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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캔디 Jan 23. 2023

투병을 한 언니에게

극단적 선택이 아닌 투병

며칠 전에 유퀴즈를 보는데 극단적 선택이 아닌 투병을 했다고 표현을 한다고 하더라고.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전사가 됐다고 표현하기도 한데.

그 말이 며칠을 맴돌고 결국엔 언니가 더 보고 싶어 지더라.


언니 잘 있지? 나 사실 한국에 갔었는데 언니한테는 못 갔어 미안해

언니를 보러 갈 용기가 없어서 못 갔어. 브런치에 죽게 되면 묘비명이나 찰지게 쓴다고 우스갯소리를 해놓고선

언니의 이름, 사진, 그리고 좋아했던 닌텐도가 올려져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걸 실제로 보고 싶지가 않아서 안 가고 있어.

맞아 나 아직도 회피형이야


언니가 살아생전에 나한테 미운행동이나 쓴소리를 했었다면 , 내가 한순간이라도 언니가 별로였다고 생각했었다면 덜 힘들었을까?

같은 일본에 있던 그 순간 귀찮게 해서라도 언니를 몇 번이나 보러 갔었다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언니가 이혼가정이라는 걸 조금 더 일찍 알아서 같은 처지인 나도 있다고 그 마음을 헤아려줬다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언니를 잃은 슬픔이 죄책감의 화살로 돌아와서 한동안 나를 참 많이 괴롭혔어.

너무나도 땡볕이던 그 여름엔 전화를 받자마자 서리가 낀 듯이 갑자기 추워진 날이 되었고, 나는 그 한기가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나.

언니의 마지막 짐을 정리하러 갔던 그날은 날이 너무 좋았어.

처리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서 슬픔을 느낄 새도 없이 뭔가에 홀린 듯 언니 방정리를 하는데 세차게 소나기가 내렸잖아.

분명 그냥 내리는 소나기였을 텐데 나는 왜 언니가 우는 것처럼 느껴졌는지 모르겠어.

고맙다고 표현을 한 건지, 아니면 못 울고 있는 내가 가여워서 천천히 하라고 시선을 환기시켜 준 건지

아무 의미 없는 소나기였을 거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건 그때도 지금도 나는 언니가 많이 그리운가 봐.


투병을 하게 되면 하고 나서도 괴롭다던데 아픈 거 못 참고 겁 많은 언니가 잘 버티고 있을까?

산 사람은 살아야지, 편하게 잠들었을거야 라는 말이 왜 이렇게 싫은 지 모르겠어 언니.

다들 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똑같겠지만 누구 하나 먼저 꺼내지는 않고 있어. 금기어가 됐다는 말이 맞을 것 같아

충분히 애도한 후 잘 흘러 보내주는 방법도 있다는데 언니를 잃은 아픔에서 충분히 애도라는 말이 있을까 싶어.


도깨비에서 보면 기억을 잃게 해주는 찻잔이 있잖아.

언니가 그걸 마셔서 아프고 힘들었던 기억이 다 사라지고 다른 곳에서 새롭게 시작을 했으면 싶다가도

우리가 다시 만났을 때 나만 언니를 기억하는 게 슬플 것 같아서 안 마셨으면 했다가 혼자 이런저런 상상을 해.

근데 내가 언니를 기억하면 되는 거니까 모든 걸 잃고 새하얀 세상에서 살았으면 좋겠어.

지쳐있는 얼굴만 아니면 돼.

아니 지쳐있는 얼굴이어도 좋아. 언니 향기도 맡고 싶고 그냥 안고 싶으니까 말이야.


나 이번 연도로 언니랑 동갑 됐어. 그래도 반말은 안 할게

우리 사이에서 언니가 나 막내라고 귀여워해줬잖아. 끝까지 막내 할게

회피형인 것도 고쳐서 언니 보러 가려고 힘도 내볼게

닌텐도만 계속해서 지루하지? 다른 게임기도 내가 찾아볼게


새하얀 세상에서 웃고만 있어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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