리 민족답게 한국인들의 국내 탈출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주변의 모든 이들이 그 열기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때도 난 여전히 뻐끔뻐끔 같은 말을 웅얼거렸다.
"국내에도 좋은 곳 많은데 왜 저렇게 나가려는 건지, 참나. 관광객으로 몸살을 앓던 지역들이 코로나 때 완전히 회복되었다는 뉴스도 안 봤나? 좀 작작들 해줬으면... 그치? 자기야."
"닥쳐!"
오스씨는 내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오스씨는 ‘익숙한 공간에서 벗어난다’는 해외여행의 취지와 역할을 그리워했고, 어느 순간부터 외국에 나가자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도 고집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누가 누가 일본 가서 뭐 먹었는데 진짜 맛있었대."
오스씨가 떡밥을 투척해도,
"일본까지 가서 덮밥 먹느니 부산에서 십만 원짜리 오마카세 먹는 게 싸겠다."
미끼를 물지 않았다. 그렇게 외국에 가네마네 싸움이 시도 때도 없이 벌어지곤 했다.
나의 해외여행 거부에 대한 오스씨의 불만이 극에 달했던 작년 8월, 오래전 일본 스키 원정 다닐 때 이용했던 여행사에서 일본 스키 상품을 다시 판매하기 시작했다면서 얼리버드 상품 안내 메일을 보내왔다. 부산발 직항이 있는 홋카이도겠거니 했는데, 아니었다. 하쿠바였다.
한국에서 하쿠바를 가려면 나고야 공항이나 도야마 공항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부산에서는 두 공항으로 가는 항공편이 없다. 그런데 어떻게 가?
상품을 읽어보니 도쿄 나리타 공항에서 호텔 전용버스를 타고 하쿠바로 가는 상품이었다. 일본을 동에서 서로 6시간(휴식 시간 포함)에 거쳐 관통하는 대장정이었다. 그마저도 설날 특별 편성으로, 부산 사람에게는 쉽지 않은 기회였다.
한정품... 사람을 홀리는 문구다.
하지만 심장이 두근거렸던 이유는 꼭 그 때문만이 아니었다. 나와 하쿠바 사이에는 해결해야 할 낡은 은원이 있었다.
스키는 오스씨가 할 줄 아는 유일한 스포츠였다. 말 그대로 유일한!
한 가지밖에 안 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애인과 나누지 못해 안달하는 경향이 있는데 오스씨도 예외는 아니었다. 만나고 얼마 지나자 않아 스키장 이야기를 꺼냈다. 그때 나는 지금보다 몸무게가 10kg은 더 나가는 마냥 뚱뚱한 아이여서 스포츠라는 단어를 아주 미워하고 있었다. 그의 유도로 어찌어찌 스키를 시작했지만 운동 신경 모자라고 뚱뚱한 사내에게 스키는 친절한 스포츠가 아니었다. 한 시간만 타도 다리가 어찌나 아프던지, 당장 스키 부츠 벗고 달아나고 싶었다. 그래서 비싼 리프트 주간권을 끊어도 풀타임으로 다섯 시간 이상은 타 본 적이 없었다. 조금만 타도 휴게소에 가서 쉬자고 징징거리는 애를 어떻게 계속해서 스키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는지, 오스씨도 참 대단한 사람이다 싶다.
오스씨의 스키 사랑은 엔저 시대를 맞이해 일본 스키장 원정으로까지 이어졌다. 시가고원, 루스츠, 니세코, 후라노 등 유명 스키장은 다 가봤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2013년의 하쿠바였다.
갈 때부터 감기에 걸려있던 오스씨는 하쿠바에 도착해서도 잔기침을 계속했다. 그냥 쉬자는 말에도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아까워!!"를 시전 하며 약을 한 움큼씩 먹어가며 스키를 탔다.
셋째 날인가? 이번 스키 투어의 하이라이트가 될 핫뽀네 스키장 차례가 되었다. 하쿠바의 자랑, 나가노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바로 그 스키장이었다. 날씨가 좋지 않았지만, 오스씨는 쉴 생각이 없었다. 괜찮아진 것 같다고 했다.
핫뽀네 스키장 정상에 올라가자 안개가 꽉 껴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눈이 펑펑 내린 탓에 슬로프도 엉망진창이어서 둘 다 엉금엉금 기어 내려오다시피 했다. 결국 중간에 있는 스키하우스에서 잠시 쉬었는데, 다시 나가보니 누가 내 스키 폴을 훔쳐갔다. 일본에서 도둑질을 당한다고? 이런 날씨에도 스키 타러 오는 진정한 스포츠인(우리야 본전 생각 때문에 할 수 없이 온 거지만) 중에 도둑놈이 있다고? 정말 충격이었다. 밖에서 놀다가 집에 들어왔는데, 거실에서 사람 똥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날씨는 더 엉망진창이 되어가고 있었다.
구름에 가려 한 치 앞도 보이는 않는 곳을 폴도 없이 내려가는 미션이라니.
방법이 없으니 결국 출발했다. 어디가 슬로프인지도 알아볼 수 없는데 하필이면 올림픽 코스로 유명한 최고 난이도의 슬로프가 사방으로 뻗어있던 지역이었다. 발길 닿는 대로 엉금엉금 내려왔는데, 우리 자신도 모르게 올림픽 코스를 정복하지 않았을까 싶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모르겠지만 딱 죽겠다 싶었을 때 마침내 베이스에 도착했고, 난 오스씨에게 비명을 질렀다.
“이래서 내가 쉬자고 했잖아!!!!”
오스씨는 남은 하루 종일 안절부절 날 달래기 바빴다. 그 즉시 스키는 중지, 시내에 나가 맛있는 것을 사 먹고 빈티지하지만 멋진 옷도 하나 샀다. 그렇게 마음이 누그러져 잠이 들었는데, 다음 날 아침, 오스씨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이마가 불덩이였다.
"어제는 괜찮다고 했잖아."
"핫뽀네는 꼭 가고 싶었다고."
조금만 아픈 티를 내도 내가 가지 말자고 할까 봐 괜찮은 척했다며, 결국 끄억끄억... 네가 날 너무 몰아붙였다구... 어쩌고... 서럽게 울었다.
신데렐라 언니에 빙의해 온갖 패악을 부리던 난 순식간에 시무룩 꼬무룩이 되어버렸다. 이젠 입장이 바뀌어, 이번엔 쉬고 내년에 또 오자, 오스씨를 달래야 했다.
하지만 그다음 해부터는 부산에서 나고야나 도야마공항으로 가는 비행기 노선이 없어졌다. 알고 보니 그때도 스키여행객을 위한 전세기형태로 일시적으로 편성된 것이었다고. 그래서 우리는 그 이후 일본 스키 여행은 직항이 있는 홋카이도만 갈 수밖에 없었는데, 비록 태평양 섬나라 여행 정도의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부산 출발 하쿠바 상품이 나온 거였다.
십 년 전의 미안함이 떠올랐고, 그래도 너무 강행군인걸? … 그렇게 한 보름간 진짜 진짜 진짜 고민 끝에 마침내 여행사에 전화를 걸었다.
오스씨는 기쁨의 비명을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